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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팠던 때, 내 앞엔

아빠가 있었습니다.

by 영순 Mar 0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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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아팠던 시절의

나를 떠올리자,

내 나이는 중2였다.




1학기 기말고사에서,

평소에는 안 틀리던 과목인

음악에서 실수로 1문제

틀리는 바람에

10점이 내려갔고,

이것은 등수의 변동을 가져왔다.


반등수는 2등에서 3등으로 내려갔고,

전교등수는 11등이 내려갔다.


나는, 이 사실을 아빠에게 알려야했다.


몇날 며칠을 고민했다.

어떤 때에 어떻게 말해야 하나.

어떤게 가장 좋을까.




평소와 다르게,

10점따리를 하나 더 틀려서

반등수가 하나 내려가서 3등이라고,

전교 등수가 11등이나 내려갔다고,

어떻게 말을 해야할지

가슴이 쪼그라들고,

하늘이 노래졌고,

겁이 났다.

도망치고 싶었다.




성적표가 나왔냐는 아빠의 말에,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

나는 볕이 좋은 주말 오후를 골라,

말씀드리기로 했다.


그때의 장면을 떠올리면

참 서글프다.


당시의 아빠는 취미생활을 했기에,

그것을 돌보느라,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십년이 지났는데도,

그때를 떠올리면,

불안하고 두렵고 무섭다.




안절부절 못하는 내 표정을 보고

아빠는 이미 아셨을것이다.

성적이 떨어졌다는 것을...


성적표를 달라고 해서 보는 대신,

나를 바라보며 성적을 묻는 대신,

아빠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결과만을 듣기를 원하셨다.


나는 있는 사실 그대로

말씀드렸고,

아빠의 대답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내 말이 끝나무섭게 튀어나왔다.


쯧쯧쯧~ 참내~
그것도 점수라고~


를 끌끌 차며,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지도 않고 하는 그 말은

나에게 비수로 꽂혔다.




그리고, 그 말,

그때의 분위기,

아빠의 표정과 말은

이후로 내 인생을

아주 많이 바꿔놓았다.




그것을 수십년이 지난 후에,

나 자신을 만나고,

내 마음을 만난 후에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내 마음이 치유되어야 할
시작 지점은 바로 여기였다.




이제는 아버지라 부르지만,

나에겐 아빠였던,

그 아빠가 내게 잘못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불우한 환경이라 부를 만큼

끔찍한 일을 자행한

그런 아빠는 아니었다.


하지만, 내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오히려 혼냈다면,

오히려 화를 냈다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텐데...


쳐다보지도 않고,

혀를 차며 했던 말...


"쯧쯧쯧~ 참내~

그것도 점수라고~"




나는 그 이후로,

내 인생 전체를

공부에 걸었다.




누군가는 엇나가거나

반항을 하거나,

공부를 접을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아버지의 인정, 격려,

사랑, 칭찬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것이 없는 공간은

어두웠고, 무서웠고,

숨막혔기 때문이다.




살면서, 사람들은 내게

성실하다. 철두철미하다.

꼼꼼하다. 완벽하다.라고 했지만,

난 본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 바뀐것이다.


내 마음이 필요한 것들을

아버지로부터 얻기 위해서...




내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더욱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나에게 상처를 준 아버지가 아니라,

내 자신, 내 마음, 내가 걸어온 길을

꼼꼼히 살펴봐야,

치유가 이루어질 것이고,

새로운 길을 떠날 수 있음을,

중2였던 나 자신을 마주하고

알았다.




나는 그렇게 아프고 피하고 싶은

나와의 만남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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