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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 세상은 내편 Mar 12. 2020

우리에겐 항상 선택권이 있다.

하늘을 보며 살 것

 봄이 오면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을 자주 만났기 때문에  KF94 마스크를 항상 쟁여 두었다. 올해는 그 덕분에 신종 코로나 마스크 대란에도 단톡방에 지인이 전달해 준 링크에 초연하게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니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이번 달에는 종식되길 빌고 있다.


 오늘 출근길 톡방에는 날씨 좋다는 멘트가 유난히 많다. 오랜만에 미세먼지 수치가 낮은 맑은 날이었다. 평소라면 숨을 크게 들이마셨을 텐데, 나와 타인을 위해 마스크를 한 번 매만지고 지하철역으로 들어갔다. 회사는 지하철에 내려서 거의 바로 앞에 있는 건물이라 주변을 돌아볼 것도 없이 기계적으로 건물로 들어간다.

 내 자리가 창을 마주하고 있어서 자리에 앉으며 구름 한 점 없이 말고 파란 하늘을 보았다. 처리해야 할 일을 데드라인까지 할 수 있을지 아직 감을 못 잡아서 일에 집중하느라 자리도 안 뜨고 일했던 것 같다. 점심때 밥 먹고 잠시 스마트폰을 확인하는데 예전 직장동료이자 계원인 쭈야 선임이 내 안부를 묻는다.



 작년 12월 구직장 여직원 계모임에서 나는 좋아하는 일을 발전시켜 나의 업을 만들고 싶다 말했었다. 취미와 업을 일치시킨다는 의미보다는 일을 만드는 주체가 되는 업을 가지고 싶다는 의미가 크다.

 반면, 쭈야 선임은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남기고 싶고 돈 버는 일과 분리시키고 싶다고 했었다. 그래서 직장을 계속 다니면서 돈을 벌고 나중에 아이가 크면 취미생활을 할 계획이라 했다.

 그때 쭈야 선임은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을 며칠 앞두고 있었고, 나는 재취업을 할지 시간을 더 벌 것인지 기로에 서 있었다.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난 지금 우리 둘의 상황은 반대로 바뀌었다.

쭈야 선임은 인터뷰 때와 달리 일이 너무 많아 가정과 병행하기 무리라 얼마 전 일을 그만뒀고, 나는 고민 끝에 경력을 이어 직장을 다니게 되었다. 마음속 미묘한 감정이 올라왔는데, 얼마 전까지 내가 가졌던 여유를 박탈당한 느낌과 그 여유를 지금 누리고 있는 그녀에 대한 부러움이라고 해야 할까.

오늘같이 환상적인 하늘이 있는 날, 밖에서 자유를 즐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 억울한 느낌이었다.

억울한 감정을 오래 가질 틈도 없이 일을 하고 어둑해져 집에 가는 길에 생각을 했다.


 깨끗한 하늘을 보고 맑은 공기를 맘껏 마시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점심시간에 잠깐 걸어 나가서 탄천을 걸어도 됐는데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뿐이었다. 일을 하다가도 잠깐잠깐 고개를 들어 창을 보면 바로 하늘을 볼 수 있었는데 익숙하지 않은 코드와 씨름하느라 스스로 여유를 용납하지 않았다. 누군가 옆도 돌아보지 말고 일만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빨리 잘하고 싶어서 스스로를 쪼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하면서 오는 두려움이 나를 그렇게 선택하게 했다. 두려움이 오면 그렇게 묵묵히 해나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늘 보는 여유는 잃지 않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자연이 시시각각 변하고 오늘의 하늘과 내일의 하늘은 다르다. 오늘의 남편과 아이는 어제와도 내일과도 다를 것이다. 

나는 여유 있는 낮시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는 것과 내 커리어를 쌓고 돈도 버는 일과 교환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글쓰기, 그림 그리기, 팟캐스트 방송하기, 가족과의 시간)을 시간을 조율할 뿐 포기하지 않았다. 모든 상황이 구멍 하나 없이 완벽할 수 없다면 잘 조율하는 과정을 즐기기로 했다.

묵묵히  적응하여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오늘 하늘 못 본 것이 조금 아쉬워 단톡 방에 오늘의 예쁜 하늘 사진 찍은 것 있으면 좀 빌려 달라고 요청했다. 날씨는 좋았는데 사진 찍은 사람은 없었다. 잠시 후 지인이 나에게 하늘을 선물했다.

이것으로 오늘 나는 특별한 하늘을 가졌고 감사할 거리가 추가되었다.


선물 받은 특별한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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