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에서의 신뢰는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조직은 특정한 목적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했습니다. 때로는 다른 공통점이 없이 목적, 목표만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이기도 합니다. 대학의 동호회가 아니라 회사의 한 부서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공동의 목표를 빼고 나면 어떤 때는 공통점을 정말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역할이 다르고, 목표가 다른 조직 간에만 갈등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목표를 추구하고 있는 조직 내에서도 갈등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목표 공유 이외에 조직 안에 필요한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신뢰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간단한 누구나 그렇다고 생각하는 신뢰가 부족한 조직이 가끔 있습니다. 경쟁이 심해지고, 공사 구별이 더 뚜렷해지는 요즘 조직 구성원 간의 신뢰가 더욱 중요해지게 됩니다.
잠시 축구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가장 축구를 잘하는 팀을 떠올려보십시오. 축구장에는 한 팀 당 11명의 선수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11명의 선수들은 각자의 위치가 있습니다. 특히 골키퍼는 손을 사용하는 특권이 있기에 다른 색의 유니폼을 입고 들어갑니다. 경기가 시작되면, 공을 가진 선수뿐 아니라, 공을 가지지 않은 선수들도 열심히 뛰기 시작합니다. 공을 가진 선수는 항상 자기보다 더 좋은 위치에 있는 동료를 찾습니다. 때로는 빈 공간이 보이면 그쪽으로 동료가 뛰어갈 것이라고 믿고 패스를 합니다. 자기가 수비를 뚫고 들어가는 경우는 자기보다 더 좋은 위치에 있는 동료를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공을 가지지 않은 선수들도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상대편과 우리 편 선수들의 위치와 공의 흐름을 보며, 공격을 한다면 빈자리를 찾아가고, 수비를 한다면 상대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계속 움직입니다. 내가 빈 공간을 찾아서 뛰어들면, 동료로부터 멋진 패스를 받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공격수라고 수비를 하지 않는 선수가 없습니다. 누군가 실수를 하면 그 실수를 탓하기 이전에 동료의 실수를 막기 위해 결사적으로 뛰어갑니다. 결국 골을 만들고 승리합니다. 그리고 경기를 마치면 다 같이 팀의 승리를 만끽합니다.
이번에는 성적이 좋지 못한, 어쩌면 동네 축구팀을 떠올려봅시다. 11명이 경기를 하는 것은 같은데, 나보다 더 좋은 위치에 있는 선수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아갈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어쩌면 동료를 확인할 여유도 없습니다. 공과 자신만을 보며 뛰어갑니다. 그러다 보면, 수비에서는 계속 빈자리가 생기고, 공격에서는 공간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공을 쫓아갈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러다 골을 먹고 맙니다. 마침내 팀이 패하면 누군가의 실수를 먼저 떠올립니다.
가장 축구를 잘하는 팀이라고 해도 11명이 가장 친한 친구는 아닐 겁니다. 그러나 경기장에서의 역할은 누구보다도 서로를 믿고 있습니다. 저는 조직 안에서의 신뢰는 축구팀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각자의 역할이 있습니다. 누구는 빛이 나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잘 보이지 않는 일을 맡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11명 모두 팀을 위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실수를 하는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야구에 실수한 수비수에게 투수가 괜찮다고 위로해 주어야 더 어려운 타구에 몸을 날리게 되고, 삼진을 당하고 들어오는 선수에게 스윙이 좋았다고 파이팅을 넣어주어야 다음 찬스에도 자신의 스윙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지고 있어도 질 것 같지 않은 팀이 되고, 오늘 져도 내일은 이길 것 같은 팀이 됩니다. 올해 LG트윈스가 바로 그런 팀이었습니다. 도루를 하다 객사를 하여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고, 도전을 응원하기에 다음에 기회가 오면 또 혼신의 힘을 다해 다음 베이스로 뛰어갑니다. 수비에서 에러가 가장 많은 팀이 LG였습니다. 그런데, 다들 LG의 수비가 아주 좋다고 합니다. 이번 한국시리즈 5차전의 박해민 선수의 다이빙 캐치가 좋은 예입니다. 박해민 선수는 인터뷰에서 문성주 선수의 백업이 좋아서 몸을 날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놓칠까 봐 몸을 움츠리는 것이 아니라 잡을 수 없을 것 같은데도 몸을 날리며 잡아내기 때문입니다. 놓쳐도 뒤에서 다른 선수가 그 실수를 최소화해 줄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신뢰가 있는 팀은 실수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도전에 초점을 맞추고, 한 번의 성공에 환호할 수 있습니다.
조직 안에서의 신뢰는 나와 함께 하는 구성원들이 맡은 역할을 잘할 것이라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나에게 잘해주고, 친절한 것도 중요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주어진 역할을 완벽히 수행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도 개인의 목표가 아니라 조직의 목표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내가 잘해도 다른 사람들 때문에 일이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신뢰를 만들지 못하게 합니다. 신뢰가 바탕이 된 조직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에서 출발하고, 내가 부족할 때 비난받을 것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도움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성장합니다. 끝내 조직의 목표를 달성했을 때 모든 구성원들의 역할을 치하하고 함께 기뻐하는 것으로 완성됩니다. 이런 팀이 신뢰가 바탕이 되는 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