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울 자격이 있는 도시
러시아를 강한 국가로 만들고자 한 '철의 황제' 표트르 대제가 1703년 세운 상트페테르부르크.
성 피터(표트르)의 도시, 즉, Saint+Peter에 독일어로 도시를 뜻하는 부르크(burg)까지 합쳐진 합성어이다.
아무런 배경을 모르고 갔다면 이곳을 '러시아'보다는 여느 아름다운 '유럽' 도시로 생각할 것.
황제의 신분을 감춘 채 유럽으로 건너가 문물을 경험하고, 직접 조선술까지 배운 표트르 대제가 만든 도시니 유럽의 향기 가득할 수밖에. 하지만 상습적인 홍수 범람지였던 이곳에 도시 세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막대한 양의 돌을 옮겨 초석을 다지고 건축물을 올리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해야 했던 것.
희생 없이 역사도 없다.
덕분에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유럽으로 난 창'으로서 아름다운 도시가 되었고, 1713년부터 1918년까지 제정 러시아의 수도로 굳건히 그 자리를 지켜왔다. 모스크바와도 전혀 다른 분위기.
이곳은 그냥, 말이 필요없는 '백문이 불여일견'의 장소이다.
이 도시는 희한하다.
여기서 13년 전 찍은 사진과 3년 전 찍은 사진을 비교해 보면, 사람만 나이를 먹고 배경은 거의 그대로다.
도시가 하나의 박물관처럼 건축물 하나하나가 문화유산으로서 엄격하게 보존되고 있기 때문에 방부제 미모를 자랑하고 있는 것. 시내에서 고층 건물 하나 찾아보기 힘든 이유도, 그 느낌도 유럽이랑 비슷하다.
수많은 섬이 다리로 연결되었고, 아기자기하면서도 고풍스러운 건축물에 감탄하게 되는 곳.
도시를 관통하는 넵스키 대로(Невский проспект)를 따라서 걸어보자.
옛 건축물과 다리, 운하, 극장, 카페, 쇼핑가 하나하나가 아름답다. 물론 지하철이 다니기는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를 지하로 다니는게 좀 아깝단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 시원스런 넵스키 대로 >
물론 걷기엔 여름이 가장 좋다.
가을, 겨울에는 낮의 길이가 짧고 날씨도 흐린데다 눈까지 날려 괜시리 마음이 우울해질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처럼 대문호가 걸작을 써낼 수 있었던 것도 이곳 기후와도 무관하지는 않으리라.
실제로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의 배경이 이곳 시내라, 소설 속 그 장소들을 투어할 수도 있다.
< 넵스키 대로에서 만날 수 있는 다리들. 은행 다리(좌), 아니치코프 다리(우) >
아무튼 넵스키 대로는 산책하는 것만으로 눈도 마음도 풍요로워지는 곳이다. 넵스키 대로 서편으로는 세계 3대박물관인 에르미타쥐 박물관, 동편으로는 모스크바로 가는 모스크바 기차역을 기준 삼아 산책하면 된다.
도시의 멋 중 하나는 섬 사이사이를 타고 흐르는 운하! 그곳을 따라 경험하는 보트 투어는 운치가 있다.
여름이면 이 보트 투어만으로도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시 분위기를 전반적으로 조망할 수 있어 더없이 좋다.
보트는 운하를 타고 이동하다가 나중에는 커다란 네바강에 합류되는데, 거기서 보이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풍경은 형용할 수 없는 감동 그 자체! 다리 하나하나도 다 작품이니 어쩜 이리도 구석구석이 아름다울까.
하늘을 찌를듯 높이 솟은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까지!
특히 백야의 보트 투어는 네바강 다리가 열리는 장관을 볼 수 있는 절호의 찬스. 해가 지지 않는 한밤중에 졸린 눈 비벼가며 기어이 보트를 타야만 하는 이유가 다 있다. 곳곳의 운하에서 보트들이 네바강 다리의 장관을 보러 나오는 그 모습은 지금도 눈앞에 선명하다.
물론 다리가 올라가는 모습도 너무나 멋있지만, 운하에서 하나둘씩 보트들이 엄청나게 네바강으로 쏟아져 나오는 모습은 마치 해상에서의 전쟁터를 보는 듯 경이롭다.
< 네바강 다리가 열리는 절경, 놓칠 수 없다! >
보트 투어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오면 보통 새벽 2시무렵. 놀라웠던 것은 그 시간까지도 맥도널드에는 줄이 한창이었다는 것. 맥도널드만큼은 이제 막 저녁이 시작된 느낌이었다.
정말 이곳 사람들은 겨우내 놀지 못해 근질근질했던 에너지를 여름에 한꺼번에 쏟아내는가보다.
문화예술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미술관이나 공연장, 성당을 가보지 못았다면 여행에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크고 작은 문화공간들이 많은 도시 박물관에서 어디로 갈 것인지 선택은 자유.
오로지 나의 몫이다.
세계 3대 미술관 에르미타쥐에서 눈은 향기롭게, 다리는 피로하게 만들고,
마린스키 극장에서 수준 높은 발레나 오페라 공연 감상으로 행복을 느껴봐야 한다.
거기다 정교회 성당의 화려하면서도 경건함까지 경험하면, 이곳의 예술을 제대로 느낀 것이라 할 수 있으리라.
< 이삭성당과 천장의 비둘기 >
< 피의 사원과 내부 >
< 스몰니 사원과 루스키 박물관 >
에르미타쥐는 모든 작품들을 1분씩 감상해도 5년이나 걸릴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표트르 대제만큼 강인했던 예카테리나 여제가 명화들을 소집하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작품들이 모여 지금의 박물관을 이루었다.
에르마타쥐는 유럽문화가 한데 모여있는 명소라고 해도 될 정도. 게다가 미술관 자체가 '겨울 궁전'의 민트빛 별관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 박물관에 가본 사람이라면 이 건물만 떼어내서 한국으로 가져오고 싶은 맘이 절로 생겨난다. 그만큼 아름다운 곳.
< 에르마타쥐 박물관 내부(좌) 박물관의 명물, 황금 공작새 시계. 정해진 시간에 공작새가 날개를 편다.(우) >
예카테리나 여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러시아를 문화예술의 정점으로 끌어올린 멋진 그 여인의 거대한 동상은 넵스키 대로에서도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한다. 무능한 남편을 몰아내고 자신이 직접 황제의 자리에 오른 독일 태생의 예카테리나는 그야말로 여장부.
예카테리나 여제는 남성 편력이 심했다고 하는데, 이 동상에도 그녀의 측근이자 애인 9명도 함께 있다.
그 모습, 놓치지 말자.
사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너무 할 이야기가 많은 곳이라,
하나하나 나열하며 설명하는 것보다 사진 몇 컷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먹는 음식조차 기나긴 역사를 자랑하는 이 곳,
너무나 가고 싶은 이 아름다운 도시, 현지인들은 간략하게 '삐쩨르(Питер)'라고 부른다.
핀란드만이 옆에 있어 맘만 먹으면 북유럽으로 넘어갈 수 있으니 유럽의 창인 것만은 확실하다.
거기다 옛날 제정 러시아 당시 일구어 놓은 화려함의 극치!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근교 여름 궁전으로 사용했던 분수 가득한 페테르고프(Петергоф), 아름다운 푸쉬킨(Пушкин)시까지! 어느 것 하나 빠뜨릴 수 없다.
< 여름 궁전, 페테르고프의 분수와 산책로 >
러시아의 유럽다운 면모를 느끼고 싶다면 주저없이 추천하는 곳!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행복한 기억을 많이 남기고 싶다면 꼭 가야할 러시아.
충분히 아름다울 자격이 있고 이유가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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