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리 이야기
빅토리아 커들(Victoria Caudle), 한국 이름은 ‘효리’입니다. 미국 플로리다 출신이고, 고등학교 때 한국어를 처음 배웠지요. 지금은 한국 문학을 번역하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으로는 이기호의 <사과는 잘 해요>, 조경란의 <혀>, 강석경의 <숲 속의 방>, 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 그리고 천명관의 단편과, 윤이형의 단편도 즐겨 읽습니다.
십 년 전, 미국 미네소타에 위치한 <한국어 마을>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한국어 마을 관련해서는 이전 포스팅 <너의 이름은, 1> 참고) 입촌 첫날부터 참가하는 아이들은 모두 한국 이름을 써야 했다. 한국 이름이 없는 경우에는 스태프들이 지어주곤 한다.
“한 남자 스태프가 날 보고는 ‘텐 미니츠(10 minutes)’, ‘애니콜’ 이런 말을 계속 하면서 이 이름을 골라줬어요.”
그녀는 그 날로 우리에게 ‘효리’가 되었다. 그녀 나이 만 열다섯이었다.
고등학교에서 한국 친구들을 만나 한국어에 관심이 생겼다는 그녀는, 한국어를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었다. 예상대로 초급반에 들어가 자모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학습에 속도가 붙었다. 간단한 단어를 읽기 시작했고, 보이는 글자를 닥치는 대로 읽으려 했다. 효리가 한글에 대한 호기심이 폭발한 계기는 다락방 도서관이었다.
교실로 개조한 통나무 집 윗층에는 다락방이 있었다. 우리는 그곳을 도서관으로 꾸며 놓았다. 한국 출판사로부터 기증 받은 책들(특히 한겨레 출판사에서는 어린이 서적 전집을 기증해 주었다)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한국어 공부에 필요한 한국어 교재나 동화책을 정리해 둔 곳이었다. 당시 <한국어 마을>을 찾는 아이들의 한국어 수준은 책을 술술 소리 내어 읽고, 그 뜻을 이해하는 수준이 전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전래동화와 아이들에게 많이 읽히는 창작동화책과 소설책을 공수해 온 이유가 있었다.
첫째, 아이들에게 책에 대한 관심을 키워주고,
둘째, 아이들은 한국 아이들이 자라며 읽는 책에 대해 알아가며 자연스레 문화에 대해 배우고,
셋째, 교사들에게는 교육자료로 활용해 쓰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모든 책이 위의 목적에 부합되게 사용되지 않았으나 아이들은 책을 하나 꺼내 책장을 넘겨가며 한국 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아이들이 관심을 갖는 책을 골라 수업 자료로 활용하기도 했다.
도서관의 목적을 가장 잘 이해한 아이는 단연 효리였다.
효리는 <다락방 도서관>으로 올라가면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꽂혀 있는 모든 책에 관심을 보였다. 심지어 다락방 도서관의 사서 역할을 자처했다. 아이들에게 책을 권해 주고, 함께 보곤 했다(효리의 사례는 청소년기를 비롯해 성장기에 책을 가까이 하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알려 준다. 이와 관련된 이전 포스팅 – [자존감 회복 운동 2] 도서관 활동이 나를 부르고, 참고)
<한국어마을>의 고등학교 학점이수 프로그램(캠프 환경에서 4주간 한국어를 배우면 해당 고등학교의 제2외국어 이수시간 180시간과 동일하게 인정해 주는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배운 내용으로 하나의 완성물을 제작하는 “프로젝트 작업”을 완수해야 한다. 학습자들의 수준과 관심사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뮤직비디오, 포트폴리오, 꽁트 제작 혹은 작사, 작곡 등이 있었다. 효리의 선택은 “한국어 자모학습책”이었다. 자기처럼 한국어를 처음 배우는 아이들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든 그림책 형식의 교재였다. 효리는 능력을 발휘했고, 성공적으로 프로젝트 발표까지를 마쳤다.
그 이후, 효리는 한 해 더 <한국어 마을>에 참가했다. 실력은 월등이 나아져 있었다. 한 해 동안 한국어 공부를 틈나는 대로 했고, 두 단계 높은 레벨에서 공부했으며, 프로젝트로는 소품까지 손수 만들어 뮤지컬 형식의 영화를 찍었다. 효리의 한국어 실력뿐만 아니라 창의성에 놀란 계기가 되었다.
효리는 고등학교를 졸업 후, 영국의 SOAS(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런던대 소속 컬리지 중 하나)에서 한국문학을 전공했다. SOAS 대학은 한국문학으로 강하다. 맨부커상(THE MANBOOKER INTERNATIONAL PRIZE 2016)을 수상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버라 스미스(DeborahSmith)도 이 학교 출신이다(관련 내용 SOAS 블로그 참고).
한 동안 효리는 학업으로 바빴고, 나도 생업으로 분주했고, 우리는 종종 연락을 주고 받는 걸로 만족해 했다. 그 때마다 나는 효리와 한 번도 영어를 쓴 적이 없다. 효리는 한국인과 대화할 때 영어가 필요하지 않았다. 몇 년 뒤, 효리를 한국에서 다시 만났다.
“한국문학번역원 (LTI Korea)에서 지원을 받아 번역 아카데미를 다녔는데, 그곳에서 권영민 서울대 명예 교수님께서 제 추천서를 써주셔서 서울대에 입학하게 됐어요.”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하게 되었다. 서울대 근처에서 자취를 한다는 그녀를 우리 집에 초대했다. 그날, 효리가 만들어 준 빵을 먹으며 우리는 한국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집 책꽂이에 꽂힌 작가들의 책을 하나씩 꺼내 보았다. 그녀는 김연수와 천운영과 김애란을 알았고, 김려령을 몰랐다. 그 날, 나는 효리에게 <완득이>를 선물로 주었다.
몇 해 전, 내가 한국어 문법책을 출판했을 때, 효리는 영문 번역을 담당했다. 효리와 내 이름이 동시에 오른 교재를 보았을 때 감회가 남달랐다. 학생이 실력을 다져 동료가 되었을 때의 뿌듯함은 상상보다 컸다.
얼마 전, 학위수여식 사진을 SNS에 올렸다. 나는 그녀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효리의 석사논문은 <나혜석 문학에 나타난 주체 구성 양상 연구>라고 했다. 그리고 올해 영국의 통번역전문대학원에 합격하게 되었다. 그녀는 들뜬 마음으로 내게 메일을 보내왔다.
“언니, 대학원에 합격해서 다시 영국으로 왔어요. 여긴 한국 사람들이 많은 곳이에요.”
효리는 현재 UCLA 아시아 언어과 문화과 (Department of Asian Languages and Cultures) 박사 3학년이고 꾸준히 번역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의 트렌스젠더 작가 김비를 인터뷰한 내용이 발표하기도 했다.
https://www.wordswithoutborders.org/dispatches/article/the-wellspring-that-relieves-my-thirst-kim-bi-on-writing-queer-literature
가나다, 를 처음 배우던 열다섯 소녀를 보았다. 한국어 책을 펼치며 한 자 한 자 손으로 짚어가며 더듬더듬 읽었고, 아이들을 위한 한국어 학습 동화책을 자체 출판(?)했고, 몇 해 뒤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했고, 또 몇 해가 지나 한국 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 되었고, 나와 책을 함께 만든 동료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한국 문학 전문 번역가로서 자신의 입지를 세우고 있다.
이 모든 일이 십 년 동안 효리에게 일어났다. 나는 지난 십 년간 효리의 변화를 보며 한 아이가 품어왔던 작은 호기심이 한 인생에 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목격했다. 그것은 조 선생에게도 큰 기쁨이자 보람이었다.
앞으로 효리에게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게 될지 진심으로 궁금해진다. 한국문학 작품이 효리의 손을 통해 세계 곳곳에서 널리 읽히는 광경,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
<효리가 남기고 싶은 말>
벌써 한국어 배우기 시작한 지 10년 됐는데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아 문학을 통해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번역가로서 어렸을 때 나를 홀린 한국의 마법을 세계적으로 알리고 싶습니다. 앞으로 좋은 작가를 찾고 작품을 번역해서 영어 독자들한테 한국문화의 다양성, 한국인의 내면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 본 글은 빅토리아 커들 본인이 두 차례에 걸쳐 사실 확인을 했으며, 사진 또한 빅토리아 커들 본인 소장 자료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