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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상처를 알았으니까요.

by 영순

내 마음에 난 상처,

약하고 무력했던 어린 시절에 입은 상처는

어른이 된 지금도

나 스스로 치유할 수 없음을 알고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시에서 운영하는 심리센터에

발걸음을 한 것인데,


여러 심리 이론에 대한 학습으로

변질되었던 시간들이

코로나로 인해 그마저도 단절된 후,

내 마음은 다시 길을 잃었다.




어디로 가야
내 상처를 치유할 수 있지?



그때 내가 명백히 알고 있던

사실 하나는 바로,

어린 시절의 상처는

놓아두고, 덮어둔다고 해서

저절로 치유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깊게 패인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낫는

약간 베인 상처가 아니라,

수술이 필요한 큰 질병일 수도 있다는 생각,


덮어두고 살면 아무렇지 않은것 같지만,

사는 내내 여러 관계를 망가뜨리며,

상처를 더욱 늘려간다는 생각을 했기에,


난 꼭 치료받아야 겠다고

다시 다짐했다.




정신과와 심리센터 중에

어디로 가야할까?


정신과는 병이 있어 약을 먹는 곳이므로,

심리센터로 방향을 잡았다.


검색 후에 알게 된 심리센터에

일주일에 한 번씩 갔다.




첫 시간에,

나는 내면에 있는 여러 이야기,

어린 시절, 상처, 아버지를 말했고,

그 과정에서 감정이 북받쳐서

서럽게 울었다.




성인이 된 후에 타인에게,

그것도 내 어린 시절 상처와

나의 내면을 보여준 경우도 없었고,

눈물을 흘린 적이 없었는데

나도 모르게 억울하고 아픈 눈물이

쏟아졌다.




그것도 중년의 남자가,

중년의 여성 심리상담사분 앞에서 말이다.




그 분의 표정은

매우 놀란 표정이었다.

이런 감정과 이런 표정과

이런 눈물은 처음 보는 사람처럼...


마치, 심리학과 재학생이

첫 실습을 나와서 당황하는 것처럼 말이다.


놀람과 당황이 섞인 그런 표정이었다.




마치,


왜 우세요?

뭐가 많이 힘드세요?


이런 질문이라도 하는 듯이 말이다.




나는 그 표정과 태도에서

순간 마음이 경직되었다.


전부 얘기하면 안되는거였나?


눈물을 흘리면 안되는거였나?


저 사람의 표정과 태도는 뭐지?




티슈를 건네주고 공감을 해주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았어도,

잘 경청해주는 정도까지는

해야 되는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나는 치료를 받아야 되는

환자이니, 그 시간들을 이어갔다.


그리고 상담사분은,

잡지책을 하나 꺼내면서,

그 책에서, 지금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사진이 나오면

오려서 스케치북에 붙이라고 했다.

글씨도 쓰고, 마음껏 표현하라고 했다.




십여분 동안 이것을 하고 나니,

마음이 이상했다.


잘 표현하지 못하는,

내 마음 속에만 있는 그런 것들이

그림 하나, 사진 하나,

글자 하나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느꼈고

마음이 조금 정화되고 정돈되는 것 같았다.




작업을 끝내고 스케치북을 건네자,

내 마음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상당부분 그분의 말이 맞았다.


내 마음을 상대가 잘 읽는 것 같은 생각이 들자,

나는 다시, 그가 내 상처를 잘 알고 있으므로,

그것을 치료해줄 수 있는 거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마치, 엑스레이 사진을 보며,

나의 정확한 병명을 말하는 의사와

그것을 듣는 환자처럼 말이다.




이렇게 나는,

다음 시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처의 치유는 어떻게 이루어질지

상상하면서 새로운 희망을 안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하나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나의 상처를 누군가에게 말할 때는,

듣는 이의 표정과 태도에서

2차로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즉, 심리치유란

치료하러 간 병원에서,

치료는 못받고 2차 감염이 되는

그런 상황이 될 수도 있음을

스스로 인지하고 시작하는

용기있는 행동임을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는 여정은,

아버지를 마음으로 용서하려는 여정은,

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여정은,

그렇게 또 다시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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