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야 했습니다.
어렸을 때
받은 상처로 인해
아버지는 어느 순간부터
여러 해동안 명절때마다
알게 모르게 사과를 하셨지만,
나는 여전히 그 상처가 아프고,
명절때마다 아버지를
날카롭게 대했고,
그런 모든 것들이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 같았다.
나의 마음도,
아버지의 마음도,
그것을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도....
나는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했다.
잘못한 이가 사과를 하는데도,
용서가 되지 않아,
자신을 괴롭히고,
그를 아프게 하는 것을
멈추기 위해....
아버지를 용서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 생각해보았다.
정신과에 가야 하나?
약을 처방받으면 되나?
그 약을 먹으면 용서가 가능해지나?
그냥 잊으라는,
그 시절에는 다 그랬다는,
생각하면 뭐할거냐는
주변에서 던지는
가벼운 말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되나?
그렇게 몇날 며칠을
고민하던 중,
우연히 시에서 운영하는
심리센터에서
내가 고민했던 그 주제로
상담을 해주고 있었다.
시중가보다 저렴하기도 했지만,
돈이 문제가 아니라,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하던 차에
이거다 싶어서 바로 신청을 했고,
몇 주 후부터 상담을 시작했다.
첫 시간에 상담사분이 물으셨다.
"어떻게 오시게 되셨어요?
가격이 저렴해서 오셨나요?
호기심에 오셨나요?"
나보다 10살 정도는 많아보이는
중년의 여자 상담사분이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내가 기분 상할 만한 말들이었다.
"저렴해서 왔냐고?"
"호기심에 왔냐고?"
그러나, 난 그 말들이 하나도
거슬리지도, 상처가 되지도 않았다.
나의 목적은,
그가 낸 스크래치를
해결하는 것보다,
더 큰 상처를 치유하는 것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대답했다.
아버지를
용서하고 싶어서요.
상담사분은 많이 놀란 눈치였다.
"제가 상담하면서
선생님 연배의 남자분이
상담 받으러 오시는 것도
흔치 않은데,
선생님께서 지금 말씀하신 이유는
더더욱 없어요."
그렇게, 상담은 여러 주 진행되었다.
첫 번째 상담때에만
내 이야기를 들어줬을 뿐,
이후에는 심리 이론, 심리 유형 등의
이론 설명을 하는 것으로
온통 채워졌다.
오래전, 대학교에서 교양 과목으로
심리관련 과목을 들었는데,
내가 배우고 싶었던 사람의 심리가 아니라
매슬로의 욕구 5단계 이론,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 등의
이론만 실컷 들었던 날들이 떠올랐다.
두어 달이 지나고
그만둬야지 싶었는데,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상담은 중단되었다.
아버지를 용서하는 방법은
어디에 가야 배울 수 있는걸까?
어떻게 해야 아버지를 용서하고,
명절에 만난 아버지께
"아버지 괜찮아요.
다 지난 일인걸요.
그만 잊으세요.
저도 잊은지 오래에요."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까?
나는 다시 여행을 떠나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