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고 싶은 아빠

by 카이

“공부는 유치원에서 하는 거야. 집에선 엄마 아빠랑 재밌게 놀아야지!” 아이에게 항상 하는 말이다.


집에선 함께 책을 읽는 것을 제외하고 아이와 공부 비슷한 것을 해본 적도 없다.

그런데 요즘 아들 녀석이 내게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엄마의 정신교육이 있었던 것인지 집에서도 공부를 해야겠단다. 뛰어 놀기에도 바쁜 나이에 벌써부터 공부라니! 스스로 공부하겠다는데 억지로 못하게 할 수도 없고 참 난감하다.


어제저녁 식탁에 앉아 책을 보는데 아들 녀석도 책 한 권을 가져와 옆에 앉는다.

“아빠랑 같이 책 읽을 거야?”

“네.”

“자! 그럼 도원이가 소리 내서 읽어봐. 모르는 글자는 아빠가 가르쳐 줄게.”


책을 펼친 아들 녀석은 내 얼굴을 보며 웃고만 있다. 아직 모르는 글자가 너무 많은가 보다.

[달팽이는 상추를 맛있게 먹습니다.] 이 한 문장을 혼자 힘으로 읽기까지 10분도 넘게 걸렸다. 이마에 땀까지 흘리면서 말이다. 같은 글자를 계속하여 틀리는데, ‘상추’는 20번 정도 틀렸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엔 혼자 힘으로 읽어 내더니 활짝 웃어 보인다.

“그만 할까?”라는 아빠의 물음에 아이는 더 하겠단다. 그렇게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1시간 정도 책을 더 읽고 나서야 아이는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난 아이들을 훈육할 때 먹고, 자고, 씻고, 정리하고… 이런 기본적인 것들을 잘못하면 꽤나 무섭게 아이들을 혼내는 편이다. 3살 된 딸아이는 졸리지 않아도 아빠의 “들어가 자라!”라는 한마디에 최고의 스피드로 방으로 뛰어 들어가 눈을 감고 자는 척할 정도이니, 아이들을 얼마나 엄하게 훈육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함께 놀고 장난치는 순간에는 아빠의 체면 같은 건 없다. 작렬하는 몸 개그로 집이 떠나갈 듯 웃음을 선사하며, 위험하지 않다면 아이의 다른 어떤 잘못에도 화를 내지 않는다.


어제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는 틀리는 단어를 마주할 때마다 내 눈치를 살피지만 계속하여 웃으며 친절히 알려주는 아빠를 보며 안심한다. 틀리지 않고 끝까지 읽으면 박수와 함께 칭찬 세례가 쏟아지니 아이에겐 그 순간이 어떤 놀이 보다 즐거웠던 것 같다. 자야 할 시간이 아니었다면 얼마의 시간을 그리 보냈을지….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그 순간 나는 아이에게 ‘배우고 싶은 아빠’였을 테니 말이다.


‘아들아, 똑같은 글자를 1,000번 틀려봐라 아빠가 화내는지!’


누군가에게, 특히나 내 아이들에게 ‘배우고 싶은 사람’이 된다는 건 너무나 보람된 일이면서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듯싶다. 조급함만 조금 다스릴 수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똑같은 영어 단어와 수학 문제를 계속하여 틀리는 아이가 있는가? 똑같은 잘못과 실수를 반복하는 아이가 있는가? 조급함을 다스려 1,000번 정도는 기꺼이 웃으면서 가르쳐 주자!


‘나는 누군가에게 배우고 싶은 사람인가?’

메모장 제일 위칸에서 한 달간을 머물던 이 글귀에 드디어 삭선이 그어지는 순간이다. 그것도 자랑 질과 함께 말이다.


"오늘도 자랑 질 하게 만들어 줘서 고마워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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