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옷장에 옷들의 색은 밝은가요? 어둡나요?
무의식의 반영 중 가장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옷장>에?
성향의 밝음이나 우울, 어둠과 같은 동향은
자기도 모르게 선택한 옷으로 채워진 옷장을 보면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끔 학생들에게도 무의식 속의 정신상태를 엿보는 방법으로
자신의 옷장을 가끔 보라고 권유하곤 했다.
내 옷장의 색이 온통 무채색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검은색과 흰색, 그리고 회색으로 가득한 옷장이 이상하지 않았었다.
해야 할 일도 많았고, 자는 시간이 부족할 때라 정신적인 여유는 안중에도 없었던
그 시기의 옷장이 이상하다고 느낀 날 주저앉아 울었었던 기억이 난다.
상황에 쫓기는 삶이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제일 먼저 홀대하는 걸까?
어쩌면 내가 머리가 나빠서 그런 시절을 보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오늘, 초록색 코트를 입고 외출했다가 돌아와
<색의 비밀>의 한 부분을 다시 읽었다.
카자미르 말레비치
색의 이름도 색의 부분이다.
그것은 아마 색에 대한 우리의 기호나 선택을 가장 강력하게 좌우하는 요소이지 않을까?
색에 관하여 우리는 이미 언어와 현실적인 어휘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사회적인 생활에서는 실제 지각된 색 자체보다 색의 이름이 종종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것은 감정적인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상상이나 신화의 세계 속에서도 색 자체보다는
색의 이름이 더 큰 영향력을 갖기 때문이다.
즉, 어떤 드레스가 빨간 드레스를 조용히 응시하고 있는 것보다
이야기 속의 색이 훨씬 많은 꿈과 연상을 유도한다.
어떤 색을 보고 머리로 색의 이름을 떠올리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색의 이름은 이미 지각의 한 부분이 된 것이다.
지각은 단순히 생물학적 과정만은 아니다.
지각은 우리들의 기억, 지식, 상상력을 북돋우는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은 이유로 어떤 생소한 색을 만났을 때
설혹 우리가 그 색을 나타내는 어휘를 잘 모를 때에도
어떤 색의 이름으로 부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색상표나 색의 견본책에서 늘 어휘로 색을 찾는다.
-미셸 파스투로의 <색의 비밀>에서 발췌
툴루즈 로트렉
요즘의 내 옷장엔 파스텔 톤의 밝은 색의 옷이 여럿 있다.
의식적으로 밝아지고 싶은 욕망도 있었을 수 있지만,
상황에 끌려다니는 삶이 아닌
선택으로 이어지는 삶에서 찾은 평온과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정신적인 여유 덕분일 듯하다.
무의식의 반영을 옷의 색에서 찾아본 날이지만,
우리가 자연이나 주변환경에서 지각하는 색에서도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모두에게 해당되는 게 아닌, 예민한 사람만 지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자면,
기분이 좋은 날은 일기예보와 상반되게 하늘이 화창하고 산뜻하고 명랑하게 지각되고,
유난히 우울한 날은 대기부터 건물의 색도 모두 명도가 낮아지고
채도는 높아지는 경험을 해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끄적이는 지금의 창밖은
건물 귀퉁이에서 번지는 가로등빛과 마주한 집의 창에서 흘러나온 불빛으로
어두운 사각지대가 전혀 보이지 않지만,
나는 자연스럽게 밥은 어둠이라고 지각한다.
그리고 모든 색을 뒤덮은 밤의 어둠은
모든 색을 섞은 검은색과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