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기대어 자라는 집
기왕 지방에 사는 것, 읍세권을 벗어나 숲세권에서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시골에 터를 잡았다. 불편함도 많지만, 사계절을 입체적으로 느끼며 가족과 집이 함께 자라는 걸 지켜보는 것은 확실한 소득이다.
도시에서는 촘촘히 연결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건물과 건물을 오가느라 계절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며 살았다. 데일 듯 뜨거운 날에도,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비가 퍼부어도, 눈이 8차선 도로를 뒤덮어도 학교에 갔고, 회사에 갔다. 거리엔 나와 같은 사람들이 가득했고, 무의식중에 사람이 자연보다 강한 존재라고 믿으며 지내왔다.
시골살이라도 농사를 짓는 것은 아니라서 여전히 실내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럼에도 자연과 가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계절은 더 선명한 얼굴로 다가온다. 사계절을 온몸으로 감각하며 집과 가족의 변화를 지켜보는 시간은, 이곳에 살면서 누리는 특별한 경험이다.
시골의 봄은 여린 싱그러움으로 가득한 계절이다. 보드라운 생기가 사람과 마을 곳곳을 활기로 채운다. 여름은 어제와 오늘이 다르게 성장하는 계절이다. 농작물이 익어가느라 애쓰고 온갖 생물이 활발히 움직이며 생명력을 흠뻑 뿜어낸다. 가을은 자연의 품이 웅장해지는 계절이다. 너그러워진 날씨에 마음이 쉬어 가고, 오후 햇살을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을 지루할 틈 없이 지켜본다.
풍요로워 보이는 가을 풍경은, 사실 비어 있는 시간이 더 길다. 추석이 지나면 논밭은 하나둘 비워지고, 곧 차가운 기운이 스며온다. 시골의 추위는 도시보다 두 걸음, 읍내보다 한 걸음 늘 앞선다. 찬 기운이 스치면 남편과 나는 서둘러 중정과 창에 비닐을 치고, 바람 새는 곳을 찾아 보수한다. 일곱 해째 접어들자 우리의 기술과 팀웍이 쑥 자라 올해는 한결 수월하게 미션을 완료했다. 계절이 바뀌며 집과 우리가 함께 준비하고 성장하는 순간이다.
길고 추운 겨울은 긴장과 돌봄의 계절이다. 아파트 보다 두세 배 더 드는 난방비에 재정을 긴축하고, 보일러 기름과 난로 연료를 수시로 확인하고 채운다. 매일 난로를 청소하고, 창에 맺히는 결로의 흔적들을 닦아 낸다. 밤과 아침마다 기온에 맞춰 난방을 조절하고, 아이들 옷을 준비한다. 익숙해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손이 많이 가는 계절, 도시와 아파트 생각이 제일 간절해지는 때다.
겨울은 고립 아닌 고립 속에서 서로에게 집중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차를 타고 나가야 친구를 만날 수 있는데, 방학은 통으로 두 달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야 긴 겨울을 잘 보낼 수 있다. 붙어있는 만큼 싸우는 소리도 잦아지지만, 눈이라도 내리면 순식간에 단짝이 된다. 폭설엔 온 가족이 플라스틱 썰매를 끌고 언덕을 찾아다니며 부서져라 썰매를 탄다. 눈 하나면 충분한 계절이다.
또 소소한 낭만의 계절이기도 하다. 아홉 살 둘째는 난로 앞에서 귤 까먹으며 만화책 읽는 게 행복해 겨울을 제일 좋아한다. 아이가 눈치챈 것처럼, 겨울엔 제약과 움츠러듦 속에서도 고유한 낭만과 추억이 쌓인다. 난로 앞에 모여 고구마와 쫀드기를 구워 먹고, 눈밭에서 라면과 코코아를 나눠 먹으며 서로의 기억 속에 더 단단히 뿌리 내리는 시간이다.
집 한 채로 오롯이 자연 앞에 서니 알게 되는 어려움과 두려움도 있다. 밤낮 기온 차가 커서 냉방과 난방이 끊임없이 돌아가고, 두 계절에 걸쳐 들쑥날쑥 찾게 되는 옷들은 정리되지 못한 채 어수선하게 쌓인다. 거센 비바람이나 집중 호우로 잠 못 드는 날에는, 서로에게 기대어 있는 아파트가 부러워지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 가족은 이 집에서 사계절의 즐거움과 어려움을 익혀간다. 자연의 일부라는 것도 자연스레 배워간다. 7년을 살면서 불편함과 두려움을 모두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대비하고 적응하며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사람보다 큰 자연의 힘 앞에서 이기려 하기보다는 어우러지는 방법을 찾아가는 중이다.
오늘도 우리 가족은 계절에 기대어, 자연과 얼굴을 맞대며, 집과 함께 또 한 해를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