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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지 Jul 27. 2019

넌 계획이 다 있구나

어차피 계획대로 되지 않으니 기준을 가져가기로 했다.



“그래서 계획이 뭔데?”



요즘 들어 제일 많이 들은 질문이다.  여기에 나는 거의 녹음된 파일 재생하듯 같은 답변을 늘어놓지만, 솔직히 말하면 오지랖 넓은 질문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그럴싸한 말들에 불과하다.  


오히려 나는 '계획이 없는 쪽'에 더 가까운데 , 대신 '일정한 방향성과 기준'을 가져가기로 했다.  



사람들이 나를 알게 되면서 의외의 구석으로 여기는 것 중 하나는, 내가 '계획충'이라는 사실이다. 좀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플래너충'인데,  매일 아침 플래너에 빼곡히 할 일들을 정리하고 그 주의 스케줄과 비교해가는 것이 내 하루의 낙이다.  


일 년은 물론이고, 월, 일, 심지어 시간 단위로 계획을 짜는데, 이토록 계획에 계획을 세우니 깨달은 하나의 진리가 있다. 바로 '어차피 계획대로 안된다'는 것이다.  



이번 글은 제목을 무엇으로 할까 하다가, 얼마 전 개봉한 영화 기생충의 명대사 "아들아, 역시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말고 다른 옵션은 크게 떠오르지 않았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

물론 영화 기생충의 예시는 많이 극단적인 사례지만, 26살 이 짧은 삶에서도 계획이 맞아떨어진 적은 결코 없었다.  21살 때 '패션쇼에서 스트릿 사진을 찍을 거야'라는 꿈으로 무작정 떠났던 파리 생활의 끝은 왠 뜬금없는 자동차 회사의 취업이었고,  24살의 '나는 스튜디오에 다니면서 자유롭게 살 거야'라는 포부는 26살이 되니 '아~ 더 자유롭게 살래. 맘대로 살래'로 변했다. 이런 어긋나는 계획들이 진로뿐일까.  성인이 된 이례로 만났던 남자 친구들과는 결혼할 줄 알았고, 그토록 깔깔깔 웃어대며 사이좋게 지내며 평생 볼 것이라 생각했던 친구들은 가벼운 카카오톡 안부 조차 어려운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접점 조차 안보이던 몇몇 이들과는 소중한 대화를 나누면서 '아 우리가 이렇게 될 줄 꿈에도 몰랐지' 라며 감탄한다.



그러니 플래너의 빼곡한 계획들을 따라서 어찌어찌 그 날의 할 일과 그 주의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어차피 큰 삶의 방향은 계획대로 안되더라.


그래서 대신에 계획이 어긋나는 것이나 갑자기 변경되는 것에 크게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이는 시시 때때로 찾아오는 새로운 기회에 나를 닫아두지 않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갑작스레 찾아온 변수에 당황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금의 나는  21살이나 24살 때 내가 생각했던 나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지만, 여느 때보다 만족도가 높다.  그리고 과거의 내가 나를 바라보면, 나의 행보에 고개를 갸우뚱 할 수는 있겠지만 거기에 이의 제기를 하진 않을 것이다.


여기에 '반계획 주의자'적인 입장을 조금 더 덧붙이자면,  사람이라면 매일, 아주 조금씩이라도 (설령 그것이 개미의 눈곱만큼일지라도 ) 성장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심지어 어제 세운 계획도 오늘의 나보다는 아주 티클만큼 좁은 시야에서 세워진 계획일 것이다.  그러니 매일매일 삶의 방향을 구체화 시켜나가는 것이 올바른 수순 일 수 있다.



어제의 내가 세운 계획은 오늘보다 좁은 시야에서 세워진 것일 수 도 있다.




나는 이렇게 계획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나 스스로를 '말랑말랑'하다고 표현하고 싶다.  

마치 컵 안의 물처럼, 어떤 모습도 될 수 있고, 컵의 모양이 달라진다 하여 그 안의 내 가치가 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되려 - 이 컵, 저 컵 거치면서 얻은 경험들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그 '다양성'의 빛을 발할 것이다.


물론, 이런 말랑말랑한 생활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어리면 어릴수록, 경험이 부족하면 부족할수록 그 단점은 명확히 드러나는 것 같더라. 나는 매번 계획을 수정할 때마다 '누적성이 있는가'를 고민하게된다.


어떤 하나의 목표를 강력하게 두고 차곡차곡 쌓아가는 사람들은 빠르게 '누적성'이 생기고, 누군가가 그들을 기억할 때 몇 가지의 키워드로 간추려진다.  마치 단단한 큐브를 쉽게 쌓아 올리듯, 그들의 노력에 따라 목표로 다가가는 것에 가속도가 붙는다.  

큐브와 비정형적인 물체를 쌓아 올리는 속도를 비교하면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 수록 그 차이들은 점점 커진다.




목표를 굳건히 세워놓는 사람들은 단단한 큐브를 쌓아 올리는 것과 비슷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속도가 붙어 그들이 원하는 바에 좀 더 빠르게 다가가는 것 같더.


계획을 자주 수정하는 나는,  지금 까지에야 운이 좋아서 일말의 누적성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모양이 불규칙적인 것을 쌓아 올리면 처음에는 어느 정도 쌓아 올릴 수 있지만,  쌓으면 쌓을수록 또 하나의 블록을 올리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그러니 아무런 기준 없이 계속 계획을 바꿔 나가다 보면, 나에게도 이런 행운이 언제까지 찾아올지는 모르는 법이다.  



그렇기에 나는 '기준'을 세워두기로 했다.

  

'목표'를 정해놓는 것은 '도착지'를 정하는 것이다. 마치 여러 섬을 거쳐 일주하는 커다란 항로와 같다.  지름길로 가진 않더라도 언젠가는 도착할 것이다.


'기준'을 세운다는 것은 항로나 여정을 짜는 것과는 다른데, “콤파스”의 비유를 들고 싶다. 나의 중심이 되는 것을 정하고, 그 중심에서 너무 크게 엇나가지 않도록  하나하나 플랜을 짠다. 이것이 “기준”을 세우는 것이다.

목표를 정하는 것은, 큰 항로의 도착지를 설정해두는 것이다. 기준을 잡는 것은 컴퍼스의 중심을 찍어두는 것이랑 비슷한 것 같다.



이때 기준은, 구체적인 상황이나 직위 등을 담은 것이 아니라, 내가 우선시하는 가치관들로 구성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하는 일들을 가둬두지 않고, 다양한 변수에 수긍하게된다.


그리고 기준에 맞추어 할 수 있는 것들의 리스트를 만들고, 기준에 맞지 않는 기회들은 겸허히 거절하기로 했다.



나의 경우, 퇴사를 하면서 세웠던 나의 커다란 기준은 아래와 같다.

1. 소중한 사람들과의 충분한 시간
2. 일을 하면서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작업들
3. 계속 내가 배우고 성장할 수 있을 것
4. 막연히 동경하던 작은 꿈들을 실천할 시간

그렇기에 몇 가지 옵션이 왔을 때, 기준에 맞지 않는 일들은 깔끔하게 걸렀다. 물론 기준에 잘 부합하는 일이라 생각하면 밤을 지새우고라도 그 기회를 잡고자 했다.  


예를 들어 내 다음 플랜을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로의 이직으로 가져가는 것도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지 었다. 하지만 '막연히 동경하던 작은 꿈들을 실천할 시간'이라는 네 번째 기준에는 부합하지 않았다. (물론 내가 하기 나름이지만,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

그래서 프리랜서로 전향하기로 했는데, 이 선택지가 특히 사회초년생인 나에게 꽤나 위험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기준에 '세계 최강 디자이너가 되기'는 없으니, 굶어 죽지만 않는 다면 그토록 나쁜 선택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런 방식으로 나는 내 기준에 맞는 일과를 하나하나 플래너에 넣었다.

오전에는 글을 쓰고, 오후에는 일러스트 외주를 하고, 저녁에는 전시 기획을 준비하고, 밤에는 가게 준비를 한다.  또 화요일 목요일에는 시공자를 따라 인테리어 일을 배울 수 있도록 계획을 짜고 있다.

플래너가 빈틈없이 꽉 찼지만, 내 기준에 부합하는 이 작은 업무조각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나를 발전시켜줄 것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기준을 세워두고 하나씩 이루는 나의 행보를, 나는 '점을 찍는다'라고 표현한다.  

당장에는 그 점들이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내 글도, 인테리어도, 일러스트도 아직은 그 거리가 멀어보인다. 하지만 이 점들은 어찌 됐건 하나의 축을 기준으로 계속 찍히고 있다.
개별 점들이 기준에 부합하는 정도는 다를 수 있어도, 다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흔들거리고, 어리숙하더라도 시간이 지나 그 개개의 점들이 굳건하게 자리를 잡는 날이 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점들을 이어 새로운 것을 내세우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은 나의 글이, 그림이, 일들이, 만나는 사람들이 어떤 연관성 없이 산재되어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서로 간의 연계성이 더욱 공고해져 무엇인가 새로운 일을 벌일 수 있을 것이다.



태양을 중심으로 행성들이 회전할 때, 사람들은 '태양' 자체도 기억하지만 개별 행성들도, '태양계'도 기억한다. 어쩌면 내가 그리는 계획의 모습은 그런 거지 않을까 싶다.


내가 가운데 굳건히 빛나고 있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키우고 싶은 것들이 나의 굳건한 기준을 중심으로 머물러 있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때로는 나의 다양한 모습들을 (행성), 때로는  나를(태양), 때로는 나와 내 다양한 모습들 모두를 (태양계)  동시에 바라봐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멀리서 보았을 때, 마치 별자리처럼 나의 다양한 모습들이 서로서로 연결되고 있었으면 한다.

그래, 나는 계획은 없고 기준은 있다.
아직 나의 점들이 자라서 행성이 되지는 못했지만, 시간의 문제가 아닐까.  나에게 계획을 물어보는 이들이, 내 점들이 행성으로 성장해가는 것을 지켜봐 주길..!




<어려서 그렇습니다>에 대해..


"네가 어려서 그래~" 어떤 질문에 대해 열에 여덟 꼴로 돌아오는 답변이었습니다. 지금도 충분히 어리지만, 좀 더 어렸을 때는 그 말이 그렇게 듣기 싫었는데 - 이제는 '뉘예 뉘예 제가 어려서 그렇습니다' 라며 당당하게 제 이야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어려서 그렇습니다>는 당당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26살 늦깎이 사춘기 영지의 자전적 에세이로, 매주 토요일에 연재하는 것을 '일단'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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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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