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리포트 - 2
요즘처럼 뉴스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때가 또 있었을까 싶다.
뉴스에서 전해지는 말들이 참 버겁다. 듣고 있으면 마치 전쟁 영화의 대사를 듣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드론 공격으로 무장단체의 수장이 제거되었다.’,
‘대통령 후보를 암살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곳에선 밤새 살육이 자행되었다.’ ...
차마 입에 담기에도 힘겨운 말들의 연속이다. 소설가 한강 작가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직후, 기자회견을 권하는 아버지에게 “전쟁이 치열해 날마다 주검이 실려 나가는데 무슨 잔치를 하겠느냐”며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벌어진 전쟁을 언급했다고 한다. 작가도 사람일진대 어찌 그 상이 기쁘지 않았겠는가. 기뻐도 기뻐할 수 없고, 웃고 싶어도 웃을 수 없는, 그야말로 야만의 시대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한동안 ‘세계대전’이라는 단어는 역사 교과서에서나 등장하는 말로만 여겼다. 그러나 크로노스의 시간이 세번째 세계대전을 향해 달려가는 듯해 걱정스럽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냉전 시대로의 회귀를 알렸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중동 전체를 화약고로 만들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두 번의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독일의 정치가 심상치 않다.
2024년 9월, 옛 동독 지역의 3개 주에서 지방의회 선거가 있었다. 이번 선거 결과를 들여다보면, 소위 민족주의적 극우 정당이라고 분류되는 AfD, ‘독일을 위한 대안’의 상당한 성과가 제일 먼저 보였다. 선거를 치룬 3개 주 중 1개 주에서 제1당을 차지했고, 나머지 2개 주에선 제1당에 근소하게 뒤진 제2당이 되었다. 결과를 받아보고 한숨부터 나왔다. 독일의 극우가 어떤 자들인가. 세계 대전을 일으킨 전범, 나치다. 이른바, 네오나치로 불리는 정당이 지방 의회에 미칠 영향력을 생각하면 정신이 아찔해진다. 반이민, 반난민, 반무슬림을 골자로 한 정책들을 계속 쏟아낼 텐데, 당장에 이민자인 나로서는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도 한동안 나를 불편하게 만들 AfD,’독일을 위한 대안’, 그 핵심에는 비요른 회케 AfD 튀링겐주 대표가 있다. 지방의회 선거 4개월 전, 그가 튀랑겐 주 그라이츠(Greiz)지역당 행사에 참석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를 직접 만나기 위해 그라이츠로 내려갔다. 언론 인터뷰를 극도로 피하는 정치인으로 알려진 회케를 어떻게 하면 내 카메라에 담을 수 있을까, 나름의 구상도 머릿속으로 그렸다.
행사가 열리는 그라이츠 시 외곽의 한 레스토랑 앞에는 행사 시작 두 시간 전부터 지지자와 반대 시위자들 그리고 이들을 통제하기 위해 나온 경찰과 취재진이 한데 뒤섞여 아수라장이 되었다. 왕복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지지자와 반대자 사이에 맞불 시위가 불을 붙였다. 특히나 이 행사가 뜨거웠던 이유는 회케가 대중 연설 도중에 금지된 나치 돌격대의 구호 “Alles für Deutschland!(독일을 위한 모든 것!)을 외쳐서 검찰로 부터 혐오 발언 및 차별 금지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가, 나흘 전 법원으로부터 1만 3천 유로, 벌금형을 확정받은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지자들은 회케의 벌금 대납을 위한 기부금을 마련할 목적으로, 반대자는 막말 사죄와 사퇴 요구를 위한 행동이었다. 회케의 막말 파문이 처음은 아니었다. 나치 돌격대의 구호를 사용해 벌금형을 선고받은 것만 이번이 두번째였고, 2017년 1월엔 홀로코스트 기념일을 앞두고 베를린에 설치된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기념물’을 두고 수도 한복판에 세워진 치욕의 기념비‘라면서 더 이상 독일이 과거사를 반성해서는 안 된다고 발언해 큰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회케를 둘러싼 구설이 이어지다 보니 유럽 의회 내 민족주의 극우 정당 연합체, ‘정체성과 민주주의(Identity and democaracy)’에서도 AfD(독일을 위한 대안)가 너무 극단적이라며 받아주지 않았다.
행사 시작이 임박한 시각, 지지자들이 행사장 안으로 들어가는 틈에 섞여서 우리도 따라 들어갔다. 내심 입구에서 저지당할 것을 예상했는데 의외로 순순히 입장을 허락해 주었다. 언론사의 카메라맨은 내가 유일했다. 내부를 빼곡히 채운 300여 명이 모두 나치를 옹호하는 극단주의 정당 지지자라는 생각을 하자, 온몸에 조용히 소름이 돋았다. 얼마 뒤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반대자들의 야유를 뚫고 회케가 행사장 안에 들어서자, 환영의 함성과 박수가 야유를 압도해버렸다. 그때 또 한번 소름이 돋았다. 나는 행사장 중앙에 서서 그의 움직임을 따라 카메라를 이동시켰다. 내부 조명이 어두웠기 때문에 조금 더 근접해서 촬영해야 했다. 화면으로만 보던 그를 가까이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키는 큰 편이었고, 짧게 자른 금발 머리와 날카로운 이목구비가 약간은 신비로운,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종교 지도자 같은 느낌을 풍겼다. 그는 강경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지지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다시 한번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러니 진짜 교주 같아 보였다.
과감하게 회케에게 다가가서 직접 인터뷰를 시도해 보고 싶었다. 카메라를 들고 회케가 있는 쪽으로 이동하려는데, 인터뷰를 함께 진행해야할 팀원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어느새 밖으로 나갔는지 창문 너머에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회케 인터뷰를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고?“
어이없고 황당했다. 팀원들을 다시 데리고 들어올까 고민하는 사이 회케는 이미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여서 접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성급하게 나가버린 팀원들 때문에 화가 났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걸핏하면 괴변이나 늘어놓는 회케의 말을 굳이 들어줄 이유가 있을까? 그가 인터뷰를 극도로 피한다고 알려진 것도 어쩌면 와전된 소문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회케의 극우주의 약진이 무서운 이유는 나치 시대의 범죄를 상대적으로 축소하려는 시도, 이른바 역사수정주의가 가져올 재앙 때문이다. 정치적, 이념적 목적에 따라 역사를 왜곡하고, 과거를 재해석하려는 시도는,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짓임이 자명하다. 아돌프 히틀러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수 있도록 이론적 바탕이 되었던 ‘레벤스라움‘이 일본제국주의로 넘어가 ’대동아공영권‘을 탄생시켰던 것처럼, 여전히 반성없는 일본 극우에게 또 하나의 명분이 될까 두려운 것이다. 독일과 일본의 극우가 드리웠던 ‘세계대전’의 악령이 되살아나지 않기를 바란다. 안 그래도 전쟁 때문에 아픈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