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작은 변화에 무뎌지는 법
일희일비하지 않기
2023년, 유독 더웠던 여름 후에 맞이한 가을은 더욱 아름다웠다. 코끝에 담기는 가을 공기 냄새는 늘 그렇듯이 쌉싸름하면서 청량했다. 그에 비해 내 마음상태는 쌉쌀하기보다 씁쓸하고, 청량하다 못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어려움에 맞서고 있었다. 모든 병은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며 나아진다는 것을 늘 잊지 말아야 하는데, 아픈 가족을 돌보는 게 처음인 나는 자주 일희일비하곤 했다.
'아이는 사춘기를 겪고 있어 성인의 완성된 뇌 상태가 아니고, 사춘기 아이가 섭식장애를 겪으면 또래집단이나 미디어 등 외부 자극에 더욱 취약해지게 되어 신체에 대한 왜곡된 생각이 들 수 있으며, 그로 인해 구토, 하제복용, 자해까지 이르는 액션으로 발현될 수 있으므로, 가족치료 및 팀치료를 통해 올바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꾸준히 도와야 한다'라는 큰 틀에서 나 스스로도 벗어나면 안 된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명심해야 하건만...
여름방학을 나와 함께 보내며 매우 안정적인 상태로 돌아온 진진이와 함께, 우리 가족은 해외여행을 계획했었다. 우리가 홍콩에 있으면서 다섯 번도 더 갔던 추억의 장소 싱가포르에, 추석을 맞아 가기로 했다. 코로나가 끝나고 가는 첫 해외여행으로, 진진이의 섭식장애로 고생해 온 우리 가족에게 수고했다는 의미의 선물 같은 여행일 거라 예상했었다. 그렇치만 결론은 시. 기. 상. 조. 아이는 여행 중 바뀌어 버린 환경에 매우 예민해했고, 매 끼니에 대해 걱정을 했다. 우리가 좋아했던 멀리이언 동상들은 다 보수공사 중이었고, 늘 여유 있던 센토사 섬도 이곳저곳이 공사 중이었다. 사춘기와 섭식장애가 결합된 아이의 짜증은 곳곳에서 표출이 되고, 결국 여행 마지막 날, 나도 남편도 진진이도 감정이 폭발하여 모두 힘든 상황에 도달하고 말았다. 진진이가 회복이 다 되었다고 성급히 판단하고 무리해서 여행을 추진해 버린 탓이라고 생각했다. (사춘기 아이들 데리고 여행하는 게 집집마다 다른 이유들로 썩 유쾌하지 않다는 것을 그 이후에 듣고, 내심 위안이 되기도 했다.)
섭식장애 아이의 예민함은 다양한 모습으로 표출되는데, 처음에는 본인의 몸이 뚱뚱해 보이고 얼굴이 못생겨 보이는 등 외모에 대한 자신감 저하와 자기 비하로 시작된다. 그러다가 본인이 하고 있는 공부라던지, 취미생활에도 영향을 끼쳐, 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재미가 없고 힘겹게 느껴진다. 왜 열심히 해도 잘 해내지 못하는지, 성취도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마음이 든다. 더 나아가 사람들이 보내는 눈빛이 다 본인을 질타하는 듯이 보이게 되어 인간관계에도 악영향이 온다.
섭식장애가 한창일 5~6월에 모든 양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다가, 여름을 지나며 매우 안정화되었었다. 그러나 다니던 대학병원이 문을 닫고 교수님이 너무 먼 병원으로 옮기시게 되어, 이 참에 약을 끊자고 섣불리 판단해 버렸고, 중간에 해외여행이라는 비일상적 요소가 끼어들어 진진이의 증상을 악화시켜 버렸다.
다시 치료자 모드로 돌아와 아이를 살펴보며, 스트레스 관리를 도와주고 지속적인 안정감을 줌으로써, 아이를 다시 회복궤도로 올리는 것이 내 일상의 목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