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평화를 유지 중입니다
–짧았지만 또렷했던 평화, 오늘을 견디게 하는 숨이 되었다.
간병으로부터 잠시 해방된 어느 날, 서울 집에 도착하자마자 한참을 움직였다.
밀린 빨래를 하고, 집안 구석구석을 정리하고, 식탁 위엔 가족들을 위한 반찬을 맛있게 만들어 올려두었다.
간병이라는 고된 시간 사이에도 가족을 맞을 준비를 하며 마음을 정리했다.
그리고 퇴근한 가족들이 들어올 때, 나는 어느새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구십 도로 깍듯이, 배꼽 인사처럼.
다음날 저녁은 남편의 생일맞이 식사자리를 아이들이 만들어 젊은이들로 북적이는 거리의 식당에서, 아들과 며느리, 딸과 함께
소소한 일상을 나누며 웃고, 찻잔을 기울였다.
모처럼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던 시간.
그다음 날은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거실 소파에 몸을 뉘인 채 혼수상태처럼 잠들었고
친구와의 약속은 미안하다는 한마디로 취소해야 했다.
가슴속 어딘가, 멍하게 쉬고 싶다는 신호가 있었던 걸까.
그리고 또 하루,
여행을 벗 삼는 친구와 함께 산으로, 계곡으로, 시골 장터로 향했다.
산들바람은 땀을 식혀 주었고,
한여름 햇살은 다시 살아갈 힘을 가슴 깊이 내려주었다.
작은 자연의 숨결도 얼마나 감사한 위로였는지.
서울에 있는 신앙 공동체의 모임에도 참석했다.
어느 순교성지에서 드리는 미사는 특별했다.
브런치 카페에서 나눈 식사와 대화,
다양한 사람들의 신앙 이야기와 삶의 흔적은
내 마음의 조각들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마지막 날은 갑작스레 쏟아진 비를 뚫고
동네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속이 후련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다시, 부산행 기차에 올랐다.
간병의 자리로, 나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하여.
동생의 진료 결과는 다행이었다.
염증 수치도, 암 표지자도 안정적으로 나왔다는 소식.
조금은 안도하며 몇 주 뒤의 CT 검사만을 기다려 보기로 했다.
엄마는 그 사이 식사도 안 하고, 옷도 갈아입지 않았다고 했다.
서둘러 집에 들어가 조용히 청소를 하고
옷가지를 정리하고 있는데
문득 엄마가 잠에서 깨 활짝 웃으며 나를 반겼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흔드시며.
간식을 챙겨 드리자
아기새처럼 앙앙거리며 입을 벌리고 보채시는 엄마.
그 모습에 웃음이 났고,
입맛에 맞는 반찬을 맛있게 먹는 동생의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
이렇게 또 일상이 시작된다.
끝없는 간병의 시간 속에서도
짧게나마 숨을 돌릴 수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작은 돌봄이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운다.
돌아와 보니,
나는 여전히 이 자리에서 평화를 유지 중이다.
잠시였지만 분명히 나에게도 평화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평화가 또다시 나를 버티게 해 준다는 것.
그 사실 하나면,
오늘도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