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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st in Translation May 20. 2016

A Conversation with Han Kang

Krys Lee, May 2016, WLT

원문 : Violence and Being Human: A Conversation with Han Kang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난 한강(Han Kang)은 1993년에 자신이 쓴 시가 수상되면서 본격적인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등단 이후 그녀는 여러 장단편 소설을 발표했고, 이상문학상과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만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또한 그녀는 서울예술대학교에서 문예창작과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데보라 스미스(Deborah Smith)가 영문으로 번역한, 그녀의 5번째 작품인 [채식주의자]는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의 최종 후보작으로 선정되었다. <결국 수상하기까지 이르렀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결혼 한 여성으로서, 한국 사회의 엄격한 사회질서를 저항하기 위해 스스로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던 과정에서 그녀의 남편은 가학증적 성애를 통해 자신의 남성성을 확인한다. 




크리스 리 : 어떻게 소설가가 되기로 결정하셨는지요? 젊었을 때 뭔가 특별한 영감을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한강 : 저는 언제나 문학적인 환경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아버지 역시 작가이셨기 때문이에요. 우리 집은 그다지 유복하지 않아서 가구 같은 것이 별로 없었거든요. 그리고 이사를 자주 했습니다. 아버지는 책 수집을 대단히 좋아하셨고, 결국 자연스럽게 저는 어렸을 때부터 책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방바닥을 비롯해서 눈에 보이는 모든 곳에는 책들이 있었어요. 책들은 시간이 갈수록 자꾸만 늘어났습니다. 창문과 방문을 뺀 모든 곳이 책으로 뒤덮일 지경이었니까요. 제 집에 있었던 책들은 끊임없이 늘어나니까, 소위 그것이 "광활(expansive)"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더군요. 이런 경향은 지속되어서, 제가 친구 집을 방문할 때면 책들이 (우리 집과 비교해서) 얼마나 부족한지를 알아차리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저는 책을 자유롭게 읽었고 단어들을 흡수했습니다. 부모님께서 저를 남겨두고 바깥에 외출하실 때면 저는 그간 읽고 싶었던 매우 어려운 책들도 시도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제가 독서를 꽤 좋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글쓰기는 자연스럽게도 뒤따라 오더군요.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저는 흔한 실존주의적 질문들을 품었어요. '나는 누구일까?',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왜 사람들은 죽어야만 하는가?', '인간은 죽음 후에 어디로 가는가?' 이런 질문들은 때로 매우 부담스러웠지만, 저는 답이 책 속에 있다고 생각해서 10대 시절 내내 책들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책들은 아무런 답을 알려주지 않았어요. 이상하게도, (스스로 답을 찾도록) 저에게 용기를 주더군요. 그 용기로 말미암아 저는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크리스 리 : 시각 예술, 혹은 시각적 감각이 몇몇 소설들에서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어요. 이런 흥미가 언제부터 생겼는지, 그리고 [채식주의자]나 [그대의 차가운 손]을 쓸 때는 작가적 관점에서 어떻게 사용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한강 : 어렸을 때 저희 가족은 미술을 전공하는 고모와 함께 산 적이 있었습니다. 고모 방에는 그림들로 넘쳐났죠. 때때로 저는 고모의 작품 모델이 되기도 했습니다.


모델로 있을 때마다 꼼짝 않고 서 있는 게 참 어렵더라고요. 이런 추억은 예술가적 관점과 주요 소재 등을 작품 쓰는 데 있어 남다른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정말로 '드로잉' 근처도 가보지 못한 사람이에요. 미국의 아이오와 인터내셔널 라이팅 프로그램에 참가했을 때, 주최자들이 저에게 월급(stipend)을 주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 돈을 가지고 여행을 떠났어요. 홀로 미국의 여러 도시들을 돌아다녔습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지역 박물관을 방문해서 홀로 전시를 보는 것에 소비했어요. 20대 때의 이런 경험을 통해 저만의 글쓰기 방법론을 익혔다고 생각하실 거예요. 그때 경험을 완전히 흡수해서 지금 글쓰기에 투영을 하곤 합니다.


저는 디테일한 내용을 면밀하게 탐구하고 조사하는 과정을 대단히 좋아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제 검은 코트로 떨어지는 하얀 눈송이들 같은 것 말이죠. 그것은 6각형처럼 보입니다. 시각적인 예술이라고 판단하는 것 이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 거예요. 자세히 바라보고 좀 더 깊숙하게 사고하는 것은 문학의 범위 안에서 부분적으로 통용될 거라 생각합니다. 요새 저는 드로잉을 시작했습니다만, 여하튼 이 모든 방법론은 통해서 저는 미술과 보다 친숙해질 수 있었고, 의도적인 목적 없이 저는 자연스럽게 시각에 대해서 글을 쓴다고 봅니다.


크리스 리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즈(Gabriel Garcia Marqeuz)도 이런 말을 했던 것 같아요. 그는 자신의 작품들에 외로움이라는 주제를 언제나 주입하였죠. 물론 그 외로움은 소설들마다 각기 다른 형태로 표현되었습니다만. 작가로서, 그리고 한 명의 인간으로서, 저는 여러 생각과 강박 관념이 사람들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믿는 편입니다. 당신도 이러한 편인가요? 당신의 머릿속에 계속 떠오르는 관념이나 생각 같은 게 있는지요?


한강 : 방금 당신이 표현한 바가 꽤 정확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연하게도, 제가 첫 소설을 쓸 때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제가 도대체 무엇을 쓰고 있는지를 전혀 몰랐던 것 같아요. 무엇인가가 제 머릿속을 침범해서, 마치 저를 잘 아는 것처럼, 이렇게 쓰라고 강요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쓰지 않으면 절대로 안될 것 같아서 글을 썼습니다. 하지만 계속 글을 쓰다가 어느 지점에서, 몇몇 주제가 저를 방해한다고 깨달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 주제들을 계속 고수했습니다. 다른 이야기도 계속 진행을 했고요. 오직 하나의 주제만이 제 머릿속에 계속 떠올랐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질문 하나는 제가 계속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것은 바로 인간의 폭력에 관한 질문이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채식주의자]는 스스로 대가를 치르더라도 도처에 존재하는 비정상적 폭력에 저항하려는 한 여성이 나옵니다. 저의 또 다른 작품에는, 언어폭력에 시달린 여성이 끝에 가서 언어, 그 자체를 부정하는 사건까지 표현되어 있어요. 물론 제가 이런 상황을 직접 경험하지는 못했습니다만, 제가 젊었을 때 사회에 만연된 폭력으로부터 엄청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죠.


크리스 리 : 당신은 또한 광주 사태 <5.18 민주화운동이라고 불린다. 전남대학교 학생들을 비롯해 수많은 민간인들이 당시 통치권자인 전두환에 대항해서 시위를 하던 도중 정부가 보낸 군인들로 인해서 폭력을 당하거나, 심지어 학살당하기도 했다.>도 묘사하셨잖아요.


한강 : 폭력은 인간의 한 부분이라고 한다면, 제가 한 명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에요. 폭력으로부터 도출되는 고통은 제 머릿속에 끊이질 않아요. 맞아요. 이것을 계속 생각하다 보면 일상에서 팽배한 폭력까지 떠오를 수 있는 거죠. 고기를 먹거나 요리하는 것까지, 우리가 날마다 일상에서 하는 행위도 정상처럼 보일 수 있지만, 폭력을 수반할 수가 있거든요.


크리스 리 : 잔디도 하나의 생명체(a form of life)이잖아요. 심지어 우리가 잔디밭에 디디는 행동도 폭력 아니겠습니까.


한강 : 맞아요. 맞는 말이에요. 하지만, 그러한 폭력을 취한 사람들은 그저 그래 왔으니까 하는 거라고 보는 것 같아요. 또한 그들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거나 움직이려는 습성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저 또한 앞으로 전진하고 싶어요. 그리고 저는 인간의 존엄성과 능력에 대해서 보다 세밀하게 탐구하고 싶고요.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 저는 광주에서 벌어진 대학살을 다루었습니다.


크리스 리 : 서울, 그리고 한국이라는 곳은, "공간"이라는 관점으로 볼 때, 당신의 글쓰기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한강 : 결정적이었죠. 어렸을 적에는 자주 이사를 해서 초등학교를 무려 5군데나 다녔어요. 지금은 제가 가는 곳마다 적응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제가 살았던 도시들은 제 창작에 있어 확실한 영향을 주긴 했습니다. 예를 들어보죠. 서울로 올라오기 전까지 저는 9년이나 광주에서 살았어요. 그래서 광주는 비록 조그마한 도시이지만, 저에게 상당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제 작품에서 가끔 'K'라 불리는 곳이 등장하는데, 바로 광주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1980년 1월에 서울로 상경하면서 저는 따스한 남쪽과 확실히 대비되는 추운 분위기를 말 그대로 느꼈답니다. 당신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언제 이주하셨나요?

크리스 리 : 제가 3살이었을 때요.


한강 : 그렇다면 비교하는 게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저에게는 서울로의 이주가 크나큰 변환을 이끌어내는 계기였습니다. 광주는 따뜻했기 때문에 겨울이 되어도 길거리에서 꽃을 볼 수가 있었거든요. 1월에 서울로 이사를 했는데, 엄청 춥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양말을 착용하고 두꺼운 스웨터를 입은 채 침대 속에 있었지만 추위 때문에 덜덜 떨었죠. 그러면서 앞으로의 제 인생도 오늘처럼 추울 거라고 제 스스로 내다봤습니다. 서울의 엄청난 규모와 차가운 무관심을 느끼면서 제 삶도 서울과 비슷해질 거라는 영감이 미리 떠올랐어요. 새로운 곳에 대한 두려움이 현재는 그다지 없어요. 하지만 저는 제가 그간 거쳤던 도시들에 대해서는 세세하게 따져보고 흡수하면서, 반대로 그 도시들로부터 영향을 받는 인간이기도 합니다.


크리스 리 : 당신의 팬이라고 밝힌 한 유명 평론가는 당신의 소설을 읽기 전에 각오를 먼저 다지거나 각기 다른 마음가짐을 갖추라고 주문하더라고요. 그의 말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시겠습니까?


한강 : 제 작품들이 인간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다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분이 그런 말을 하셨다고 믿습니다. 저라면 부끄러워 회피하지 말고 차라리 좀 더 깊게 파고들 것 같아요. 이런 성격 때문인지는 몰라도 저는 인간에게 숨겨진 폭력적인 성향을 밝히고자 노력합니다. 엄청난 고통을 수반한 비극적 사건이나 다름없는 광주사태를 다루었을 때를 떠올려 본다면, 그분은 제 소설들에서 그런 사건이 많이 나오니까 독자들에게 미리 준비를 하면서 고통을 체험하라고 의미했던 것 아니었을까요.


크리스 리 : 당신의 소설을 읽으면 문장이 마치 시각적인 형상처럼 보입니다. [희랍어 시간]이라는 소설을 읽으면 당신이 아주 세심한 감수성까지 유지하면서 단어를 신중하게 선택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소설 창작에 있어서 당신은 언어와 어느 정도로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나요?


한강 : 저는 시집을 1권 발간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년 동안 글을 쓰면서 단어와 형상들을 아주 꼼꼼하게 조사했습니다. 저는 언어라는 것이 극도로 다루기 힘든 도구라고 개인적으로 여깁니다. 때때로 다룰 수 없다는 느낌까지 듭니다. 어쩔 때는 제가 하고픈 말을 단어로 옮기는 것을 잘 해서 성공했다고 판단이 들지만, 여기서 말하는 성공은 정확성과 별개입니다. 게다가, 작품을 쓰면서도 언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고 판단할 때가 있는데, 그럼에도 유일하게 사용할 수밖에 없는 도구가 바로 언어입니다. 가혹한 딜레마라고 할까요. 저는 수많은 시인들이 이런 딜레마를 경험했다고 생각해요. 특히 [희랍어 시간]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은 말을 못 하지만 시는 쓸 수 있는 사람이잖아요. 각각의 문장에 쓰인 단어들은 아름답지만 야비한 면도 지니고 있어요. 순수하면서도 불결해요. 진실, 혹은 거짓을 품을 수도 있어요. 제 소설은 이런 양면성을 똑바로 제시합니다. 가끔 단어의 무게가 육중해질 때가 있는데요, 그럴 때면 말도 제대로 못 하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읽고, 쓰고, 말을 합니다. 제가 글을 쓰지 못한다면 잠시 쉴 것 같아요. 앞서 20년 동안 저술 활동을 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하지만 그 사이에 약 1~2년 정도는 가끔씩 휴식을 취했거든요.


크리스 리 : 소설을 읽으면 궁금한 점이 생기잖아요? 그것에 대해서 저희가 아까 얘기를 잠시 나누었는데, 당신은 소설가가 모든 질문에 답을 내놓을 필요가 없다고 언급하셨어요. 체호프(Chekhov)도 문학의 역할로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말했고요. 그렇다면 당신은 글을 쓸 때 특정 질문에 집중을 하는 편인가요? 아니면, 글쓰기 과정에서 유기적으로 질문을 만들어내는지요?


한강 : 1~2년 동안 한 작품을 계속 쓴다는 것은 정말로 힘든 일입니다. [그대의 차가운 손]를 완성하기까지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어요. 아마 1년 만에 썼을 겁니다. 어떤 작품은 탈고까지 무려 4년이나 걸리기도 했고요. 언제나 다른 것 같습니다. 저는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문제를 언제나 마음속에 품고 있고요,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그 문제의 중요도가 각기 달라집니다. 전작에서 다루었던 문제의 연장선상으로 다른 작품을 착수한 적도 있었습니다. 질문과 소설은 지속적으로 상호적 관계를 맺습니다. 예를 들어서, [채식주의자]를 쓸 때 저는 인간의 폭력과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인간의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식물로 변할 수는 없잖아요. 우리는 계속 삶을 영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폭력적인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희랍어 시간]에서는 삶을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인간 본성의 근원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주인공은 자신의 손바닥에 글을 씁니다. 그녀는 가능하면 손톱을 짧게 깎아서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 작품의 또 다른 장면을 얘기하자면, 두 손이 하나로 결합될 때 우리는 의미 있는 문장을 아주 약소하게나마 찾을 수가 있어요. 이런 짧은 결합도 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을 지닌다는 점을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어떤 의미 있는 것에 대한 가능성 같은 것 말이죠.


크리스 리 : 한때 당신이 채식주의자였다는 점을 알고 있어요. 그 경험을 소설에서는 어떻게 표현하셨습니까?


한강 : 20대 중반이었을 때 저는 채식주의자로 살았습니다. 당시 제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저에게 고기를 먹이고자 노력했던 광경이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당신은 잘 알 거라고 생각해요. 전통적인 집단 사회의 한 단면이었죠. 혼자서 음식을 다르게 섭취하는 것이 정말로 어려웠어요. 그럼에도 저는 훗날 의사가 제 건강을 염려하면서 식단에 소량의 육식을 포함시킬 때까지 계속 채식주의자의 삶을 고수했습니다. 저의 이러한 경험은 [채식주의자]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채식주의자이었을 때 주변 사람들이 저에게 했던 행동과 반응은 지금 봐도 참으로 흥미로워요.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채식주의자]는 지난 2000년에 냈던 [내 열자의 열매]에 수록된 한 작품을 기초로 하고 있어요. [내 여자의 열매]는 소설집이고 제가 26살 때 발표한 작품입니다. 여성과 남성이 주인공인데요, 하루는 그 남성이 직장에서 퇴근해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자신의 부인이 식물로 변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 식물을 화분에 옮기고 물을 주면서 정성스레 키웁니다. 계절이 바뀌자 그 식물은 하나의 딱딱한 씨앗을 내뱉습니다. 그는 씨앗을 줍고 발코니로 나가는 도중에 자신의 아내나 다름없는 그 식물이 내년 봄에 다시 꽃을 피울지 궁금해합니다. 전체적으로 이 이야기는 어둡지가 않아요. 약간 마술적인 냄새가 풍기기는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글을 서술하면서 다른 각도로 이야기를 재조명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로부터 몇 년 동안 그 글을 기초로 해서 다른 작품을 썼습니다. 첫 페이지부터 [채식주의자]는 정말로 어두운 분위기에서 전작과는 완전 다른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크리스 리 : [채식주의자]는 2007년에 한국에서 출간되었습니다. 그로부터 당신은 연달아 세 작품을 더 발표했습니다. 작가들과 글을 쓰는 사람들은 그간 자신이 썼던 작품들로부터 배워나가면서 창작을 한다고 저는 생각하는 편입니다. 아마도 작가들의 이러한 인식 때문에 일반 독자들은 특정 작가의 글을 계속 읽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여기서 드는 질문입니다만, 당신의 작품이 당신을 변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나요?


한강 : [채식주의자]를 쓰면서 저는 변화를 겪었습니다. 이 작품을 시작할 때는 현재의 3부작보다 더욱 많은 분량을 계획했었고, 주인공의 조카에게도 더욱 많은 지면을 할애하려고 했었거든요. 하지만, 주인공 영혜(Yeong-hye)를 가지고 3부작을 마무리하던 시점에서 저는 이제 끝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설명하라고 하라면 못 하겠지만,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촉발된 강력한 힘을 느낀 것 같았습니다.


크리스 리 : 한국 문학계, 혹은 출판시장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만, 한국 작가들은 성별과 관계없이 모두가 공평하게 대우받는 것 같습니다. 다른 국가들 사정을 보면 약간 생소하기까지 합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와는 약간 다른 양상을 보이는 문학계인데요, 당신은 제 의견이 옳다고 보시는지요? 아니면, 이 부분에 대해서 당신만의 관점이 있으십니까?


한강 : 당신이 하는 말은 맞아요. 꽤나 흥미롭죠? 지금까지 작가로 활동하면서 여성이라고 해가지고 차별받은 적은 없었던 것 같네요. 한국에서 차별을 겪지 않았다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면서도 어떻게 보면 축복받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우리나라 문학계에는 재능이 넘치는 여성 작가들이 엄청 많거든요. 그들이 만약 존재하지 않는다면 한국 문학계는 극적으로 줄어들 겁니다. 저는 이런 사안을 한번 생각해 본 적이 있었는데, 문인들에 대한 존경과 성 평등은 다른 국가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한국 문학계만의 고유한 장점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다른 예술 영역에서는 양상이 달라요. 예를 들어서 한국의 영화업계는 극도로 보수적이에요. 남성 영화감독들이 지금까지 영화업계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양상입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논의가 계속 있어야 해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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