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공부를 하는 것이
즐겁고 행복했던 때가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어느 시험에서
100점을 받았는데,
난 그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다.
그날 저녁,
우리 가족은 돈까스 외식을 했다.
당시에 돈까스 외식은
흔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나는 크게 놀랐고,
크게 좋아했던 것 같다.
우리 가족은 행복한 것 같았고,
아빠와 엄마가 나로 인해,
무척 즐거워하시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공부하는 것을 즐기고,
또 좋아하며 성장했다.
중학교 2학년 어느 시험에서
반 등수 3등에서 4등으로,
전교 등수 23등에서 34등으로,
떨어진 성적을 아버지께
말씀드린 날,
시선도 마주치지 않은 채
"참내~ 그것도 점수라고~"라는
말을 들을때 까지는
공부는 나에게 행복을 위한
가장 쉬운 도구였다.
인간은 절망과 좌절,
슬픔과 상처를 마주하면,
도망가거나 혹은 넘어서거나
둘중 하나를 택한다.
난 후자를 선택했다.
도망치는 쪽을 선택하면,
초등학교 1학년부터 행복했던
우리 가족이 불행해질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아니면,
아빠의 인정과 사랑을
받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강제였을까?
난 늘 그랬듯,
열심히 공부했고 중간 중간,
아버지의 비난을 감내해야 하는
소폭의 성적하락이 있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더 이상, 아버지와 나는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난 성인이 된것이다.
대학교 4년 내내
거의 전액 장학금을 타며
학교를 다녔다.
왜 그랬을까?
하나도 기쁘지 않고,
뿌듯하지도 않았는데...
그저, 어려운 가정 형편에
도움이 되어 다행이라는
작은 안도만이 있을 뿐,
나에겐 작은 기쁨 조차 없었는데,
왜 난 4년을 1분 1초를 아껴가며
공부를 했을까?
그건 아마도,
공부가 나에게
어린시절부터 생존 수단이었기 때문에
그런거 아닐까?
연약하고 깨지기 쉽고,
상처받기 쉬운 어린 시절
나 자신을 지키며,
아버지의 인정과 사랑을 받으며,
상처를 피하는 유일한 길은,
공부였기 때문에,
이젠 아버지가 없는 공간에서도,
공부를 멈출 수가 없었던거 같다.
왜 해야 되는지 이유도 모른채...
이젠 더 이상 돈까스를 먹으러가서
행복해하지도 않고,
그것도 점수냐며 비난을 받지도 않는데...
어린 시절의 상처나, 비난,
억압이 무서운 이유는,
그런 말과 행동이 사라진 이후에도,
평생 그 사람을 지배하는데 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알 수 없다.
어린 시절부터 강제로
골프, 수영, 스케이트를
혹독하게 시킨 어느 스포츠 선수의
아버지들 이야기처럼,
미리 정해져있는 종목의
트랙에서만 뛰게 되어 있는 사람은,
수십년을 그렇게 살고 나면,
이젠 누가 보고 있지 않아도,
그 트랙을 뛰게 된다.
행복은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크게 성공한 스포츠 선수들은,
명예와 지위, 돈을 손에 쥔채
지난 시절을 아름답게 말하지만,
대부분의 나같은 사람들은
빈 주먹을 쥐고 그저 뛸 뿐이다.
결승선은 없고,
멈춰서는 안되는 경주를 말이다.
내가 내 마음을 치유해야겠다고,
아버지를 마음으로 용서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이유는
내 마음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결승선에 도달하지 않아도,
스스로 페이스를 조절하며,
행복하게, 살맛나는 삶을
살기 위해서 말이다.
먼 훗날 심리학에 대해서
조금 알게 되면서 깨닫게 된 것은,
나와 같은 패턴으로 삶을 사는 사람은,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살아갈때,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고 어깨를 나란히 하며
살아가기보다는
그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나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무언가를 망치지 않기 위해서,
내가 감내하고 견디는 쪽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런 날들이 어렸을때부터
너무 오래 반복되어 왔기 때문에....
과거의 나에 대해서 안다는 것은,
내 마음에 죄를 저지른 범인을 찾아서
무엇을 어떻게 하려는 게 아니라,
현재의 상처를 치유하고,
행복한 미래를 맞기 위한 일이다.
그래서, 누가 나에게 무엇을 했는가가아니라,
내 마음은 그때 어땠는가.
지금 내 마음은 어떤가.
미래의 내 마음은 어떻기를 바라는가.
이것만을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