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든 사이에 바뀐 풍경

공기, 바람, 온도와 같은 형태가 없는 것은 가깝고도 먼 당신이다.

by 코코넛


아침 산책길에서 만난 풍경은

내가 잠든 사이에 일어났던 일들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도둑이 들었던 집안처럼 어수선한 아스팔트 바닥이

먼저 내 시선을 움켜쥐었다.

바닥에 떨어진 개복숭아 중에

자동차 바퀴에 깔려 뭉개진 개복숭아에서 흘러나온 과즙은

여전히 피를 흘리듯이 뭉개진 부분에서 흐르는 듯한 상상을 하게 했다.

<덜 익은 개복숭아의 과즙은 보이지 않았음에도>

밟히지는 않았지만 채 영글지 못한 열매 옆엔

다양한 모양의 나뭇잎들이 서로 엉켜 있고,

잔혹한 시간이 이곳에 있었다고 외치듯

부러진 잔 가지들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들 사이에는 정확한 이름을 알지 못하는 죽은 곤충도 있고,

낙엽이 아닌 어린 나뭇잎들이 더 많았다.


공존하면서도 간여할 수 없는 일 중 자연이 하는 일은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보다 더 충격으로 와닿는다는

새삼스러운 인식과 더불어 맑은 하늘의 천연덕스러움에 탄복하기도 했다.

내가 잠들었던 시간 동안 비바람은 쉬지 않고 열심히 움직였던 것이다.

투명한 유리처럼 깨끗한 하늘의 모습,

결백을 주장하는 듯한 맑은 빛으로 반기는 하늘이, 오늘은 살짝 밉다.

발아래 너부러진 잔해들 때문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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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믿을 수 없는 이야기,

믿어도 될까 의심하게 하는 이야기처럼 메기를 의인화해봤다.

메기의 피부가 아침에 봤던 곤충의 몸에서 흘러나온 점액질과 비슷하다.

그렇지만 실제가 아닌 이미지이고 간접적이라

그냥저냥 봐줄 만하다?


”어엿한 어른이 된 지금

새삼스럽게 곤충 채집 같은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일에 열중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정신적인 결함을 나타내는 증거라는 것이다.

어른뿐만 아니라 곤충 채집에 유난히 몰두하는 경향을 보이는 아이는

대부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강해서,

충족되지 않는 욕구를 보충하려고

절대 도망칠 염려가 없는 죽은 곤충에 열심히 핀을 꽂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


-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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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댓바람부터 죽은 곤충을 발견해서일까?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다.

마치 즐거움에 낀 무거운 기분, 싱그러운 아침 공기에 묻은 습기가

온몸을 스치는 끈적거림?

전체적인 마음의 분위기는

<초등학교 때 여름방학 숙제로 항상 해야 했었던 곤충 채집.

남자아이들과 함께 잠자리를 잡으러 다녔지만

늘 빈손으로 돌아온 일>

곤충 채집 숙제를 제출하지 않아서 혼났던 순간과 닮았다.


그 누구도 나를 책망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죄를 지은 것 같이, 혹은 직무를 다하지 않은 것 같이

꾸역꾸역 심기가 불편하다고 소리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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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든 공기든 모든 흐름은 난류를 일으킨다.

이 난류의 최소 파장이 사막에 있는 모래의 직경과 거의 비슷하다.

그 특성 때문에,

흙에서 모래만 선별되어 흐름과 직각 방향으로 날아간다.

흙의 결합력이 약하면,

돌은 물론이요, 점토도 날지 못할 미풍이 불어도 모래는 일단 날아올랐다가

다시 낙하하면서 바람을 따라 이동하게 되는 것이다.

<중략>

지상에 바람과 흐름이 있는 이상 모래땅의 형성은 불가피한지도 모르겠다.

바람이 불고 강이 흐르고 바다가 넘실거리는 한,

모래는 토양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되어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기어 다닐 것이다.

모래는 절대로 쉬지 않는다.

조용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지표를 뒤덮고 멸망시킨다 “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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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잠들어도 시간은 흐르듯이,

내가 이 세상에 없어도 세상은 흘러갈 것이고,

지금과는 사뭇 다른 풍경의 세상으로 바뀔 것이다.

잠이 들었다가 아침을 맞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생과 사로 갈라놓는 별의별 이야기가 많다.

밤새 안녕이라는 말의 탄생 배경일 듯하다.


새삼스러운 발견이 아닌데,

아침 산책에서 만난 뭉개진 개복숭아와 죽은 곤충이

갑자기 크게 와닿은 것은 어떤 의미일까?

시간이 흐른 만큼 난 또 더 약해진 것일까?

바람에 꺾인 가지처럼, 나뭇잎처럼, 개복숭아처럼

어느 한 날 갑자기 삶이 꺾일 수도 있겠지만,

살아온 날과 앞으로 살아갈 날의 길이가

어쩌면 같은 것 같다는 생각은 오만함이겠지?

내일 일은 모르니까.


”어쩌면 형태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야말로, 힘의 절대적인 표현이 아닐까...... “


밤사이에 벌어진 일의 흔적을 아베 코보의 생각에 빗대어

불가사의한 자연의 힘과 움직임을 해석해 본 날이다.

어디선가는 지금도 비바람이 불 것이다.

비록 나는 알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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