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한 대로 삶은 이어질 것입니다.
온도계로 살아온 날들이 있었다.
부모님에게 책임을 돌리며,
내 삶을 부정했을 때가 있었다.
타고난 머리가 공부에
적합하지 않다며,
내 삶을 불평했을 때가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상황이
불리하다며,
내 삶을 외면했을 때가 있었다.
온도계의 삶이었다.
그저, 외부 상황에 따라,
온도만을 가리키는 온도계.
그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이,
100% 받아들이기만 하는 온도계.
나는 그저, 외부의 온도를
충실히 반영하는 온도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삶을 살았던 때가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철이 없고 어렸던
시절이었다.
온도계로 살아왔던 삶을
인식한 후,
온도조절기로 살기로
결심한 때가 있었다.
모든 것을 바꿔보겠다고
온 마음을 다하고,
모든 사람을 얻어보겠다고
온 마음을 다하고,
모든 기회를 잡아보겠다고
온 마음을 다했던
그런 날들이 있었다.
하지만, 온도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보일러 온도절기처럼
버튼 몇번 누른다고,
아니, 죽을 힘 다해서 노력해도
온도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온도계로 살았던 날들은
주어진 조건이 절망적이어서
좌절스러웠으며,
온도조절기로 살았던 날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지지 않아서,
또 절망적이고,
좌절스러웠다.
이제 나이가 들어가니
조금은 알 것 같다.
온도계로 사는 한,
영원히 희망없이 어두운 감옥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온도조절기로 사는 한,
내 뜻 대로 되지 않아
발목에 묶여있는 쇠사슬을 느끼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이제 나이가 들어가니
조금은 알 것 같다.
아무리 추워도,
아궁이에 장작을 끊임없이 넣다보면,
절대로 추운 겨울은 없다는 것을
나의 때를 만나지 못하더라도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운이 돕질 않아더라도
끊임없이 장작을 넣다보면
언젠가는 더워서 잠못자는
아궁이의 뜨거움을
만나게 될거라고
그렇게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
나이듦이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나에게 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