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가 시작됩니다...
지난 심리상담 때,
내 마음 속 이야기를 하느라,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고,
그것을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짓던
심리상담사분을 떠올리면,
마음이 그리 편하지 않았지만,
잡지에서 그림이나 사진을 오려서,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서
위안을 느끼고 희망을 보았기에,
난 다시 일주일 뒤, 그곳으로 향했다.
이번에도 방식은 비슷했다.
몇 가지 간단한 질문을 하면서,
간단한 내 답변을 듣더니,
다시 잡지책에서 그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오려서
스케치북에 붙이라고 했다.
쓰고 싶은 말도 자유롭게 쓰라고 했다.
미술치료가 이래서 아이들한테 좋구나 싶었다.
나는 언어에 문제가 없는 보통의 성인이지만,
복잡하게 얽혀있는, 어린 시절부터 묵혀둔,
그 많은 감정과 메세지를 명료하게
꺼낼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방식은 참 좋다고 생각했다.
여러 권의 잡지책을 뒤적이면서
나는 2가지 생각이 들었고,
이내 불쾌한 감정이 올라왔다.
그것도 크게...
첫번째 생각은,
상담사분이 준 잡지책은
모두 여성 잡지였다.
어렸을 적 엄마 따라 미용실에 가면,
엄마를 기다리느라 심심해서 펼쳐보던
그 여성 잡지였다.
정확한 비율은 아니겠지만,
20%는 노출이 심한,
거의 벗고 있는 여성들의 사진이었고,
20%는 잊혀져간,
연예인들의 소식이었고,
20%는 가구, 식품, 영양제 등의 광고였다.
또, 20%는 운세, 기업, 요리 등이었다.
갑자기 불같이 화가 났다.
심리 치료에 오는 사람은
간단하게 위로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아니다.
큰 상처를 입고,
그것이 현재의 나를 망치고 있으며,
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적어도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책들이어야 하지 않는가?
내가 비키니 입은 여성들 사진,
요리 레시피, 정치인들의 일상,
잊혀진 연예인들의 소식,
상품 소개들을 끝없이 넘기며,
내 마음을 표현할 것을 찾느라
이렇게 오랜 시간을 써야 하는가?
전부 여성 잡지라,
어느 책을 펼쳐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화가 났다.
상담사 분을 문득 쳐다보았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뭔가 열심히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자를 전송하는 건지,
열심히 타이핑을 한다.
내가 스케치북에 하는 작업을
모두 마칠때까지 할게 없으니,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된다고 생각했나보다.
내가 두번째로 든 생각은,
상담사분의 태도는,
울고 있는 어린 아이를 방치하며,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주양육자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30분 가량의 시간이 지나자,
나는 소용돌이 치는 분노의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비싼 돈 들여가며 심리상담을 와서는,
여성 잡지책을 계속 넘기고 있고,
상담사분은 계속 문자를 하고 있다니...
하지만, 나는 인생을 살면서,
내 감정을 즉시 드러내기보다,
참고 견디며, 상황이 나아지길
기다려온 사람이다.
아니,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나는 내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힘들게, 어거지로 찾아서 붙인 그림으로
내 마음과 생각을 표현했고
몇 마디의 말을 겨우 듣고
상담시간은 그렇게 끝이 났다.
집까지 운전해오는 길,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내가 왜,
여러 권의 여성잡지에서,
수십장, 수백장을 넘기면서
내 마음을 표현할 것을 찾아야 했는가.
그 긴 시간동안
핸드폰만 들여다보며
문자를 보내고 있는 그를
견뎌야 했는가.
난 그에게서 진심이라고는
1도 느낄 수 없었다.
그가, 내담자의 치유를 진심으로 바라고,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여성잡지만 여러 권 준비해놓는게 아니라,
그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여러 종류의 책을 준비해뒀을 것이다.
그가, 내담자의 치유를 진심으로 바라고,
조금이라도 더 알기를 원했다면,
그 시간 동안에 내담자를 위한
더 좋은 질문을 생각하며,
상담시간이 종료될때 해줄 더 좋은 말,
책에서 읽은 문구를
들여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내담자가 어떤 말을 할지,
어떤 감정에 휩싸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서 진심을 느낄 수 없었고,
이런 감정이 내 마음의 치유를
가로 막았다.
내 마음의 치유가 멈춘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이젠 상담사에 대한 편견마저 생겼다.
나는 다시 길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