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교제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금요일 야간 당직 근무를 마치고 토요일 아침 일찍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내는 부대 근처 친구가 운영하는 커피숍에서 친구들과 함께 있다고 했다.
난 1초라도 빨리 아내를 보고 싶은 마음에 전투복도 갈아입지 않은 채 아내에게 달려갔다. 따로 테이블을 잡고 앉아 커피를 마시며 아내가 어서 빨리 친구들과 작별을 고하고 나와의 데이트를 위해 커피숍을 나서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친구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다는 아내. 그 말을 듣고 "가자 바다!"라고 나도 모르게 말해 버렸다. 아마 친구들 앞에서 아내의 어깨를 으쓱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그렇게 너무나 갑자기, 아무런 준비 없이 둘만의 첫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밤샘 근무에 피곤할 만도 했지만 도파민이 얼마나 쏟아져 나왔는지, 조금의 피곤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첫 여행! 그 설렘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한 순간이었다.
강원도 바닷가에 도착한 우리는 같이 해변을 걷고,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다. 이제 시작하는 연인이었으니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1분 1초 그 찰나의 흐름마저 너무나 아쉬웠던, 아내와 함께하는 그 시간이 참 좋았다. 아내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내일 갈까?"라고 조심스레 꺼낸 말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저녁으로 조개구이를 먹고 바닷가 근처 모텔을 잡았다.
샤워를 마치고 아내는 침대에, 나는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웠다. 침 삼키는 소리조차 어찌나 조심스러웠던지, 파도가 철썩이는 소리에 박자를 맞춰야 했다.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 섹스가 처음이 아니었음에도 그 순간이 왜 그리 떨렸는지. 도저히 잠이 오질 않았다. 마음속으로는 벌써 침대 위로 몇 번이나 올라갔다. 그렇게 미동도 숨소리도 내지 않고 눈만 끔뻑이며 한참의 시간이 지나갔다.
이러다간 밤새 잠도 못 자겠다 싶어 아내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주섬주섬 겉옷을 찾아 입었다. 그리곤 화장대에 두었던 차 키와 군번줄을 집어드는 순간! 군번줄 부딪히는 소리에 아내가 깨고 말았다. "어디 가요?"라며 놀라는 아내에게 차에서 자겠다며 도망치듯 모텔방을 빠져나왔다.
차에 올라 의자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으며 아쉬움인지 기특함인지 모를 미소가 얼굴에 번졌다. '그래도 한 번 용기를 내어 볼 것을' 그런 생각으로 잠을 청하는데, 갑자기 아내가 차로 들이닥친다. "같이 있어요" 그리곤 옆자리에서 눈을 감는다.
아마도 그때였던 것 같다. 아내와 결혼을 결심한 것이.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린 첫 키스를 했다. 그것만으로도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