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지 않으면 끝을 알 수 없습니다.
미치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제게 미치다는 말은 부정적인 느낌보다는 긍정적인 느낌을 더 많이 줍니다. 정신이 나갔다, 제정신이 아니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어느 하나에만 몰두하는 것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다른 모든 것을 잊고 그 일에만 몰입하는 것을 저는 떠올립니다. 몰입이나 flow라는 단어보다 훨씬 더 친근하고 강열한 느낌을 저는 받습니다. 그래서 미치다는 말에 긍정적인 느낌이 더 강하게 드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무언가에 미쳐보신 적이 있는지요? 혹시 지금 무언가 미쳐 계신가요? 아마도 과거를 돌아보면, 스스로 미쳤다는 말을 쓸 정도는 아니어도 무언가에 푹 빠져서 지냈던 시기가 있을 것입니다. 저도 과거를 돌아보면 다른 어떤 것보다도 우선순위를 두었던 것들이 몇 가지 떠오릅니다. 우표 수집을 한다고 우체국 앞에서 새벽에 줄을 서보기 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업에 우선순위를 많이 두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 때는 종교생활이 가장 중요해서 학교 수업이 없으면 대부분을 성당에서 보냈습니다. 아내를 만나 서로를 알아가던 때에는 어떻게 하면 한번 더 만날 수 있을까에 모든 생각이 가 있었습니다. 또 유학시절에는 실험하는 것이 참 재밌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 무언가에 미쳐본 것은 아쉽게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우선순위를 높게 둔 것뿐이지 식음을 전폐하고 파묻혀 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 순간 우선순위를 높게 두었던 것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성공을 자신이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목표가 본인이나 다른 이가 보기에 쉽게 달성할 수 없는 것이라면, 목표를 달성한 사람들은 아주 간단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적어도 어느 한순간은 그 목표에 미쳐 있었던 것입니다. 성공한 운동선수들에게 성공의 비결을 물어보면, 재능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은 그 사람의 재능을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본인은 노력을 이야기합니다. 한발 더 뛰고, 한번 더 던지고, 한번 더 휘두르고, 한번 더 들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가까이에서 그 사람을 바라본 사람들은 더 강하게 증언을 합니다. 그 선수가 하는 만큼 자기는 따라갈 수가 없다고까지 이야기합니다. 심지어 부상으로 몸을 사용할 수 없다면, 자신이 지난 경기를 꼼꼼히 돌아봅니다. 잘한 것은 무엇이었는지를 보고, 그 속에서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냅니다. 유명한 운동선수가 아니라도, 주변에 성공했다는 말을 듣는 사람에게 성공의 비결을 물어본다면, 때를 잘 만났다던가 운이 좋았다던가를 먼저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조금만 더 이야기를 해보면, 얼마나 그 일에 미쳐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제가 미쳐 본 적이 없다고 했지만, 그래도 그 순간 우선순위를 가장 높게 두었던 것을 나눠보겠습니다. 유학 시절을 생각해 보면, 저는 실험실에 가장 오래 있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실험은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고 자부합니다. 학교에 있는 동안은 거의 모든 시간을 학업과 실험에 보냈습니다. 요리를 하면서 설거지를 같이 하는 사람처럼, 한 가지 실험 중간에 시간이 나면, 바로 다른 일을 시작했었습니다. 하나를 하는데, 하루가 걸리는 일도 서너 개를 함께 하기도 했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확인해도 되는 것을 저는 아침저녁으로 확인해서 잘못된 실험을 바로 중단했습니다. 그러면 준비된 다음 시료로 바로 새 실험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주말은 항상 가족과 함께 보냈습니다. 연말연시도 없이 돌아가는 실험실이었지만, 졸업하기 직전에 교수님께 그해 연말연시는 가족과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교수님이 잘 다녀오라고 하신 말씀에서 간접적으로 그동안의 제 노력을 인정받는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덕분에 9편의 논문을 쓰고, 3년 만에 학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 더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지금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 저는 마땅한 일이 없었습니다. 팀장 선임이 되기도 했지만, 그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왔습니다. 그러고 나서 맡은 일이 이 회사에서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당시에는 구체적인 과제도 없는 미주 담당을 맡았는데, 갑자기 과제가 만들어졌습니다. 문제는 지금까지 기술로는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목표였습니다. 저 혼자 했다고 할 수는 없고 당시 동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한번 해보자,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고객과 함께 과제의 목표를 한 줄 한 줄 구체화시키면서 야근과 출장을 반복하며 결국 과제를 성공시켰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시차로 인해 새벽과 저녁 미팅이 빈번하고, 자료 준비로 인한 야근이 반복되었지만, 당시는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해내야만 한다는 의지가 더 강했었습니다. 저는 감히 덕분에 지금의 전기차 시대가 올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후회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해볼걸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는 것입니다. 둘 다 같은 후회이지만, 제게는 느낌이 많이 다릅니다. 해볼걸 하는 후회는 머릿속에서 잘 사라지지가 않습니다. 계속 남아서 저를 괴롭힙니다. 지금이라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듭니다. 일단 하고 난 후에 잘못했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제 경우는 생각보다 금방 잊혀집니다. 이제는 그러지 않으면 되지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또 도전을 하기도 하지만, 똑같은 실수만 반복하지 않으면 됩니다. 물론 전제는 본인의 의지로 하고 싶은 일을 한 것이냐 못한 것이냐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나 다른 사람의 강요에 의한 것과는 다릅니다. 박사학위가 제게 그랬습니다. 석사를 마치고 바로 진학할 기회는 있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취업을 하고 나니, 조금만 상황이 바뀌면 박사학위를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그 마음을 계속 가지고 있다가 결국은 아이 둘을 데리고 유학을 갔습니다. 유학생활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지만, 지금도 가장 잘한 결정 중에 하나가 박사 학위를 딴 것입니다. 어쩌면 학위를 하지 않았어도, 지금의 모습에는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학위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 어떤 자리에 있더라도 학위에 대한 아쉬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여전히 저는 머릿속에서 계속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편입니다.
지나가지 않으면 끝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지구의 끝이 낭떠러지라고 생각하던 시절, 그 끝을 지나간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불광불급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미치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한계를 미리 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몸짱들이나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나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나는 여기까지밖에 못해, 그걸 내가 어떻게 해라고 하면서 스스로가 도전의 걸림돌을 만들어버립니다. 여기까지가 내 역할인데, 이 일은 해본 적이 없는데, 시간이 없는데 등등의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냅니다. 모든 일을 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을 도전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런 계획 없이 800km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배낭 하나를 메고 걸었을 때가 생각납니다. 온몸이 다 부서질 것 같고,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는 고통과 지침을 뒤로하고, 아침 해가 밝으면 다시 배낭을 짊어지고 길에 몸을 맡겼던 시간이었습니다. 몇 번의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마침내 도착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느꼈던 그 안도감이 생각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지금 한번 도전하고 싶은 일이 있으신가요? 그런데, 스스로 한계를 정한 것이 있지는 않나요? 혹시 그렇다면, 한 번쯤 늦바람이 들어보는 것은 어떨는지요? 거창하게 무언가에 미치는 것은 아니라도 지금 일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에서 스스로 한계를 정한 것은 없는지, 해보지 않고 포기한 것은 없는지 돌아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