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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소녀 Mar 09. 2017

고전을 품은 현대 도시, 모스크바(2)

문화와 그 깊이에 빠지다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Москва слезам не верит)>라는 러시아 영화가 있다.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1979)(출처: 인터넷)

기구한 여인의 모스크바에서의 삶과 그 희로애락이 소련 당시 시대상으로 잘 그려진 영화이다.


시골 출신 예카테리나는 모스크바로 상경해 상류층인 척하며 파티를 열고 그곳에서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공장 근로자인 자신의 신분 때문에 예카테리나는 버림을 받고, 아이를 가졌던 그녀는 미혼모로 살아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성이지만 역경을 딛고 일어나 직장에서 성공하고 사랑도 이룬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스토리.


그렇게 모스크바는 냉철한 공간이고, 그렇다고 눈물을 보여봤자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강인한 러시아의 여인처럼 기다리고 견디는 자에게만 오늘보다 좋은 내일이 오는 법이다.


이와 같은 모스크바 사람들의 정신과 생각들은 도시 곳곳에서 발견된다. 인간 내면의 고뇌가 많을수록 이를 표현하는 방법인 '예술'은 자연스럽게 발달할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냉혹한 도시 이면에는 따뜻한 사람들의 마음과 그 영혼이 숨쉬고 있다.


소련시절 1920년대 미스닌쯔스끼예 바로따(Мясницские ворота) 광장 풍경(모스크바 박물관 소재)




# 문화예술의 도시


모스크바에서 극장과 미술관을 빼놓으면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모스크바의 명소, 볼쇼이 극장(Большой театр)


특히 시내 중심지에 있는 볼쇼이 극장(Большой театр)은 누구라도 알 만큼 명성 있는 장소다. 한 때는 오랫동안 공사를 했지만 지금은 멋진 모습으로 관객들을 기다린다.


이름 값을 하는 곳이라 이곳의 티켓의 가격은 다른 곳보다는 조금 비싸다. 층이 높은 좌석일수록 가격은 저렴해지지만 배우들의 점같은 얼굴이 둥둥 떠다니는 것만 보다 올 수 있으니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 시간과 여력만 된다면 꼭 여기서 좋은 좌석에서 발레 공연을 감상해보시길.

아, 학생 시절 볼쇼이 극장에 가서 3시간이 넘는 오페라를 보고 친구들과 귀가하다가 지하철에서 여권을 도난당한 악몽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지금은 그럴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니 러시아 치안도 많이 좋아지긴 했다.


시내 중심에는 차이콥스키 음악원이 있다. 이곳의 가장 큰 홀에서 음악을 감상하노라면, 악기 소리 하나하나가 가슴 속까지 파고들어오는 것 같은 전율이 느껴진다. 한마디로 감동이다. 그 감동은 언제라도 환영이다.

차이콥스키 음악원 홀에서는 항상 연주들이 진행되고 있으니 마음이 허락하는 날 티켓을 과감히 질러보자.

 

<차이콥스키 음악원 볼쇼이 잘(большой зал)의 겉과 속>


아무튼 수준 높은 발레나 오페라, 클래식 연주를 한국보다는 값싸게 감상할 수 있다.

멋진 공연에 감탄에 감동을 연신 자아내는 이런 최고의 순간을 본토에서 직접 향유할 수 있다니 얼마나 진귀한 경험인지 모르겠다. 신기한 점은 공연 후 커튼 콜 때 러시아 사람들은 자기네들끼리 짜기라도 한 듯 박수를 박자에 맞추어서 일정하게 친다는 사실. 현장에 있으면 나도 자연스럽게 그 박수에 동참하게 된다.  


모스크바에는 멋진 러시아 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는 박물관도 많다.


트레치야코프 미술관. 눈에 덮인 저 분이 러시아 예술계를 일으킨 거상 트레치야코프


특히 모스크바에 왔다면 트레치야코프 미술관(Третьяковская Галерея)은 단연 들러야 할 문화예술의 명소이다.


트레치야코프 미술관 내 계단. 천국으로 이르는 계단일까?


트레치야코프는 19세기 러시아의 상인으로, 당시 러시아 화가들의 그림을 직접 사서 수집하여 지금 박물관에 이르게 되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참으로 멋진 거상이다. 미술관에는 레핀, 브루벨, 칸딘스키, 말레비치 등 러시아 유명 화가의 작품들도 많고, 엄청난 규모의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분위기에 압도된다. 이야기가 있는 러시아 미술 작품을 감상하면서, 러시아를 가슴으로 이해하는데는 적격인 장소이다.


솔직히 말하면, 옛날에는 러시아 미술을 봐도 별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방문하면 할수록, 스토리를 알면 알수록 매력에 빠져들었고 그림으로부터 인간에 대한 깊이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말은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말일 수도, 이젠 진정으로 러시아를 사랑할 자격이 갖춰졌다는 말일 수도 있다. 무엇이든 상관이 없다. 평온이 찾아오고 행복해지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러시아 사람들은 미술관 데이트도 많이 한다.

이렇게 품격이 있는 데이트라니! 역시 스피릿이 남다르다.

이곳에서는 전시홀 의자에 다정히 앉아있는 커플들의 아름다운 그림마저 감상할 수 있어서 더욱 좋다.


<트레치야코프 미술관 대표 작품>

무지개(아이바좁스키) / 푸쉬킨 자화상(키프렌스키)

미지의 여인(크람스코이) /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레핀)


# 감상 포인트: 무거운 짐은 내려놓고


모스크바에서 극장이나 미술관 등 공공장소에 가면 반드시 지켜야 할 에티켓이 있다.

물론 러시아 전역에 해당되는 예의이다.


박물관, 극장 그리고 고급 레스토랑에 들어가면 항상 입구에 있는 옷 보관소(гардероб: 가르제롭)가 바로 지나치지 말아야 할 장소다.


러시아 공공장소의 옷 보관소. 사람이 몰릴 때 서두르지 않으면 기나긴 줄을 기다릴 각오를 해야 한다(출처: easy-made.ru)


가을이나 겨울처럼 외투를 입는 시기에는 여기서 반드시 겉옷을 맡기고 들어가야 한다. 옷을 건네면 보관소 아주머니(주로 나이드신 아주머니가 많다.)께서 번호표를 주는데, 이는 보관했다가 나갈 때 보관소에 제출해야 보관소 옷을 돌려받을 수 있다.


"에이. 난 옷 입은게 편한데!"하며 한국에서처럼 외투를 걸치고 들어가려는 사람이 있다면, 끌고 와서라도 옷을 맡기고 가자. 의외로 한결 몸이 가볍고 좋다.


이런 미술관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무거운 외투는 내려놓자


사실 러시아에서는 두터운 외투를 입은 채로 공연장이나 내부를 들어가면 예의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입장까지 제재하며, 심지어 문화적이지 못한 사람(некультурный человек)으로 취급받는다. 그러니 귀중품은 빼놓고 외투와 모자, 목도리 등 걸리적거리는 겉옷은 꼭 벗어두고 당당하게 입장하도록 한다.


러시아에서는 추운 겨울이라도 대부분 건물 안 난방은 따뜻하기 때문에 외투를 벗어도 전혀 춥지 않다. 그러니 러시아에 왔다면 러시아 사람처럼!


추운 날씨에 모피처럼 두껍고 무거운 옷을 입은 사람이 많은데, 모두가 그렇게 실내에서 입고 다닌다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좌석에 벗어 걸쳐놓는다 해도 한 자리 차지하니 불편하다. 무거운 짐을 편안히 내려놓을 수 있는 옷보관소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한국에 있으면서 겨울이 오면 가끔 이 옷 보관소가 간절해질 때가 종종 있다.


커피 한잔의 여유를 부려보는 모스크비치(모스크바 사람)


겨울은 길고, 옷은 무겁지만 문화와 예술에 온전히 집중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옷보관소가 생겨난게 아닐까 생각한다. 아, 이런 문화도 참 마음에 든다!


# 모든 길은 모스크바로 통한다


러시아어를 배우기 시작할 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모스크바와 러시아는 다른 나라야."


모스크바는 다른 러시아 도시들과 달리 자기만의 색깔이 강한 곳이라 별개의 나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절대 권력 크렘린이 있는 도시라 다른 국가로 보는 것일 수 있겠다.


실제로 러시아는 모든 시스템이 모스크바 중심으로 돌아간다.


이런 맥락에서 모스크바에는 신기하게도 모스크바 기차역이 없다. 서울에 서울역이 있는 우리로선 의아하다.

모스크바는 그곳을 기준점으로 하여 도착지 이름이 기차역명이 되니 이해가 어려울 수 밖에. 가령,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역은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옛 명칭)"기차역이라고 부른다.

게다가 예전에는 기차표 모든 시각이 모스크바 기준으로 표기된 적이 있었다. 열차 이용객이 많아진 지금은 로컬 시각으로 표시되고 있다. 러시아 전역 시차가 최대 10시간까지 나는 것을 감안하면, 현지시각이 없었던 당시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어쨌든 모두가 한마디 불평 없이 모스크바를 기준점으로 생각하며 그리 산다.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가려면 레닌그라드 기차역(Ленинградский вокзал)으로 가야한다


한 때는 제3의 로마가 되고자 했던 러시아의 의지로 '모든 길은 모스크바로 통한다'는 법칙을 계속 고수하고 있는가보다. 그만큼 자부심이 강한 민족이고, 또 그만한 가치가 스며들어 있는 곳이다.


매력 만점 모스크바!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곳.


너를 보며 발전 가운데 아날로그를 추구하는, 예술적 깊이를 바탕으로 한,

자신감 넘치는 나의 모습을 꿈꾼다.


빛 바랬지만 아름다운 기억들(모스크바 박물관)




모든 러시아에는 모스크바가 녹아있다.

러시아의 어디를 가도 모스크바의 모습들은 어딘가에 그 규모나 발전 속도가 다를 뿐이지 숨어있다. 그러한 것들을 우리는 반갑게 찾아내고, 이를 러시아라 일컫는다.


모스크바의 이런 고즈넉한 공원 산책이 좋다. 러시아는 어디에나 공원이나 가로수길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러시아 도시에서 모스크바를 발견하려면, 먼저 모스크바를 알아야 하고 직접 가봐야 한다.

그곳을 온몸으로 느껴야 한다.


조명이 물들인 모스크바강의 야경. 저 멀리 정부청사가 보인다


나의 젊은 시절을 보낸 곳, 그리고 도시의 성장 과정을 지켜볼 수 있던 곳.

어린 시절의 경험 덕분에 지금의 나는 다른 러시아 도시에서도 크고 작은 수많은 모스크바를 알아보고 반가워한다. 그곳이 조금씩 일어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내가 뿌듯하고 기쁘다.

그럴수록 러시아가, 또 모스크바가 더욱 더 좋아진다.


어린 아이가 기어다니고 걸음마를 하다가 뛰어 다니는 모습을 지켜보는 엄마처럼

나는 엄마 미소 지으며 이 도시를 계속 지켜주고 싶고, 키워주고 싶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다.


<모스크바 중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이런 멋진 장소가 있다. 짜리찌노(Царицыно) 공원>


나는 모스크바를 너무나 사랑하고 있다.

Я очень люблю Москву!!!!!!!!

내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모스크바 도심의 야경



★ 게재한 모든 사진들의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습니다:) Copyright by 모험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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