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건 뒤에는 무엇이 있나-6>>
이른바 sky 대학을 나오고 미국 유학을 떠나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모두의 기대와 예상대로 서울의 한 사립대학 교수로 살고 있는 40대 남성. 게다가 그의 아버지는 사학재단 이사장이고 유학시절 만난 아내까지. ‘엄친아’로서 순탄했고 앞으로 더욱 탄탄대로가 예상되는,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인생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를 살해한다.
1995년 3월 14일, 41살 김 모 교수는 동료 교수들과 술을 마셨다. 자신의 집 근처로 이동해 2차 술자리를 이어가던 중 그는 잠시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오겠다면서 자리를 뜬다. 엘리트 대학교수의 패륜 범죄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거실에서 그의 어머니는 TV를 보고 있었고 아버지는 안방에서 자고 있었다. 김 교수는 자신의 방에서 미리 준비한 공군 정비복을 입고서는 베란다를 통해 안방 창문을 뜯고 들어간다. 자신이 방이나 욕실에 있다고 거실의 어머니가 생각하도록 어머니 몰래 안방에 침입한 것이다. 마치 전문 킬러처럼 자고 있는 아버지의 경동맥을 단 한차례 칼로 찔러 살해했다. 다시 베란다를 통해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다음, 원래 옷으로 갈아입고, 범행 도구는 가방에 담았다.
거실의 어머니가 안방으로 들어가 피 흘리는 남편을 발견하고 비명을 지르자, 김 교수는 방에서 뛰어나와 아버지의 피살을 처음 본 것처럼 행동했다. 착한 아들과 살인자라는 1인 2역을 그날 밤 완벽하게 소화해냈고 그의 연기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진행된 장례식 때까지 흔들림 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외부 침입 흔적이 없어 내부 소행 가능성에 처음부터 주목한 경찰의 수사망은 현장에 있던 아들, 김 교수에게 좁혀오기 시작한다. 특별한 스펙을 가진 젊은 교수이자, 주변의 신망도 두터웠지만, 그는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에 만족하지 못했다. 아버지 몰래 9억 원을 빌려 사업을 벌였는데 사업은 곧 빚더미가 돼버렸고, 2억 6천만 원의 어음 결제가 들이닥친 사실을 경찰은 확인했다.
목격담도 확보된다. 범행을 마치고 가방과 흉기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탄 김 교수를 한 주민이 본 것이다. 이제 어떻게 자백을 받아낼 것인가? 경찰은 직접 추궁 대신 김 씨의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먼저 알리기로 결정한다. 거짓의 둑을 가족을 통해 무너뜨리려 한 것이다. 어머니는 가족회의를 소집하고, 아들에게 물었다.
“정말 네가 그런 거니?”
아들은 펄쩍 뛰며 부인했지만 모든 가족들은 그의 광기 어린 눈빛에서 그의 범행임을 확신했다. 경찰에 신고했고 김 교수는 모든 것을 자백하고 만다.
그의 아버지는 맨손으로 성공한 사업가로 학교까지 세운 자부심과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이었다. 맏아들의 사업 참여를 원하지도 그리고 도와줄 생각도 없었고, 오히려 나무랐다. 원망이 쌓이고 궁지에 몰린 아들은 그 좋은 머리를 아버지 살해 시나리오를 짜는데 쓰고 만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어머니는 극형만은 피하게 해 달라고, 남편의 권위적인 성격과 태도로 갈등을 겪은 면도 있다고 탄원서를 썼고, 결국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김 교수는 추가로 감형돼 2016년 2월, 21년 만에 석방됐다. 그런데 김 교수가 석방된 그해, 이 불행한 가족들에게 몇 가지 일이 잇따라 벌어진다. 그동안 학교법인을 운영해왔던 어머니가 아들이 출소한 지 넉 달 뒤 법인을 대기업에 130억을 받고 팔았고, 또 몇 개월 뒤 그 어머니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이다.
학교를 판 그 거금은 누군가에게 상속되거나 증여됐을 텐데, 어머니는 어떤 선택을 했던 것일까. 어머니는 출소한 맏아들 김 교수에게 70억 원 이상 생전에 증여한 사실이 드러났다. 남편을 살해한 아들에게 남편과 함께 평생 일군 재산을 남겨주면서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녀는 남편을 살해한 아들을 변호하고, 출소한 그에게 가장 많은 돈을 물려주고는 세상을 떠났다. 결과적으로 패륜 아들은 아버지를 살해하고 그 재산을 물려받게 된 셈이다. 40대에 아버지 살해범으로 인생의 황금기를 감옥에서 보내고 이제 60대에 세상으로 나와 어버지 재산으로 자산가가 된 그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까.
애정과 기대 그리고 갈등과 집착, 더 나아가 증오와 광기에 휩싸인 한 부유한 가정의 파탄사는 주변 사람들이 감히 논하기 어려울 만큼 끔찍하고 참담한 일이다. 그 한가운데서 모든 고통을 가장 크게 겪고 감내했을 어머니가 인생의 마지막에 내린 이 선택은 또 얼마나 괴로운 일이었을까. 가족이란 이름의 얽힘이 더없이 무겁고 힘겹고 견딜 수 없을 만큼 '불편'하게 다가오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