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에서 만난 사람들 - 1
키이우로 향하는 야간 열차 안에서였다.
아직도 예고없이 날아드는 자폭 드론과 미사일의 위협이 여전하지만 열차는 피난지를 떠나 집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로 만석이었다. 전쟁터에 남겨둔 가족이 보고 싶어서인지, 긴 피난 생활에 지쳐서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의 표정에서 걱정보다 묘한 설렘이 묻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전쟁 상황을 취재하기 위해 열차에 동승한 내 얼굴만 유독 시커멓게 어두웠다.
승객은 대부분 여자들이었고 남자라고는 어린아이들뿐이었다. 전쟁이 터지면서 성인 남자들은 국경을 넘을 수 없게 되었다. 여자와 아이들은 목전까지 쳐들어온 적군을 피해 경황없이 피난을 떠나야 했다. 그리고나서 정신을 차려 보니 사랑하는 사람을 전선에 두고 온 것이 후회되어 여러 밤을 눈물로 지새웠을 것이다. 전쟁이 끝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고,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이 계속된다할지라도 더는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남편 혹은 아빠를 만나러 길을 나섰으리라.
복도를 따라 길게 이어진 침대 칸에 우리도 짐을 풀었다. 열차는 낡고 오래되어 속도를 조금만 높여도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흔들렸다. 폴란드 바르샤바를 출발해 목적지인 우크라이나 키이우까지 가려면 17시간이나 소요되는데, 잠은 안 오고 인터넷 상태는 불안정해서 나는 멀뚱멀뚱 앉아서 사람 구경을 시작했다.
우리 옆 칸에는 세 모녀가 자리를 잡았다. 세 사람은 얼굴이 닮아서, 누구봐도 할머니, 엄마, 딸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생김새는 닮았지만, 세대가 달랐음으로 열차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식은 제각각이었다. 할머니는 털실을 쇠로 된 바늘로 얽고 짜는 것에 여념이 없었다. 이따금 고개를 들어 창밖을 내다보다가 다시 뜨개질로 돌아갔다. 엄마는 두꺼운 패딩과 어두운 색의 비니를 벗어던지고 연한 쥐색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었다. 운동을 오래한 사람인 듯, 흔들리는 복도에서도 제법 안정적인 자세로 요가를 했다. 딸은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었다. 아마도 친구와 채팅을 주고 받는 것 같았다.
요가를 끝내고 마무리 스트레칭을 하던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나의 시선이 혹시 불쾌감을 주었을까봐 걱정했는데, 엄마쪽에서 먼저 미소를 보내주었다. 피부가 맑고 수수해 보이는 외모였다. 여자와 아이만 탑승한 열차에 시커먼 남자들이 낯설었을 텐데, 엄마의 미소는 경계하지 않는다는 신호처럼 보였다. 이번엔 우리가 먼저 다가갔다. 영어로 인사를 건넸는데, 엄마의 표정이 조금 일그러졌다. 영어를 못하는 듯했다. 그러더니 딸을 일으켜 우리 앞에 세웠다. 열세 살, 소피아는 웃을 때 드러나는 오종종한 앞니가 귀여운 소녀였다.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켜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냐고 물었다. 보통의 청소년들처럼 마땅히 사양할 줄 알았는데 소피아는 활짝 웃으며 ‘예스’라고 대답했다.
소피아의 가족은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 프랑스로 갔다고 했다. 전쟁이 길어지고 있지만, 우크라이나는 강하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열세 살 소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어른들이 야기한, 혼돈의 시간이 만들어낸 부조리 같았다. 아직 전쟁 중인데 무섭지 않냐고 묻자, 소피아는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표정은 웃고 있지만, 눈가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이윽고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아빠를 만나고 싶어요.”
우리는 그 순간 촬영을 멈췄다. 더 물을 것이 없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이후에도 소피아 가족과 나는 복도에서 눈이 마주칠 때마다 미소를 주고받았다. 우리가 국경검문소에서 총을 든 군인들에 이끌려 열차 밖으로 나가 검문을 받고 돌아왔을 때, 소피아는 우리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어주었다.
열차는 쉬지 않고 달렸다. 밤이 되자 사위는 어둡고 객실은 고요해졌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데 청각이 그것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차축이 비틀리며 나는 쇳소리, 마모된 창문 사이로 들리는 달그락거리는 소리, 둔탁한 모터 소리, 세상의 온갖 소음들을 달팽이관 속으로 쑤셔넣었다. 머리가 아팠다. 열차가 좌우로 요동치다가 한 차례 크게 꿀렁거리더니, 순식간에 음소거 단추를 누른 것처럼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그러는 바람에 내 심장도 멎을 뻔했다. 무음(無音)에서 나는 공포는 농밀하게 공기를 잠식했다. 열차가 멈춰선 위치를 알고 싶었지만 네트워크가 불안정해서 지도 어플을 사용할 수 없었다. 적막을 뚫고 사람의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확성기에 대고 말하는 소리였다.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다. 어둠 속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손전등 불빛을 받은, 정체 모를 이의 그림자가 객실 천장에 어른거렸다. 수용소로 끌려가던 유대인들이 이런 심정이었을까. 두려움을 쫓어내기 위해서라도 잠을 자야 했다.
“차라리 잠들자! 잠들자, 자고 일어나면 어딘가에 닿아 있겠지.”
나는 동이 틀 무렵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열차 스피커에서 곧 키이우 중앙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어느새 눈과 나뭇가지만 보이던 황량한 풍경은 사라지고, 콩나물시루처럼 빽빽이 늘어선 아파트들이 창밖의 풍경을 대신하고 있었다. 열차 승무원이 객실을 돌아다니며 승객들의 안전을 점검하는 동안, 나는 촬영장비를 확인했다. 열차는 최종 목적지를 앞두고 마지막 남은 힘을 다 쏟아부었다. 차륜이 선로 위를 긁으면서 내는 마찰음이 고막을 찢을 듯 날카로웠다. 마침내 열차가 멈추고 승객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캐리어를 꺼내들었다. 나도 그 틈에 휩쓸려 밖으로 나갔다. 열차 승강장에는 난방 장치도 없는데 전혀 춥지 않았다. 가족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온기 덕분이었을 것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가족을 만난 사람들은 서로를 부둥켜 안고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나는 소피아 가족의 모습을 촬영하고 싶었지만, 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들을 찾기가 어려웠다.
2023년 2월, 키이우의 거리에는 깃털 같은 눈송이가 소리 없이 내려 희고 보드랍게 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