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리포트 - 1
하루의 마무리는 기도 시간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밤 아홉시에서 열시 사이에 한다. 첫 두 문장을 이렇게 쓰고 나니 내가 굉장히 계획적인 사람인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다. 초등학생인 내 아이에게 기도 시간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싶어서 습관적으로 다짐하는 말이다. 솔직히 고백하면 가끔 빠뜨리는 날도 있다. 그래도 우리 가족은 이 기도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기도 시간에 특별한 건 없다. 아내와 나 그리고 아이, 이렇게 셋이 둥글게 둘러앉아 눈을 감고 한 사람씩 돌아가며 기도를 드린다. 기도의 주제는 그때그때 다르지만 대체로 가족의 평안을 바란다는 공통점이 있다.
종교적 신념 때문에 기도를 시작했지만, 단순히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다. 기도 시간은 아이에게 자기 생각을 한국어로 표현할 기회를 제공한다. 온종일 친구들 사이에서 독일어만 사용하던 아이는 집에 돌아와 부모와 함께 한국어로 말하고, 생각하는 법을 터득해 간다. 그래서 기도 시간은 아이의 마음 상태를 들여다볼 좋은 기회다. 아직 초등학생인 내 아이의 한국어 실력은 매일매일 복사-붙여넣기를 반복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반복만큼 좋은 학습법이 또 어디 있겠는가? 언젠가는 아이의 모든 생각이 자연스럽게 한국어 문장으로 표현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나의 바람이 현실이 되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순간에 훌쩍 성장한 아이를 마주할 때가 있다.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어느 밤이었다. 평상시와 다를 바 없이 순서대로 기도가 이어졌다. 나와 아내의 순서가 끝나고 아이의 차례가 되었을 때, 깜짝 놀랄 상황이 벌어졌다. 우리 부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실눈을 뜨고 아이의 반응을 살폈다. 아이는 두 눈을 꼭 감고 양손을 가지런히 자기 가슴 앞에 모은 채 진실하게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그만 괴롭혔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무서워 떨거나 다쳐서 아파하는 친구들을 도와주세요.”
아이의 기도가 달라졌다. 당장 ‘푸틴이 누군지 아냐’고 묻고 싶었다. 분명 내 아이는 우크라이나가 어디 있는 나라인지도 모를 텐데,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케이팝 아이돌이 되고 싶다며 훌쩍이던 아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어른들이 야기한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다른 사람을 구원해달라는 기도하게 됐을까? 나는 묻지 못했다. 모든 기도를 마치자, 아내는 아이를 품에 안고 다독여 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이는 학교에서 듣고 배운 것을 기도로 옮긴 것이었다. 선생님은 우리가 사는 유럽 대륙에서 벌어진 전쟁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며
독일어 ‘졸리다리텟(Solidarität)’, 우리말로 ‘연대’를 뜻하는 이 단어의 의미와 쓰임새를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몰라도 나는 이틀 전에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아 현장에 갈 수 없었다. 대신 집에서 격리하면서 전장의 상황을 지켜봤다. 세계의 여러 국가가 일제히 러시아를 규탄했다. 유럽 연합(EU)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통원해 경제적 제재를 가하겠다고 공포했다. 텔레비전 뉴스는 국경 지역에 취재기자를 보내 급박한 상황을 생방송으로 보도했다. 국경을 넘어 피난 나온 사람들은 대부분 여자와 아이들이었다. 오열하는 소녀의 얼굴을 카메라가 클로즈업했다. 민간인의 목숨을 위협하는 참혹한 전쟁. 목도하던 사람들이 분노하기 시작했다. 정치의 영역이 푸틴과 러시아 군부를 압박하는 것과는 별개로 직접 행동하자는 목소리가 높아갔다.
고통받는 자와 함께 울어주고, 아픔을 나누어 짊어지는 ‘졸리다리텟’, 연대의 정신을 실천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잠시 고민하는 사이,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교장으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학생, 학부모, 교직원 전체가 전쟁 피해자를 위한 연대에 동참하자는 내용이었다. 피난민에게 보낼 생필품을 각 가정에서 구매해 학교로 가져와 달라고 요청했다. 우리 부부는 흔쾌히 동의했다. 기도가 말이 아니라 행동이란 걸 아이에게 보여줄 좋은 기회였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를 데리고 곧장 마트로 달려갔다. 아내와 아이는 마실 물이 많이 필요할 것 같다며 쇼핑 카트가 가득 차도록 생수를 담았고, 나는 두루마리 화장지와 물티슈를 집어 들었다. 셋이 힘을 모아 구입한 물건들을 자동차 트렁크로 옮겨 싣는데,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감정이 솟아올랐다. 아이에게도 알려주었다.
“진정한 연대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야 하는 거야”
다음 날 아침 일찍 학교에 갔다. 운동장 한가운데에 구호 물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동네 마트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없는 게 없었다. 새벽부터 부지런히 굴신을 반복한 아빠들 덕분에 5톤 트럭의 화물칸이 금세 가득 찼다. 주변을 둘러싼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재잘거리다가도 아빠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시선이 따라갔다. 아이들의 눈망울이 밤하늘에 총총 떠 있는 별처럼 빛났다.
피난민 임시 대피소는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국경 지역에 대부분 몰려 있었다. 구호품을 전달하기 위해 누군가는 그곳까지 가야 했다. 900킬로미터, 자동차로 쉬지 않고 달려가도 9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다. 학교를 대표해 학부모 아빠 세 명이 구호품을 전달하기로 했다. 화물칸 좌우에 큼지막한 학교 엠블럼을 새긴 트럭이 마침내 부르르 흔들면서 시동을 걸었다. 운동장을 지나 울퉁불퉁한 포석을 밟으며 아치형 교문을 향해 나아갔다. 학생과 교직원 그리고 학부모가 다 같이 그 장면을 지켜봤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와 함께 거리로 나섰다. 삐뚤삐뚤하게 잘린 종이 상자 위에 직접 글씨를 쓰고 나무토막을 이어 붙여 피켓을 만들었다. 엄마가 끄는 유모차에 앉아서, 아빠의 목마를 타고, 그 어떤 전쟁도 반대한다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어 올렸다. 그렇게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광장에 모인 집회 참석자가 십만 명이었다. 그중 절반이 아이들이었다. 우리 가족도 그들과 함께 걸었다. 그리고 한목소리로 외쳤다.
전쟁 스톱!
그날 집에 돌아온 아이는 새로운 내용으로 기도를 드렸다.
“우크라이나에서 피난 온 친구가 내일 우리 반에 와요. 친구가 독일말을 못해서 말은 안 통할 거예요. 그래도 다 같이 재밌게 놀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기도를 마친 아이의 표정엔 설렘이 묻어 있었다. 그러고 나서 새로운 친구에게 선물할 학용품을 챙겨야 한다며 제 방으로 들어갔다.
내 아이가 이 순간을 잊지 않고 기억하길, 오늘 나는 그렇게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