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번 알리, 1999년의 나디미
<로이터>는 랭귀지 앱 '두오링고'(Duolingo)의 이용자 수 변화를 분석했다. <오징어 게임>이 처음 방송된 9월 말부터 2주 동안 한국어 신규 사용자는 영국에서 76%, 미국에서 40% 증가했다. - '오징어 게임' 왜 이러지?.. 미국 언론들의 고민 [최현정의 웰컴 투 아메리카] (daum.net)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로 인해 세계인의 한국어 학습자가 증가했다는 뉴스도 보도되었다. 케이팝, 드라마, 영화, 예능 프로그램의 인기가 한국어 학습자들을 이끌었다는 사실은 이제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니다. 나 또한 몇 해 전 대만의 한 대학에서 근무했을 때 수강생의 대부분(모두라고 해도 과장은 아닌)이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한국어를 배우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내 경험뿐만이 아니다. 해외에서 한국어를 가르친 경험이 있는 교육자라면 수강생들의 한국어 학습과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은 떼려야 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이다. 게다가 이 수강생들의 대부분은 교수자가 한국 대중문화에 대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지식을 쌓아왔다. 이는 젊은이들이 한 때 특정 스타에 대해 품는 과도한 애정만으로 볼 수는 없었다. 특정 한국 연예인에 대한 그들의 ‘편애’는 그저 그만을 위한 사랑에서 멈추지 않았고, 한국어에 대한, 한국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로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오랜 세월 이들과 일상을 함께 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한국 문화 콘텐츠의 인기로 한국어교육이 관심을 받는 일도 물론 감사한 일이지만, 한류가 시작된 이십여 년의 세월만큼이나 한국어를 성실히 배워온 이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일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케이콘텐츠가 발전을 거듭해온 시간만큼 그들이 한국어를 배워 온 세월 또한 그들의 삶 자체에 혹은 한국문화 발전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는 사실 또한 인정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 이야기를 드라마 <오징어게임>으로 이어갈까 한다.
* 여기서부터 <오징어 게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오징어게임> 참가자 알리는 파키스탄 출신의 근로자였다. 그는 돈이 절실한 한 인간 혹은 가장으로서, 한국에서 일하는 근로자로서, 한국에서 생활하는 주민으로서 다른 참가자들과 동등한 자격으로 게임에 참여했다.
그러나 참가자들은 그와 협업하기를 꺼렸다. 한국어로 소통할 수 있다 치더라도 한국에서 성장하지 않은 그가 한국 아이들이 해 오던 게임을 제대로 이해하고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줄다리기, 구슬치기를 모두 성공적으로 해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했고, 함께 해야 하는 일에는 팀에 적극 기여했으며, 혼자 제 갈 길을 가면 되는 상황에서도 위험에 빠진 동료(?)의 곁을 지나치지 않았고, 그들을 적극 도왔으며, 그들이 하는 이야기에 끝까지 귀를 기울였다.
그는 훌륭한 플레이어였다.
안타깝게도 최선을 다한 그는 최선의 결과를 얻지 못했다.
모든 게임에서 고군분투하는 알리를 보며,
그 누군가가 겪었을 외국어를 쓰는 시간 혹은 외국 생활의 한 단면이 떠올랐다.
우리는 외국어를 구사하며 외국 생활을 꿈꾸며 지금보다는 나은 삶을 그려본 적이 있을지 모른다. 무지개 색깔로 이어진 동글동글한 회사 마크를 뒤에 두고 외국어로 유창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면 각국의 인재들인 나의 동료들이 박수를 치는 장면, 그들의 박수를 받으며 어깨를 한 번쯤 으쓱해 보이며 별 거 아니라 는 표정을 짓는 모습은 나의 것이 아닐 수 있다. 상대와 동등하게 열 개의 구슬을 갖고 한 구슬치기로 승리해도 결국 내 주머니에는 상대로부터 얻은 밝고 영롱한 구슬 대신 누군가가 밟고 차고 지나간 길바닥의 돌멩이들이 가득 찰 수도 있다.
동등하게 경쟁해도 구슬 대신 돌멩이를 얻는 일, 혹은 가진 구슬을 다 잃고 돌멩이 주머니를 목에 차는 일, 그리하여 전력투구하던 게임에서 강제 퇴장 당하는 일.
우리는 삶에서 한 번쯤 이런 억울한 일을 겪지 않았을까.
어쩌면 우리의 삶 자체가 그렇게 생겨 먹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외국 생활에서는 불공평한 상황을 운운하며 따지기 힘든, 내 잘못이 아닌데 내 잘못 같은 일들이 왕왕 벌어진다. 외국어를 구사하며 외국에서 내국인과 살아가는 일은, 그들과 경쟁하며 학업을 이어가고 밥벌이를 하고, 현지인들과 그들의 언어와 대화하며 살아가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공평하지가 않다. 시작부터 다르지 않은가. 애초에 너와 나의 언어가 다른데 나는 너의 언어를 구사하며 네가 세운 게임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 그런데 그 불공평한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었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 불공평한 게임에 스스로 발을 내디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구슬 몇 개를 손에 쥐고 게임 판에 들어와 구슬 대신 돌멩이 꾸러미를 들쳐 메고 나가 어깨가 짓눌리는 고통에 힘겨워했던 이들은 포기 않고 살아갔다. 뿐만 아니라 돌멩이 몇 개는 구슬로, 몇 개는 밥그릇으로, 또 몇 개는 그저 돌멩이 그 모습으로 자신의 주머니를 채워가며 삶을 꾸렸다.
나는 그러한 이들과 오랜 시간을 보냈고, 나 또한 내 발로 그러한 게임에 합류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 게임은 어쩌면 학생 다이안으로 존 티처를 만났던 영어 회화 학원에서 시작되었을 수도 있고, 조 선생으로 동남아 출신의 외국인 근로자들을 교실에서 만난 그 시절에서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 <오징어 게임>에 199번의 알리가 있었듯, 내게는 1999년의 나디미 씨가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알아왔던 나의 학생들이 돌멩이를 구슬로 만든 이들의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외국어 공부 혹은 외국 생활을 꾸준히 해내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때로 억울해한 적도 있었으나, 때로는 성취감으로 행복해하며 오랜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외국어를 배워 온 혹은 현재도 배우고 있는 나의 학생들이자 친구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한국어 실력에 좌절하는 대신 자신의 외국어 학습이, 외국인과 소통하며 하루를 사는 일을 그저 계속 가야 할 일 혹은 일상으로 여겨왔다는 데에 공통점이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은 한국에 아무런 연고가 없었다. 물론 한국어를 배운 뒤 한국인 배우자를 만난 이들도 있었지만 한국어를 배울 당시에는 한국인 가족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한국인 이웃이 있었고, 좋아하는 한국 스타가 있기도 했다. 그들은 진심으로 한국에 대해 알고 싶어했고 한국인과 한국어로 대화하고 싶어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무無의 상태에서 하나씩 무언가를 발견해 나가는 신기한 경험은 외국어 학습으로 하나씩 쌓아가며, 이들은 성취감과 신비로움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러하듯 처음에는 신기하지만 시간이 지나 더 이상 신기해지지 않고 내 언어가 다섯 살짜리보다 못하다는 현실을 자각하면 입을 닫아버리는 순간도 오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꾸준히 외국어를 배웠고, 기초부터 차근차근 오랜 시간에 걸쳐 한국어 실력을 쌓아 올렸다. 객관적인 기준으로 보았을 때 그들의 한국어 수준이 높지 않았을 때에도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화자話者라는 동등한 자격으로 한국인들과 대화했다. 그랬기에 외국어 실력이 향상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한국어가 완벽하다고 생각해서 한국어로 말하고, 글을 쓰고, 한국인들과 어울리며, 한국계 기업에 취직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한국어를 배워왔고, 여전히 배우고 있으며, 한국어로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했으며 한국어로 오늘을 충실히 살아가고 있다.
공부도, 인생도, 모두 태도의 문제였다.
그들의 외국어 실력 향상은 다름 아닌 외국어에 대한 지식과 함께 외국어 사용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에 있었다. 그들이 짧게는 십 년, 길게는 이십 여 년 동안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어로 살아갈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는지, 나는 그들의 한국어에서 외국어 학습의 성공 사례를 찾아보았다. 이 모든 과정은 그들을 직접 인터뷰하는 일로 진행했고, 그들과의 대화로 얻은 결론, 즉 그들이 꾸준히 외국어를 학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자신의 관심사와 외국어 학습을 연계했다. 영화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영화로,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은 음악으로, 운동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태권도나 다른 종목으로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관심을 표현했다. 자신의 관심사와 한국어가 끈끈하게 연계되어 있으니 이 두 가지는 쉽게 분리가 되지 않았다.
둘째, 목표가 있었으며 그 목표를 주변에 알렸다. 처음에는 한국에 가고 싶다, 한국 기업에 취직하고 싶다, 한국어를 쓰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계획을 세우지만 그 막연한 계획이라도 놓지 않았다. 자신의 목표를 누군가에게 얘기하며 함께 방법을 찾았고, 결국 그들은 한국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거나 한 번쯤 그 일을 해냈다.
셋째, 타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었다. 이러한 태도는 타문화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이어졌다. 이들의 외국어 실력을 굳이 초급, 중급, 고급으로 세분화하지 않더라도 타문화에 대한 관심을 지속시키는 한 그들의 언어문화능력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상대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수치화된 능력보다 진심이 더 필요하다는 지극히 기본적인 삶의 원칙만 봐도 그렇지 않을까.
넷째, 그들의 삶과 한국어를 분리시킬 수 없었다. 생계를 위해 일하는 근로자들,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키고 싶어하는 입양아와 입양인들, 한국인과 또 하나의 가족이 된 이들(근로자들과 입양인들도 포함)이 그러하다.
마술이 아닌 오직 그들의 노력과 실력으로 결실을 맺고, 또 다른 목표를 향해 가기도 하고, 그저 주변 사람들과 함께 행복을 찾아가려는 이들을 찾으며 나 또한 배운 바가 컸다. 특히 그들의 오랜 삶의 과정에서 함께 한 혹은 발전된 그들의 외국어이자 나의 모국어인 한국어가 함께 하고 있었다는 순간을 목도하며 선생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나는 과연 그들만큼 발전해 갔는지 자신을 돌아볼 귀한 기회가 되었다.
덧붙이는 말
<오징어 게임>에서 ‘알리’ 역을 맡은 배우는 ‘아누팜 트리파티’으로 인도인이다. 배우의 꿈을 안고 있던 중 2010년 한예종에서 외국인 장학생으로 선발돼 한국에 와 한국어 공부에 매진했던 성실한 한국어 학습자이기도 하다(참고: 오징어 게임 알리 아누팜 트리파티 프로필 과거 (tistory.com)). 그 또한 한국어를 구사하며 한국에서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 있는 훌륭한 학습자의 사례로서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