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논어 위령공편(衛靈公篇)에서 유래한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시키지 말라는 뜻을 가진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은 인간의 본성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일 것이다. 사람의 자기중심적 본성을 끊임없이 경계하고, 나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임을 일깨워 주는 가르침이다. 성경에도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태복음)'는 말씀을 볼 수 있듯이, 인간의 욕심을 경계하는 가르침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가 끊임없이 새겨야 하는 가르침 중에 으뜸일 것이다. 지금의 코로나 사태도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것에 근본적인 발생의 원인이 있다고 진단하는 것이 그나마 인간의 욕심을 반성하는 계기라는 점에서 다행이다.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에 따라 행동한다.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아갈 때 행복하다는 정의를 일반화하여 믿으면서, 대부분 사람이 그것을 따른다. 하지만, 사실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한 평생 자신보다는 남을 위한 인생을 살았으면서도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삶은 보통 사람인 우리의 삶과는 다르지 하고 애써 외면하지만 말이다.
현실적으로도 원하는 것만을 하면서 살 수는 없다. 사람이 서로 같이 살아가기 위해 사람의 생명을 존중하고, 내 욕구를 때와 장소에 따라 억제하고 ,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욕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를 정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서 만들어 낸 것이 질서이다. 욕심 때문에 이 질서를 지키지 않을 때 우리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며,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조직 내에서의 생활도 똑같다. 범위를 벗어나는 과도한 욕심, 남을 배려하지 않는 자신만을 생각하는 태도, 행동이 조직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이러한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은 조직에서의 삶뿐 아니라, 본인의 삶 전체가 완성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조직의 성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조직 입장이나, 개인 입장이나 적합한 일을 적합한 인재에게 맡기는 적재적소(適材適所)가 될 것이다. 적재적소(適材適所)는 모든 조직과 개인이 원하는 바지만 현실적으로 이것이 가능하지가 않을 때가 많다. 최대한 맞추려고 노력을 하지만 조직에서 수행해야 하는 일과 개인이 바라는 일의 일치가 어렵기 때문에 100% 적재적소(適材適所)가 가능하지가 않은 것이다. 예를 들어 조직에서 필요한 일은 하나인데, 원하는 사람은 다섯 명이라고 하면 네 명은 적재적소가 안된다고 볼 수 있다. 채용할 때부터 잘했어야지 하고 질책할 수도 있으나, 사람의 활용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은 것을 잘 알지 않는가? 이때 네 명 중에 한 명이 내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나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러한 상황에 대해 여러 가지 전제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길게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30년 이상 조직 생활을 하고 은퇴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상당히 많은 수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원하는 게 뭐였는지 잘 모르고 조직 생활을 했다고 답변을 한다. 부양의 의무 등 어쩔 수 없는 환경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사실은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잘 몰랐던 것이 크다.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은 길게 보고 판단해야 그 답을 알 수가 있다.
하루하루의 일상이 모여서 나의 업적으로 쌓인다. 하루하루가 모여서 나의 삶이 완성되고, 평판이 만들어진다. 평판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내가 하루하루 남에게 어떻게 대했느냐가 나에게 쌓이는 것이다. 이 평판을 쌓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나를 한 뼘만 낮추면 충분하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다른 사람이 썩 내켜하지 않는 것을 내가 조금만 먼저 하거나, 조금만 도와주면 된다. 이것은 나의 욕심을 낮추고, 상대를 배려하면서 조직 생활을 하는 스마트(Smart)한 자세이다. 또한, 이것은 투자이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배려라는 투자를 했던 것은 언젠가 뜻밖에 나에게 몇 배 이상의 보상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충분히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그것을 지금 모르는 것 일 뿐, 길게 보면 알 수 있는 것을 말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다른 사람도 원한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다른 사람도 원하지 않는다. 이 단순하고 명료한 진리를 깨 닫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자연을 파괴하면 그 파괴가 인간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울까?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구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 조직에서의 삶을 내 자신의 삶을 완성하는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