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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 Jul 28. 2023

특전여군, 소방관이 되다.

진정한 러브스토리의 시작

아내가 소방관이 된 이야기를 듣는다면 다들 이리 얘길 할 듯하다.

"될 놈은 되는구먼"


사실 아내는 단 한 번도 자신이 전역 후 소방관이 될 것이라 생각한 적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전역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예상치 못한 우연한 기회로 소방관이 되었다. 


다들 알다시피 특전사는 육지, 바다, 하늘 모든 곳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전천후 특수요원들이다. 이에 따라 특전사 요원들을 교육하는 특수전 교육단(現 특수전 학교)에서는 이와 관련된 각종 특수훈련들을 전담하여 교육하고 있다. 이러한 특수훈련들은 대부분 매우 위험하면서도 극한의 육체적, 정신적 능력을 필요로 하는 훈련들이 대부분이다. 내게 그중 가장 힘들고 고된 훈련을 꼽아보라면 난 1초의 망설임도 없이 'SCUBA'교육이라 말할 것이다.


특전사의 SCUBA 교육장은 강원도 바닷가에 있다.(군사기밀 유출로 잡혀 갈 수 있으니 정확한 위치나 훈련 내용은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훈련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선 '실내 SCUBA 훈련장'이 반드시 필요한데, 안타깝게도 당시 특수전 교육단에는 실내 SCUBA 훈련장이 없었다. 때문에 SCUBA 훈련장 신설을 추진 중이었고, 다행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실내 SCUBA 훈련장이 있어 이런저런 협조를 위해 부대장이 그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곳이 바로 '중앙 119 구조본부'였다.


그곳에서 구조본부장이 특수전 교육단장에게 이런 말을 하게 된다.

"이번에 우리나라 최초로 특수부대 출신 여자 구조대원 2명을 선발할 계획입니다. 전역을 앞둔 훌륭한 여군이 있으면 추천해 주십시오."

구조대원은 다른 소방관들과 비교했을 때 좀 더 높은 신체적 능력을 요하는 직책이다. 때문에 아무래도 남자들에 비해 신체적 능력이 부족한 여자 소방관들은 구조대원이 될 수 없었는데, 여자 구조대원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최초로 여자 구조대원을 선발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부대장은 다음날 다시 중앙 119 구조본부를 방문하였고, 그곳으로 향한 부대장의 옆자리에는 아내가 앉아있었다. 아내는 그렇게 대한민국 최초의 여자 소방구조대원이 되었다.

물론 아내도 다른 소방관들과 똑같이 필기, 체력, 면접 등 모든 시험 과정을 통과하여 소방관이 되었지만, 2명 선발에 추전을 받아 시험을 치른 사람이 3명이었으니 다른 공채 소방관들에 비해 어렵지 않게 소방관이 된 것만은 확실하다. 게다가 아내는 9급(소방사)이 아닌 8급(소방교)으로 합격하여 남들보다 어린 나이에 더 높은 계급으로 임용이 되었다. '될 놈은 된다'는 말이 그냥 생긴 말은 아닌 듯하다.


난 아내가 소방관 시험에 합격했다는 얘길 듣고 축하 문자를 보냈다. 그러자 잠시 후 아내에게 "같이 밥 먹을래요?"라고 답장이 왔다. 아내는 소방관 시험에 합격한 후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찾은 듯 보였고, 이를 계기로 내게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 것 같다.


난 서둘러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을 예약했고, 다음날 함께 식사를 하며 많은 얘기를 나눴다. 식당으로 가던 중 중앙선을 침범한 버스와 작은 충돌사고가 있었지만 그 또한 그저 행복한 추억의 한 장면일 뿐, 이제 시작하는 나와 아내의 러브스토리에 작은 흠집조차 낼 순 없었다.


다음날 저녁 당직근무 중이던 난 아내가 운동을 나왔다며, 근처에 있다는 얘기에 달려 나가 아내를 만났다. 그리곤 차에서 잠깐 얘기 좀 하자 말하고 아내를 차에 태웠다. 무슨 말을 어찌해야 할지 망설이다 떨리는 목소리로 "우리 정식으로 한 번 만나 볼래요?"라고 했고, 아내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리곤 살며시 아내의 손을 잡고 "이 손 잡는데 2년 걸렸네"라며 웃어 보였다. 그런 나를 보는 아내의 발개진 얼굴에도 옅은 미소가 보였다. 


그렇게 나와 아내의 러브스토리가 시작되었다.


* 다음 편에선 아내와의 첫 1박 2일 여행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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