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헛구역질을 했다
"자, 여기"
결혼 후 처음 맞이하는 남편의 생일 전날에 어머님은 나에게 커다란 미역 봉지를 주셨다.
"미역이랑 소고기랑 같이 볶아. 아! 참기름 넣으면 맛있어. 그리고 육수 넣고 끓이면 돼. 쉬워~."
이전에도 몇 번 끓여본 적 있었고, 어머님의 마음도 알기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사실 남편은 아침을 먹지 않는다. 속이 불편하다나. 그래서 매일 아침밥 하는 수고는 없지만, 그래도 생일이지 않은가? 자기 생일이니까 조금은 먹겠지..
생일 당일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미역 봉지를 뜯었다. 마른미역을 스테인리스 볼에 조금 넣는다. 탱탱탱. 마른미역이 스테인리스와 부딪히는 소리가 경쾌하다. 이것들이 물을 잔뜩 먹고 몸집을 키우면, 그때부터 미역국 시작이다.
흐물흐물해진 미역을 확인하고, 어제 마트에서 사 온 국거리용 소고기를 꺼낸다. (핏물을 좀 뺐어야 했을까? 어쨌든..) 가스레인지의 불을 켜고 냄비를 올려놓는다. 조금 달궈졌다 싶으면 참기름 쪼르륵. 소고기 치이익, 불린 미역도 치이익. 당강당강. 숟가락이 냄비 속을 휘젓는다.소고기가 어느 정도 익고, 미역의 수분이 날아가면 물을 조금 붓는다. '아... 어머님은 육수를 부으라고 하셨는데 깜박했다. 맛없으면 조미료 넣기로 하지 뭐...' 국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하고, 물이 졸아들 때마다 물을 조금씩 더 붓는다. 미역이 파칵파칵 끓고, 뽀얀 국물에 녹색 기름이 반짝반짝 빛난다.
"여보, 일어나~. 미역국 했으니까 먹어~"
거의 눈을 감다시피 한 남편이 나온다. 나지막이 '나 안 먹어도 되는데...' 하는 소리를 들은 것도 같다.
"그래도~ 첫 생일이잖아. 어머님이 하라고 하셨어!" 하면서 억지로 식탁에 앉힌다. 어떤 반응일까? 두근두근. 나도 마주 앉는다. 미역국을 한 숟갈 떠먹은 남편.
'우욱'
응? 뭐야?
'욱'
남편이 헛구역질을 한다.
"나 못 먹겠어..."
왜? 난 맛있었는데?
"사실.. 나 미역국 잘 못 먹어. 비린내가 나서. 그리고 특히 아침엔 더더욱. 비위가 약하거든"
비린내가 난다고? 어디 먹어보자. 숟가락을 뺏어서 한 숟갈 떠먹어본다. 그런데 나는 전혀 모르겠다. 알고 보니 남편은 엄청난 미각과 후각의 소유자였다. 지금까지도 육수의 재료만 바꿔도 알아채는 귀신같은 감각의 소유자. 반대로 나는 돼지고기인지 소고기인지 먹어봐도 잘 몰랐던 (지금은 안다) 둔감 탱이. 그 날 결국, 내 정성은 그놈의 후각에 막혀 들어가질 못했다. 아, 어머니... 30년동안 어떻게 아들에게 미역국을 먹이신건가요?
아마도 남편이 요리를 했다면 참 맛있게 했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이 사람은 바빠서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았고, 아이를 키우는 나는 어쩔 수 없이 집의 부엌을 담당해야 했다. 그로부터 7년.. 미역국은 잘 끓이냐고요? 아직까지는 확률이 반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