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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 세상은 내편 Mar 15. 2020

퇴사 후 7개월을 보낸 후 얻은 것(1)

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법


"나 있잖아. 너무 좋긴 한데 하루 루틴이 안 잡히는 느낌이야. 매일 일정한 시간에 나가다가 그 시간에 자유가 생겼는데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아. 집에 있으면 집안일이 보이고, 집안일하고 나면 오후가 된다니깐."

"어쩜, 나도 그랬는데. 그래서 내가 작은 도서관을 찾아가고 활동하게 된 거잖아."

"거기다 왜 간식은 수시로 당기는지 자꾸 군입거리를 찾아"

"하하하 나도 그랬는데, 누룽지 사다 먹어봐."


 퇴사 후 한 달쯤이었나, 나보다 1년 이상 퇴사 선배인 지인과 통화한 내용이다. 과거 자신과 비슷한 적응 과정을 겪고 있는 내 이야기에 간식에 대한 조언을 해주며 같이 웃었다.


 처음 며칠은 여유를 부리기도 했지만 하루 루틴이 생각보다 안 잡혀 불안했다.

다음과 같은 하루도 여러 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 준비시켜 남편과 현관 앞에서 보내고 몸을 돌리는 순간 어질러진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거실 및 안방 이불 정리, 식탁 정리를 한 다음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한다. 빨래가 눈에 들어와 세탁기 돌리고 어제 널어둔 빨래를 갠다. 그간 미뤘던 집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떠오른다. 서랍의 옷을 하나하나 꺼내 버릴까 말까 고민부터 시작해 갑자기 예전 잘 입던 옷이 생각나서 찾는다고 왔다 갔다 하고 나니 어이없게 점심시간도 훌쩍 넘겨 버렸다.  점심을 먹고 미뤄뒀던 글 쓰고 유튜브로 강의도 듣고 간식 먹고 하면 남편과 아이가 올 시간이라 저녁 준비를 한다. 저녁은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


 매일 사무실에서에 정해진 시간만큼 정해진 일을 하던 틀에서 벗어났다. 자유롭게 시간을 배치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는데, 허무하게 하루가 끝나는 느낌이었다.

 책이 나오고 얼마 되지 않아서 잡지 인터뷰도 하고 북콘서트 준비, 책 홍보 관련 준비, 소모임 등으로 일주일에 몇 번씩 강남으로 나갈 일이 많은 때여서 바쁜 날도 많았지만 약속이 없는 날은 특별히 한 것 없이 하루가 지나가는 듯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함과 조급함이 밀려왔다.

지인이 바쁘게 살아야 잘 사는 거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달려왔는데, 그림책 <잃어버린 영혼>을 읽고 바쁘게만 살아 영혼을 잃어버 주인공과 자신이 같다고  했다.


"누군가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본다면,

세상은 땀 흘리고 지치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로, 그리고 그들을 놓친 영혼들로 가득 차 보일 거예요.

영혼은 주인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으니까요. 영혼들은 그래도 자기가 주인을 잃었다는 걸 알지만, 사람들은 보통 영혼을 잃었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 잃어버린 영혼, 올가 토카르축 글/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


나도 그랬다. 뭔가 하고 있어야 한다는 강박과 불안감, 그건 내 이야기기도 하고 당신의 이야기기도 하다.

'미래는 볼 수 없어 원래 불안한 거고 내가 지금 완전히 멈추지 않았는데 잘 못 될 리 없잖아'
스스로를 믿기로 했다.


쉬는 도 몸을 움직이거나 머리에 뭔가를 끊임없이 집어넣으며 쉬어야 하는 줄 알았다.
불안감으로 input 하던 것들은 잠시 멈추고 제대로 쉬는 것부터 해보기로 했다. 음악도 없이 고요한 가운데 거실에 누워 하늘 보다가 잠시 졸기도 했다.
최대한 심플하게 하고 싶은 것을 선택적으로 했다.

쉬는 동안 내 안의 소리가 더 잘 들렸다.

 우선 회사 다닐 때 내가 낮시간이 자유롭고 여유로워진다면 하고 싶었던 일을 나열하고 하나씩 실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듯이 뭔가 input 하고 싶다는 갈증이 느껴지면 강의와 책을 찾았다. 그리고 쏟아내고 싶어 지면 글, 그림, 아이디어 적기를 해나갔다.


요일별 정기적인 일을 배치하고 저녁에 하던 운동과 그림 수업을 오전 시간으로 옮겼다. 

낮에 하는 좋은 강의를 신청하고,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과 약속도 차례로 잡았다.

미뤘던 나깨순노트 업데이트 작업을 하고 3기를 진행했다.

아이 어린이집 부모 재능기부 수업을 했다.

모임 사람들과 여름날 줌으로 콘텐츠 회의하면서 나왔던 씨앗 같은 아이디어가 의견이 오고 가며 구체화되고, 나는 뜬금없이 팟캐스트가 하고 싶어 졌다. 수화기 너머 모임 동료에게 팟캐스트로 연결해서 하자고 던졌고 모든 것이 'ok'였다.  

도서관을 자주 드나들었다. 도서관에서 하는 프로그램을 유심히 봤고, 드로잉 수업을 발견하고 신청해서 새로운 방식으로 한 발짝 더 그림에 다가섰다.

청량한 가을 산책로를 자주 걸었고 책 한 권을 들고 카페 가서 실컷 읽고 오기도 했다. 

아이 하원을 일찍 해서 산책하며 가을 하늘을 실컷 느꼈다.

평일 어린이집 대신 엄마와 놀러 가고 전시회를 갔다.

장롱면허였는데 아이 태우고 혼자 운전할 수 있게 되었다.  

브런치 작가 신청을 위해 주제를 기획하고 샘플 글 3개 쓰기를 기획했고 한 번에 승인이 났다.

혼자 책을 읽는 것을 넘어 함께 하는 독서를 위해 나에게 맞는 독서모임을 찾았다.

그림으로 연결된 인연이 생기고 서로 재능을 나누는 고정적인 아트 모임이 결성되었다.

북콘서트를 보려고 엄마가 지방에서 오셨을 때 다음날 2시간 넘게 산책하고 브런치 먹으며 따뜻한 이야기를 나눴다.


소소한 것들을 많이 나열했지만 나에게 하나하나 가치가 있는 경험이고 앞으로 하는 일에 중요한 시발점으로 남을 것이다.


7개월 동안 시간을 내편으로 만들어 부리는 완전한 주인이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제대로 쉬는 것이 무엇인지 느껴보고, 바쁜 하루 속에 지나쳤던 소중한 삶을 찾았다. 그리고 내 마음속의 소리를 따라 살되 현실과 조화롭게 사는 길을 고민하게 되었다. 잠시 멈춤은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이 감각을 잊지 않고 싶다.


일을 시작한 지 2주가 된 지금 조금씩 여유를 잃어가려 할 때, 내가 7개월 동안 기록한 글을 보며 다시 한번 그 느낌을 떠올려 본다.


퇴사가 아니도 긴 시간이 당신에게 주어진다면 어떻게 시간을 쓰실 건가요?

먼저 조급함을 내려놓고 남의 시선 상관없이 나에게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리스트업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다음 글에서 퇴사 후 7개월을 보낸 후 얻은 것(2)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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