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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소녀 Apr 09. 2022

이르쿠츠크에 깃든 문화와 영혼

시베리아의 파리, 데카브리스트의 도시, 이르쿠츠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 가운데 있다.

언제 끝날지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지금까지 벌어진 상황들은 참 많은 것들을 엉클어놓았다.

이미 엎질러진 물은 담을 수도 없다. 그래서 다 엎어버리고 새 물을 담으려고 하는 건지도.

어쨌든 STOP THE WAR!!!


세계적으로 반러 감정과 다양한 제재들이 존재하지만,
러시아 도시와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멈출 수는 없다.
과거, 그리고 현재의 러시아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므로.


'러시아'라는 나라의 역사를 보면 내부 위기 속에 혁명이 함께 했다. 

극심한 전제 정권, 그리고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 혁명의 꽃은 활짝 피어났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염원, 현재 닥친 상황들에 대한 불합리함 등... 이런 것들이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19세기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전제 정권에 대항하여 일어난 데카브리스트의 반란(1825)도 그러하다.

러시아 최초 혁명운동으로 일컫는 이 데카브리스트 반란은 물론 무참하게 실패로 돌아갔으나,

척박한 땅 시베리아에 문화의 꽃을 피울 수 있는 씨앗을 뿌리는 과정이 되었다.


시베리아의 도시 이르쿠츠크를 이야기할 때

프랑스 계몽주의 영향을 받은 청년장교 출신 '데카브리스트(12월 혁명당원)' 스토리가 빠질 수 없다.

이들에게 러시아에서 출세의 길은 보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서양과 비교했을 때 자신들의 조국 러시아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반란을 일으켰지만 그 결과는 사형 또는 시베리아 유형이었다.


데카브리스트의 아내들은 명예와 재산을 버리고 남편을 따라 유형지 시베리아로 떠나 갖은 고초를 겪었지만,

이들 덕분에 시베리아 도시에서 선진화된 서양 문화가 꽃을 피울 수 있게 되었다.


이르쿠츠크가 시베리아의 파리로 일컫게 된 것도,

단순히 도시 외관 때문이 아니라(그렇게 기대했다간 오히려 실망),

도시 속에 담긴 문화와 영혼이 프랑스 문물의 영향을 받은 데카브리스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관련 이야기는 예전 글 말미에서도 소개한 바 있다.


앞으로 러시아와 관련된, 좋은 소식들이 많이 들려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르쿠츠크와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는 아래 영상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 이르쿠츠크편 영상 주요내용 >

- 이르쿠츠크 도시 역사

- 도시 문장(바브르)에 대해

- 안가라강과 샤먼바위 전설

- 데카브리스트의 도시

- 이르쿠크 미술관, 즈나멘스키 수도원, 각종 동상 등



시베리아의 파리, 데카브리스트의 도시, 이르쿠츠크(출처: 윤성학TV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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