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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불씨가 남아있다면

금방 다시 타오릅니다.

by 영순

아버지를 만나는 것은

추석과 설명절,

1년에 2번이었다.


어린 시절 상처를 주었던,

아버지가 이젠 나이가 들어,

종종, 그 시절의 실수를

사과하고 싶은 뜻을

술 기운을 빌어

에둘러 표현하신지

여러 해가 되었다.


그 사과의 마음을 받아들고,

고향집을 떠나

다음 명절까지 지내는 동안,

과거의 상처는 점점 옅어져서,

그 다음 명절이 다가올 무렵에는

다시 만나면 마음으로

아버지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약해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수십년 전에 자신이 했던 말이나

행동에 대해서, 후회하는 모습을 보며,

그렇게 술 자리에서 은근슬쩍

그 이야기를 꺼내 마음을 전하는

아버지를 떠올리면

짠하기도 하고,

마음이 약해지기도 해졌다.


하지만, 이것은

내 마음 한편에서 일어나는

따뜻한 감정일 뿐,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은

이와는 대조적으로 더욱 날카롭고

예민해졌다.




이유는 명료했다.




타지에 있던 식구들이 모두 만나,

즐거운 명절을 시작하려고 하면,

이미 거실 TV는

어김없이 뉴스에 맞춰져 있다.


아버지는 정치 이야기를

시작하신다.


정치에 관심이 없어,

특정 정당에 관심이 없는 사람 몇몇과

아버지와는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가족을

명백히 아는 아버지는,

준비라도 된것처럼,

뉴스에 나오는 소식을 들어,

비난을 시작한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시각으로

그 뉴스를 분석하고

그에 관한 말씀을 하시는 것 같지만,

우리 모두는 안다.

그 이면에는

너희 정당은 모두 틀렸다.

나는 객관적이다.

내 정당이 옳다.

너희도 정당을 바꿔야 한다.

의식을 바꿔야 한다.




어느 순간 엄마가

"정치 얘기는 좀 그만하고,

어서 와서 식사해요."라고

말씀하시면

정치 이야기는 일단락된다.




제 2부는,

어떤 이야기든, 자신의 과거의 업적과

공로에 연결시켜 누구도 대화에

섞일 수 없게 일방적인 말들이 이어진다.




제 3부는,

누군가의 종교에 대한 비아냥,

누군가의 자녀양육에 대한 비난...

그러다가는 결국,

누군가가 울고,

누군가는 말리고,

언성이 높아진다.


이쯤되면, 아버지는

자신이 흡족할 만큼

주량이 채워지고,

사과 아닌 사과를 하며,

작은 방으로 가셔서

잠을 청하신다.




남은 식구들은 날카로워졌고,

기분이 가라앉은 상태가 된다.

그렇게 겨우 겨우

마음을 추스리고,

다른 대화를 좀 더 하다가

모두 잠이 든다.




다음 날도 마찬가지다.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같은 패턴이 이어진다.




아침이 되면,

타지로 떠나는 자식에게는

"하루 더 있다 가지 왜~"라는

말씀으로 아쉬움을 전하지만,

매일 밤이면 반복되는

그런 대화와 감정들이 싫다.


견딜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오른다.




이런 것들이 한가득인 가운데,

술 자리 대화 중 어느 순간에

내가 어렸을 적 받았던 상처에 대해서

사과를 하신다.




분명, 두 사건은 별개의 일인데도,

난 아버지에게 더욱 날카로워지고,

더욱 예민해진다.


그렇게, 나와 아버지,

내 감정과 아버지의 감정은

어우러지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매우 여러 해 동안....


작은 불씨는 그렇게

다시 활활 타오른다.




관계란 그렇다.


완전히 끊어진 관계라면,

어쩌면 더 크고 아픈 일도

용서와 이해가 가능할지 모른다.


아니, 더 쉬울지 모른다.


하지만, 지속되는 관계에서,

상대가 변하지 않는 상태라면,

이해와 용서는 오래도록

평행을 달리는 게 아닐까 싶다.


마치 서로 밀어내는 자석처럼...




이것은,
변하지 않는 상대방 때문일까?

상대방을 똑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변하지 않는 나 때문일까?




나는 다시 다음 여행을

떠나야 했다.


아버지를 용서하는 여행...


내 마음을 치유하고

평온해지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숙제를 위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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