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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훈 Jul 06. 2020

'아내느님이 죽으라면 죽는다'는 말의 속뜻

당신의 '아재 개그'는 여성을 존중하는 말이 될 수 없습니다


지난주 이낙연 의원의 “남자는 엄마 되는 경험을 못 해 철이 들지 않는다”는 발언. 여러 면에서 문제적인 말이다. 앞부분의 문제점은 이미 많은 분들이 지적했으므로 뒷부분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일단 나는 남성들이 왜 자신을 '철이 없고' '(아내나 여자친구에게 )혼나야 하는' 존재라고 말하는지 항상 의문이었다. 평소에는 '보편'의 위치를 점유한 채로 떵떵거리던 남성들이 갑자기 머리를 긁적이면서 스스로 여성보다 하등하다고 이야기하는 상황, 이상하지 않은가.


어떤 남성들은 스스로 철이 없거나 부족한 존재라서 '아내 때문에 사람 구실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사고방식에서 '아내느님 말은 무조건 들어야 한다' '마나님이 죽으라고 하면 죽어야 한다'와 같은 말도 나온다. 


한 명의 성인으로서 왜 그런 ‘존재'로 자신을 설명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추측해보건대 자신은 그냥 '철 없이' 제멋대로 살테니까 네가 뒤치다꺼리(돌봄)좀 계속 해달라는 '엄살'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자신을 '모자란 사람'이라고 주장하며 게으름이나 절제되지 않은 행동들에 대해 면죄부를 받고, 역으로 그런걸 '돌봐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아내가 '내가 아들 두 명을 키운다'거나 '남자는 애 아니면 개'라고 말하면서도 자신을 '우쭈쭈' 해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아내를 '절대자'로 치켜세우는 말들에서는 역설적으로 '시혜적 태도'도 엿보인다. 무슨 말이냐면 아내가 정말 강자거나 절대자라면 '아내 말은 무조건 들어'라고 말 못한다. 여성에게 '남편에게 복종해'라고 하지 않는것은 실제 그런 상황이 여성에게 큰 고통을 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반면 '아내에게 복종하라' 같은 말은 무섭고 위협적이지 않다. 오히려 다들 그 말을 농담처럼 한다. 남성들의 '복종하라'는 말에는 '우리가 봐주고 넘어가야 집안이 평안하니까 뭐~' 이런식의 뉘앙스까지 느껴진다. 젠더 권력의 우위를 가지고 있는, '남성의 여유'를 상징하는 말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아내나 여자친구와 자신이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굳이 여성에 비해서 자신을 부족하거나 의존적인 존재라고 말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철 없다' 같은 말이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에게 요구되던 '남성에 대한 돌봄'을 내심 원해서 하는 말이 아닐지 되돌아봐야 한다.


아내를 '절대자'로 표현하며 복종해야 되는 대상으로 놓는 것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여성이 남편을 두고 그렇게 말하는 경우가 왜 없는지 되돌아보면 된다. '놀이'로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기만적인, 오히려 관계의 불평등성을 잘 드러내는 언행이다. 


위에서 사례로 든 말을 하는 남성들이 여성을 깎아내리거나, 자신의 행동을 면피받기 위해서 저런 말을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자신도 모르게 기존 가부장제의 남성성을 답습하는 것이 아닐지 성찰하셨으면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러한 '아재 농담'이 여성을 존중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것만은 아셨으면 좋겠다.


*요즘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게 뜸해졌네요. 페이스북에는 계속 글을 잘 올리고 있습니다. https://fb.com/yesrevol 친구신청 해주시거나 팔로잉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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