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 반도의 화약고 -1
진짜 진짜 진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5초에 불과했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짧았을 수도 있고, 길었을 수도 있다. 정체불명, 신원 미상의 괴한들이 총을 들고 나를 향해 막 달려오는데 무슨 정신이 있어서 째깍째깍 초시계를 재고 있냔 말이다.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대략 그 정도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 것이다.
나를 포함한 남자 넷을 태운 폭스바겐 골프가 코소보의 북부 도시 ‘즈베찬’에 도착한 건 2023년 9월이었다. 도심에 들어서자, 차가 막히기 시작했다. 처음엔 보통의 차량 정체겠거니 생각했다. 잠시 후 맞은편 차선에서 달리던 은색 BMW SUV가 갑자기 방향을 바꿔 요란한 엔진 소리를 내며 전속력으로 후진하기 시작했다. 앞 범퍼는 이미 부서진 상태로 보닛에 겨우 걸쳐져 있었다. 우리를 지나쳐 30미터쯤 더 가더니 바닥에 스키드마크를 그리며 멈춰 섰다. 차 문이 열리고 검은색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남자 두 명이 내렸다. 그들의 손에 들린 것은 AK소총이었다.
”총이다 총!“
우리는 황급히 몸을 숨겼다. 보통 이상의 덩치를 가진 남자 넷이 숨기엔 차 안이 너무 좁았다. 그래도 들키지 않으려고 시트에 기대어 몸을 최대한 동그랗게 말았다. 갑자기 경찰차 사이렌이 고막을 찢을 듯이 울렸다. 소리 나는 방향으로 시선만 돌렸다. 경찰차는 바로크풍의 오래된 건물 모퉁이를 돌아 버스 정류장이 있는 큰 도로로 지나갔다. 그러자 괴한들이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온다 온다 소리내지마 쉿!“
등골이 오싹해졌다. 목덜미에선 식은땀이 흐르고, 심장이 쿵쿵 소리를 내며 거칠게 발길질했다. 나와 괴한 사이의 거리가 5미터 이내로 좁혀진 순간, 사람이 극도의 공포를 느끼면 자포자기의 상태에 빠진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내 몸은 진공 상태에 갇힌 듯 모든 감각이 작동하지 않았다.
그때 “감독님 찍읍시다. 저기 저기 소총 든 사람들요.” 동료 기자가 화면 보호기를 깨우듯 나를 흔들어 깨웠다. 나는 엉겁결에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화면이 심하게 흔들렸다. 괴한이 코 앞에 올 때까지 호흡을 숨겼다. 기어이 차창을 사이에 두고 괴한과 눈이 마주쳤다. “제발 쏘지 마세요!” 눈을 질끈 감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영화적 상상이 현실이 되었을 때 나는 살고 싶었다. 그 욕망이 무섭게 나를 짚어 삼켰다. “제발! 살고 싶다.”
다행히 괴한의 총부리는 나를 비껴갔다. 안도감과 동시에 직업 정신이 되살아났다. 몸을 일으켜 카메라를 고정했다. 괴한들이 뷰파인더 안으로 들어오도록 렌즈를 당겼다. 그리고 그들의 뒤통수를 겨냥해 발사(녹화) 버튼을 눌렀다.
“잡았다!”
발칸 반도는 역사적으로 불안정하고 갈등이 잦았던 지역이다. 여러 민족과 종교가 얽혀 있어서 언제든 큰 폭발의 발화점이 될 수 있는 위태로운 상태다. 그래서 이곳을 ‘발칸 반도의 화약고’라는 부른다. 최근 들어 코소보와 세르비아 사이의 해묵은 갈등 상황이 아슬아슬하다. 발단은 2008년 코소보가 독립을 선언하면서부터였다. 알바니아계가 인구 구성의 주류를 이루는 코소보는 독립된 국가이길 원했다. 하지만 세르비아는 코소보 지역을 그들의 영토로 간주하기 때문에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다. 서로 다른 생각이 폭력으로 격화되면서 중재에 나선 유엔과 유럽연합(EU)은 회원국을 상대로 코소보 독립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대부분의 국가가 코소보를 독립 국가로 인정했지만, 일부 국가들이 거세게 반대했다. 그래서 내려진 결론이 ‘부분적 승인 국가‘. 이런 애매한 결론이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특히 코소보 북부에서 주로 불꽃이 튀었다. 지역의 통치권을 두고 세르비아계와 알바니아계 주민들이 걸핏하면 충돌했다. 갈등의 심각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즈베찬에 도착해서 휴대폰 유심을 구입했는데 한 도시 안에 통신 서비스도 완벽히 분리되어 있어서 세르비아계 지역과 알바니아계 지역을 오갈 때마다 유심칩을 갈아 끼워야 했다. 또한, 자동차 번호판도 달라서 세르비아 번호판을 달고 알바니아 지역에 들어갔다가는 자칫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 2022년, 코소보가 독자적으로 자동차 번호판을 변경한 것을 문제 삼아 세르비아 군은 특수부대를 앞세워 전투를 준비했다. 전쟁 개시 일보 직전에 미국과 유럽의 중재로 전쟁은 막았지만, 갈등이 해소된 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도 큰일 날 뻔했다. 베오그라드 공항에서 렌트 한 폭스바겐 골프의 번호판은 세르비아에서 발급받은 것이었다. 만약 그 괴한이 알바니아계였더라면 총부리가 그렇게 비껴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한 번의 큰 풍파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엔 잔해가 가득했다. 깨진 유리병이며 자동차의 부서진 파편들이 여기저기서 나뒹굴고 있었다. 도로 위에 차들은 얼기설기 뒤엉켜 있어서 다시 움직이려면 시간이 걸릴 듯 보였다.
“감독님 내려서 저 사람들 어디로 가는지 따라가 봅시다.“
솔직히 무서웠지만, 안 갈 수도 없었다. 운전기사와 현지 코디네이터는 위험한 상황을 대비해 차에 남기로 했다. 우리는 소요 사태가 남긴 흔적들을 카메라에 담으며 따라갔다. 도시 전체에 경보 사이렌이 울렸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가는 게 보였다. 우리도 그들을 따라 뛰었다. 50 미터쯤 갔을까. 반대 방향에서 또 다른 무리가 쫓기듯 달려왔다. 나는 멈춰서서 그 모습을 촬영했다. 누군가가 나에게 소리쳤지만,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한 나는 촬영을 이어갔다. 고성과 괴성 그리고 파성이 한데 뒤섞여, 곧 카오스 상태가 되었다. 눈앞에서 마른하늘이 번쩍하더니, 세르비아계와 알바니아계가 충돌하기 시작했다. 중세 시대 전투를 연상케 하는 싸움이 벌어졌다. 그동안 수많은 시위와 분쟁, 심지어 전쟁 지역까지 다녀왔지만 이만큼 공포를 느낀 적은 없었다. 그때 누군가 내 오른팔을 강하게 잡아챘다. 누군지 확인하려고 고개를 돌렸는데, “맞아 죽고 싶지 않으면 카메라 내려!” 카메라맨처럼 보이는 남자가 영어로 말했다. 내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카메라를 바닥에 내려놓으려 하자, 그가 소리를 질렀다. “아니 아예 보이지 않게 점퍼 속으로 숨기라고!” 나는 겁에 지려 그의 말을 따랐다. 옆에 있던 동료 기자도 당황한 표정이었다.
”안 되겠어요 철수하죠 너무 위험해요!“
그날의 폭력 사태는 세르비아계 비밀경찰이 알바니아계 무장 단체의 고위 간부를 체포하려다가 발생했다. 세르비아 경찰은 언론사 카메라 찍힌 알바니아계 간부의 위치를 확인한 후, 알바니아 지역으로 몰래 침투해 그를 체포했다. 돌아가는 중에 알바니아 경찰에 발각되자 총격전이 벌어졌고, 알바니아계 시민들은 벌건 대낮에 자신들의 영토에서 일어난 사건에 분노해 세르비아 경찰과 충동한 것이었다. 차에 남아 사건의 내막을 파악한 현지 코디네이터가 설명해 주었다. 그제야 장면마다 정체를 알 수 없었던 사람들이 누구인지 퍼즐 조각이 맞춰지듯 선명해졌다. 그런데 나에게 카메라를 숨기라고 소리쳤던 그 남자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어느 나라, 어느 언론사의 카메라맨인지 알 방법은 없었다. 그가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