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달하게 빛나는 밤
열여섯 번째 빵.
만들어본 빵 중에 가장 좋았던 밤식빵. 밤식빵을 조금 찬양해보자면 촉촉함과 쫄깃한 하얀 식빵에 달콤하게 졸여진 노란 밤이 콕콕 박혀 쨈 없이도 담백하고 달달하게 즐길 수 있는 빵이다. 거기에 빵 머리 위로 쿠키 도우가 올라가 재료가 호화롭게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밤, 단밤. 우리 집에서 사랑받는 열매 중 하나다. 가을이 되면 우리 집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밤은 그에 얽힌 이야기가 참 많다. 할머니는 매년 이모할머니들과 함께 밀양에 가셨다. 밀양은 다섯 할머니가 자라난 고향이다. 가을이 되면 다섯 분 이서 가방을 메고 산으로 가셔 가방 가득 밤을 주워 오곤 하셨다. 덕분에 일 년에 한 번씩은 꼭 양손 가득 밤을 담아오신 할머니를 마중 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가곤 하였다. 그렇게 5년 즈음 지난 것 같다. 5년 전쯤을 마지막으로 할머니는 밀양에 가지 못하였다. 다섯 분이셨던 자매도 세분이 되셨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몸이 마음을 따라가지 못해 산을 오르힘들어 지셨다. 하지만 아직도 가을이 되면 산책을 하다가도 밤을 찾고 주머니에 쏙쏙 넣어 오신다.
이번 가을에는 밤이 우리 집 계단에 찾아왔다. 집을 나서다, 집에 들어오다 고개를 아래로 내려보면 계단 끝에 일회용 테이크 아웃 잔에 밤이 가득 들어 있었다. 누가 밤을 주워다 놓은 걸까. 범인은 아빠였다. 아빠가 산에 다녀오며 주머니 가득 밤을 담아 할머니께 드리기 위해 컵에 가지런히 담아 둔 것이었다. 직접 가져다 드리면 더 좋을 텐데. 무뚝뚝 함으로 무장한 수줍음을 가진 경상도 출신 아빠이다.
이렇게 달달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는 밤이 식빵에 콕콕 박혀있는 밤식빵은 할머니도 무척이나 좋아하였다. 담백한 식빵을 쨈과 함께 드시는 걸 좋아하시는 할머니께도 밤식빵은 합격이었던 것이다. 이모할머니들도 좋아하실 것 같다.
새하얀 식빵에 잘 익어 달달하게 빛나는 밤이 콕콕 들어차 있는 것처럼. 밤식빵은 달달한 이야기로 들어 차 있는 행복한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