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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가는대로 May 17. 2024

성령 강림 대축일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누구나 그렇듯이 저도 지나온 시간들을 가끔씩 돌아봅니다. 잊고 싶은 순간이지만 아직도 기억나는 것도 있고, 평생 간직하고 싶은 기억들이 희미해져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일들은 저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도 있고, 전혀 의도하지 않았으나 발생했던 일도 있습니다. 제 능력 안에서 가능했던 일들도 있었지만,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일들도 참 많았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참 잘 왔습니다.


지나온 순간순간을 돌아볼 때 정말 감사하는 일은 어느 순간에나 제 곁에는 저를 믿어주고, 손을 잡아주고, 어깨를 내어주며, 그늘이 되어주었던 분들이 계셨다는 것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좋은 순간에는 항상 누군가가 함께 있었습니다. 너무나 힘들게 지나와서 기억하고 싶지도 않았던, 정말 혼자라고 생각하며 외로움에 갇혀 있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조차도 제 곁에는 저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오늘을 살아가면서 가끔은 제 곁에 항상 저를 믿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는 순간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생각한 대로 잘 풀릴 때 어깨가 으쓱할 때, 마치 제가 잘나서 제 능력으로 혼자 했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또 모든 일이 다 꼬여서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를 때, 왜 제가 정말 힘들 때는 혼자서 문제를 풀어야만 하는 것인지 화가 나기도 합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그런 제게 들으라고 하십니다.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 코린토1 12,3


예수님은 사도들을 부르실 때, 세상에서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어부와 세리도 부르셨습니다. 사람들 앞에 서기보다 어쩌면 사람들을 피하는 것이 익숙한 사람들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지역을 언어를 이야기하기는커녕 어쩌면 자기 고장을 벗어나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일을 하는 데는 어떤 문제도 없었습니다. 사도들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도들 옆에 누가 함께 하고 계셨는지가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옆에 계실 때는 그들을 시기하는 율법학자들 앞에서도 당당했지만, 예수님이 곁에서 멀어지면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해 깨어있지 못했고, 예수님이 잡히신 후에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고,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다락방에 숨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옆에 계신지 아닌지가 사도들을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던 예수님은 세상의 일을 마치시고, 원래 자리로 돌아가실 때 당신을 대신해서 사도들과 함께 할 협조자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이제 사도들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다른 사람이 되어,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합니다. 어떤 시련에도 목숨을 다하여 우리를 대신하여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합니다.


성령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사도들에게만 해당되지는 않습니다.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도 그렇습니다.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잠시 동안은 자신의 힘으로 살아간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그 순간도 주위를 돌아보면 나를 도와주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경쟁을 해서 이기고 올라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나와 경쟁을 해주는 사람이 있기에 앞으로 나갔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꼭 나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만이 나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닙니다. 나를 성장하게 만드는 사람이라면 방법과 상관없이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내 주변에서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도와주거나 자극하는 사람이 성령의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서 지치고 쓰러져 있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마음이 든다면 그것도 성령의 함께 하심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심지어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도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며 내 옆에서 기다리고 계시는 성령의 모습도 생각해 봅니다. 성령이 항상 내 곁에 계시다고만 믿으면 됩니다.


충분한 역량을 가지고 있어도 긴장하면 실수를 합니다. 때로는 길 위에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합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수 있습니다. 나만 믿으면 그렇습니다. 내가 실수해도 누군가 메꿔줄 것이라고 생각하면 실수가 오히려 줄어듭니다. 내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시야가 넓어집니다. 항상 성령이 함께 하고 계시다고 믿으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성령의 함께 하심을 믿으면 어떤 일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 2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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