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담 Feb 25. 2024

이불 빨아주는 남편

집안일과 군소리의 상관관계

이불만 빨아주는 게 아니다.

지난 토요일 아침에는 부엌 개수대 청소까지 했단다. 김치냉장고 묵혀둔 김치통까지 다 씻어놨다. 살림에 썩 소질이 없는 나는, 남편이 꼼꼼한 청소 실력을 발휘하면 반은 좋고 반은 싫다.


일찍 출근하여 야근이 생활화되어 있는 남편에게 평일의 여유는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주말에 빈시간이 생기면 집구석구석을 뒤집어 댄다. 화분에 물도 주고 분리수거통 정리도 하고 못 돌린 세탁기까지 돌린다. 퇴사자, 즉 무직자인 나는, 마음 깊숙이 고맙기도 하고, 손이 야물지 못한 와이프 때문에 고생하는 남편에게 살짝 미안해지기도 한다.


그렇게 에너지를 소진한 남편은 진이 쏙 빠진 얼굴로 소파에 뻗어버린다. 그러고는  한마디를 덧붙인다.


"니는 내 없으면 어떻게 살겠노?"


혹은


"이거 내가 안 하면 아~무도 안 하재?"


(경상도 사나이, 서울생활 20년도 넘었는데 사투리는 못 고친다.)


저  말 한마디에 오만정이 뚝 떨어지는 나.


"누가 해달랬어?"

"청소 이모 이틀뒤면 오신다고!"

"당신이 안 하면 내가 한다니깐!"


내 입에불친절한 말이 이쪽저쪽으로 튀어나간다. 남편의 수고가 "100"에서 "-100"으로 땅굴 파고 들어가는 순간이다.




단언컨대, 내가 모든 집안일에 무딘 것은 아니다. 나도 개수대 설거지 쌓인 꼴은 못 보고, 보이는 곳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지 않은 상태는 싫어해서 늘 손이 바쁘다. 그렇지만 더 갑갑한 사람이 먼저 하게 된다고, 이불빨래나 안 보이는 곳 청소 등 일부 집안일에는 관심이 덜한 나 이기에, 지저분함을 더 빨리 캐치한 남편의 행동에 대해 할 말이 없다. 뭔가를 정돈할 때마다 "생색"을 낼 필요는 없다 생각하므로, 남편의 불필요한 한두 마디가 속 좁게 느껴지는 것이다.



볕 좋은 날 이불 속청을 뒤집어 널어놓으며, 아, 오늘밤에는 햇살내음 맡으며 잠 잘 자겠구나. 생각하는 남편의 기분 좋은 표정을 잘 알고 있다. 개수대 청소할 때, 깨끗해진 상태를 보고 희열을 느끼는 남편의 성격을 너무 잘 안단 말이다. 마치, 내가 반짝반짝 정리된 거실 상태를 보고, "아! 깔끔하고 참 포근하다..."라고 안심하는 것과 같은 기분일 것이리라.


그렇다면 남편씨! 본인 눈에 띈 집안일 정성들여 할 땐, 군소리 몆마디로 그 공을 깎아먹지 말고 깔끔한 기분만으로 만족해 주길!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도와줄 때,  와이프의 궁디 팡팡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남편의 군소리를 한쪽귀로 그저 흘러 넘기는 너그러움을 기르자. 깔끔쟁이 우리 남편, 앞으로도 계속해서 집안 구석구석 살펴주길 바라면서!




오늘도 나는 우렁차게 남편을 찾는다.


"남편! 안방 화장실 전등 나갔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