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물을 주셨는데 받아도 될까요?
이 글은 기독교 청년을 위한 영적 성장 바이블 시리즈의 열 번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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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 시편 127편 3절
이 질문은 상당히 무게가 있는 질문입니다.
32살의 나이에 2명의 두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아버지로서 지난 7년간 그 무게를 여실히 아내와 함께 느끼며 살아왔습니다. 물론, 수십 년간 자녀를 양육하시고 독립을 시키신 선배님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겠지만, 저와 아내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하여 나름대로의 양육 철학으로 가르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물론, 자녀를 낳고 안 낳고는 개개인이 선택할 문제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번 이야기에서 주로 말하고 싶은 내용은
그 선택이 옳으냐 틀리냐라기보다는
선택에 따른 책임과 보상, 그리고 보상을 떠나서
장기적으로 우리 청년들이 가져야 할 다음 세대에 대한 책임 의식에 대한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릴 수 있는 작은 글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하심에 감사드리오며 시작하겠습니다.
나와 아내는 21살에 만나서 6년간 연애 후 27살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막 취업을 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고, 당시 양가 부모님과 상견례를 마치고 결혼 일정을 논의하던 중이었다.
제일 큰 문제는 결혼 날짜를 잡는 문제였고 거기에 맞춰 같이 살집을 구하는 것도 일이었다.
당시 와이프는 삼성서울병원에서 제공하는 기숙사에서 곧 나와야 하는 입장이었고 새로운 집을 구해서 들어가기에는 자본이 두 번 투입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차라리 미리 살림을 합치고 혼인신고를 하자는 주의였다.
때문에 결혼식도 일찍 했으면 하길 바랬는데 아버지는 길일이 아니라면서 그다음 해에 결혼을 하는 것으로 날짜를 잡으셨다. 사실 좀 불만이 많았던 터였는데, 혼인신고를 하고 먼저 같이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이가 들어섰다!
당시 파주에서 근무할 때라 서울대입구에서 멀리 출퇴근하던 시절이었고 너무나 기쁜 소식이었다.
아이를 계획한 것은 아니었고 자연스럽게 아이가 생겼으니 그보다 삶에서 기쁜 일이 없었다.
그동안의 사랑의 결실이 맺어진 결과라는 생각에 더욱 감격스러웠다.
물론 주변 친구들 중에는 아이는커녕 결혼을 한 사람도 거의 없었던 터라 별로 주변 사람들과의 공감대 형성은 어려웠지만 드디어 둘이 만나 셋이 되었다는 생각에 들떴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퇴근하면 아이에게 영어 태교 시켜준다고 영어 태교 동화도 읽어주고 노래도 불러주고 아내의 배도 자주 쓰다듬어주면서 어서 나오라고 항상 주문을 외웠었다.
첫째 아이의 태명은 "건강이"였다.
그저 건강하게만 태어나 달라는 의미였고 그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너무 좋았다.
딸이었다!
조금 걱정은 되었다 사실.. 보통 딸은 아빠를 닮는다는데, 나를 많이 닮으면 안 되는데 하고 생각했다 ㅎㅎ
그럼에도 하나님이 알아서 잘 이쁘게 빚어주시겠지 하면서 태어나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다.
정말 다행히도 건강이는 아주 건강하게 2016년 3월 21일 삼성서울병원에서 태어났다!
그날 아내가 전날부터 잠을 잘 못 자고 뒤척이더니 새벽부터 나를 깨워서 마치 본능적으로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짐을 싸서 붕붕이를 타고 서울 삼성병원에 가서 입원했다.
아니나 다를까 진진통이 왔었고, 전날 밤에 얼굴 바꿔주는 앱으로 서로 키득키득 되면서 웃을 때까지만 해도 아이가 곧 태어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예정일보다 1주일 또 앞선 일정이었기 때문에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아무튼 너무나 감사하게도 우리 첫째 딸 "지우"는 그렇게 세상에 태어났다.
사실 여기까지만 보면 완전 해피엔딩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았다.
보통 영화는 그렇게 끝이 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진정한 스펙터클 스릴러 공포 영화는 탄생 이후부터이다. 하하...
사실 갓난아기 때는 몰랐다.
그때가 아주 편안할 때라는 것을.
그저 산후조리원에서 누워있는 아기를 보고, 때가 되면 젖병을 물려주면 해결되는 패턴이었기 때문에 간단해 보였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서부터는 아기가 얼마나 많이 보채고 잠투정도 많이 하고 울어대는지 그리고 우는 목소리는 누굴 닮아서 그렇게 또 우렁찬지 곤욕스러울 때가 많았다.
얼마나 아이가 예민한지 잠을 재우려면 거의 한 시간은 안아서 둥개 둥개를 해줘야 했다.
배가 고프면 분유를 먹이려고 하는데 지우는 얼마나 젖병을 싫어하고 거부하던지 항상 엄마젖만 찾았다.
단유 할 때는 거의 세상이 무너질 듯이 항상 지우의 고통스러운 울음소리에 7주일을 고통받았다.
배고파서 울어대는 아이를 보며 어쩔 수 없다며 그저 참아야 되는 상황들이 잊히지 않는다.
사실 여기까지는 인격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자녀 양육에 대한 큰 고민을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아이가 필요한 것을 채워주면 그만이었다.
졸리면 재워주고, 배고프면 먹여주고, 응가하면 치워주고 닦아주고 몸이 힘들지 정신적으로는 힘든 점이 없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양육은 아이가 좀 더 자라고 아이의 인격이 자라면서였다.
지우는 2살이 되기도 전에 말을 하기 시작했고 자아가 조금 일찍 형성된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자기 고집을 부리는 시기가 상당히 빨리 찾아왔고 흔히 말하는 미운 4살이라고 하는 시기가 조금 일찍 찾아왔다.
나와 아내도 처음 부모가 된지라 어떤 정답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었고 어떻게 자녀를 훈육해야 할지 몰랐다.
처음에는 당연히 잘 타이르려고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타일러 지지 않는다.
더 고집을 피우고 부모의 반응을 살핀다.
그래도 강경하게 일관되게 안된다고 하면 그때부터 울기 시작하며 떼를 쓴다.
최대한 듣기 싫고 큰 목소리로 울면서 자기의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이 아이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때로는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도 하고
때로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혼내기도 하고
방송에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방송을 보면서 생떼를 부릴 때 두 손 두 발을 다 잡고 두 눈을 응시하면서 30분 이상 대치를 한적도 많다.
세상 밖으로 나와주길 바라면서 겨우 태어난 아이에게 맴매도 많이 했다.
부모로서 스스로도 자괴감도 많이 들고 아이를 학대하는 건 아닌지, 어디까지가 훈육이고 어디까지가 폭력인지 스스로도 가늠이 안 갈 정도로 경계가 무뎌질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지우가 3살, 4살 이 때는 정말이지 누가 둘째 얘기만 해도 안 낳을 거라고 치를 떨었었다.
그때 가 가장 힘들 때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와중에 어느 날 아내가 교회 아는 집사님을 통해서
"말씀암송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우리 가정이 속한 교회인 관악구 "이루는 교회"에서 이번에 말씀암송 학교를 진행한다면서 같이 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내용을 들어보니 "자녀양육"에 관한 사명을 가지고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말씀암송 학교 과정 중 유니게 과정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본 과정은 최근에 소천하신 "여운학" 장로님이 직접 만드시고 운영한 프로그램으로
30년을 한 세대로 3대까지 대를 이어가며 어려서부터 가정과 교회 학교에서 하나님의 말씀 중에 엄선된 말씀들을 잘 외우고 삶에 적용하는 훈련을 시켜서 믿음의 자녀들을 양성한다는 "303 비전"을 이루기 위한 미션 중에 하나였다.
당시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치열하게 하나님의 자녀들을 양성하기 위해 일생을 바쳐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 가하면
그 움직임에 일찍이 동참하여 자녀들을 말씀으로 가르쳐서 사회의 올바른 일꾼과 사역자로 만든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자녀를 3명 4명이나 낳아서 말씀으로 은혜로 지혜로 자녀들을 열심히 키워가는 다른 가정, 부모, 인생의 선배님들을 보면서 존경심이 생겼고 나도 또한 그들과 같은 길을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특히 자녀들을 어떻게 양육해야 하고 가르쳐야 할지 기준을 잡지 못하고 있는 때 이 "유니게 1단계' 과정은 흔들리지 않는 뿌리를 만들어줬다.
유니게 1단계 과정의 가장 첫 번째 말씀은 고린도전서 13장 전장 1절부터 13절까지의 말씀이다.
일명 "사랑"장이라고 불리는 말씀이다.
당시만 해도 필자는 성경 1독을 못했기 때문에 읽어보지 못한 성경구절이 많았고 고린도전서 13장은 그중에 하나였다. 이 말씀을 읽는 순간 내 머리를 망치로 때리는 듯했다.
그중 일부를 보면..
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13: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13: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13: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말씀에 의거하면 나에게 사랑은 없었다.
하나님이 나에게 하고자 하는 말씀이었던 것 같다.
정말이지 유니게 과정 1단계를 하면서 처음에는 정확히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냥 막 외웠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말씀이신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와서 나를 변화시키셨다.
성령님이 일하시기 시작하신 것이다.
아이를 훈육하더라도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고린도전서 13장 전장을 되뇌며 인내하고 진정 아이에게 가르쳐야 함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행동하게 하셨다.
감정보다는 어떤 행동으로 부모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말씀을 근거로 한 일관된 규칙을 적용했다.
그리고 가정예배를 시작했고 암송 예배를 최대한 매일 하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지우"도 변하기 시작했다.
지우도 말씀암송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즐겁게 받아들였다.
최근 둘째가 태어난 뒤로 온 가족이 같이 가정 예배하는 모습
유니게 과정 동안에 말씀 암송만 주야장천 한 것은 아니고 부모 교육도 일부 포함이 되어있었다.
자녀를 대하는 태도와 자녀에 대한 인식들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었다.
자녀는 나의 전유물이나 소유물이 아니고, 하나님이 보내주신 선물이고
나는 청지기로서 하나님을 대신해 그들을 맡아서 기르고 사회에 나가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라는 것이다.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은
아내와 내가 어른이 되어서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았다고 착각을 했다는 것이다.
진정한 어른이 되고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은 사실 아이들을 낳고 기르는 과정에서부터 시작이 되는 것 같다.
그동안 겉모습만 어른의 모습을 했지 사실 자기 자신 외에는 "사랑"해주고, 다 "품어주고", "받아줄" 준비가 되어있지 않는 미성숙한 사람에 불과했다.
하지만 자녀 한 명 한 명을 낳아서 기르고 그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우면서 부모 된 자로서 나와 아내가 같이 내적으로 성숙해지고 인격적인 뿌리가 자리 잡히는 것을 보면서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나"를 키운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아이는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요 상급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누군가의 자식이자 아이들의 아버지인 내가 치유하지 못했던 가슴속에 상처들이 아물어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자라면서 느끼지 못한 사랑을 최대한 아이들에게 표현함으로써 내 상처들을 치유하는 과정이 곧 자녀 양육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힘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치유와 내적 성숙과 행복과 미래 세대를 기른다는 자부심과 의무감은 일시적인 힘듬을 금방 잊어버리게 한다.
그만큼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이 모든 창조 세계 가운데 가장 값진 선물일 것이다.
그 선물을 마다하고 거절한 다는 것은 선택의 문제이지만 나라면 Why not? 인 것 같다.
요즘은 더욱 아이를 기르기 힘든 세상인 것은 맞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고 있는 질병, 전쟁, 기근, 가난, 취업난, 부동산 가격 폭등
이유는 말하자면 산더미 같이 많습니다.
그래도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도 우리 같이 힘내 보자고.
아이를 낳는 것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그 선물을 꼭 받길 원한다고.
우리 모두 나 자신만이 아니라 이 악한 세상을 이겨낼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일에 동참하고 선물을 받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입니다. 그리고 그 일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다음 이야기: 왜 일하는가?
처음부터 보기: 하나님을 만나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