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려고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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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우리는 흔히 경찰, 교사, 의사와 같은 직업을 '사명직'이라 부른다. 이들에게는 특별한 소명의식이나 봉사정신이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나의 경찰 되기 과정은 이런 통념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가 경찰이 된 것은 대단한 사명감 때문이 아니었다. 정의감에 불타서도, 시민을 보호하겠다는 숭고한 의지 때문도 아니었다.

그저 먹고살기 위해서였다.
이런 고백이 누군가에게는 실망스러울 수 있겠지만, 이것이 나의 솔직한 고백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직업에 숭고한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일이란 자아실현과 사회기여의 도구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나처럼 생존의 수단으로 선택하는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경찰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대학교 2학년인가 3학년 때였다. 선택의 이유는 순전히 실용적이었다. 경찰 시험은 1년에 2번, 운이 좋으면 3번까지도 치를 수 있었고, 다른 직렬에 비해 뽑는 인원도 많았다. 무엇보다 국어, 사회 같은 과목이 없어서 법과목을 처음부터 시작하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나는 상당히 낙관적이었다. 1학기 여름, 두 달 동안 도서관에 박혀서 밤을 새우며 공부했다. 완전히 독학이었지만 괜찮은 성적을 얻었다. 마음속으로 '이 정도면 할 만하구나' 싶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 해부터 선발인원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나는 현실의 벽을 마주하게 되었다. 마치 내가 기회를 엿본 순간 문이 닫혀버린 것 같았다.

그 후 진정한 목표 의식 없이 '공부한다'는 명분으로 서울에서 보낸 몇 년간의 '공시생'이라는 시간들이 있었다. 학원에 가끔 등록했다 그만두기를 반복하고, 알바를 전전하며 부모님께는 공부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후 나는 '공시생'이라는 애매한 정체성 속에서 표류했다. 진정으로 경찰이 되고 싶다는 절실함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다른 뚜렷한 대안도 없었다.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시간이 무의미했다고 할 수는 없다. 새벽 시간대 술 취한 손님들을 상대하고, 진상 손님들과의 대면에서 익힌 감정 노동의 기술들은 경찰로서의 업무에 간접적으로나마 도움이 되었다.

그러던 중 경찰 대거 채용 소식이 들렸을 때, 나는 다시 한번 기회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첫 번째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나와 필기 점수도, 체력 점수도 똑같았던 친구는 면접에서 합격했지만, 나는 떨어졌다. 그 순간 깨달은 것은 단순한 점수를 넘어선 '무언가'의 존재였다. 아마도 그것은 간절함이었을 것이다.

두 번째 시도는 별다른 기대 없이 임했다. 첫 실패 후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안 되면 다른 길을 찾겠지' 하는 생각으로 시험장에 들어갔다.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간신히 최저 커트라인에 걸렸고, 어찌어찌 체력장과 면접을 통과했다. 이는 노력의 결실이라기보다는 운이 작용한 결과에 가까웠다.

합격자 명단을 봤을 때의 감정은 복잡했다. 감동보다는 '이제 진짜 해야 하는구나' 하는 부담감이 더 컸다. 부모님의 기쁨과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사회적 기대와 개인적 현실 사이의 괴리를 느꼈다.

우리 사회는 공무원, 특히 경찰이라는 직업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안정성, 사회적 지위, 국가에 대한 봉사 등.
하지만 나에게는 그저 하나의 직업이었을 뿐이다.

그렇게 나의 경찰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