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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소녀 Jun 27. 2018

러시아 열차, 여기 다 모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철도 박물관에 가다

최근 남북 평화 분위기와 미국, 러시아의 긍정적 행보 덕분에 철도 연결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정말 머지않아 한국에서 기차로 시베리아를 지나 유럽까지 갈 수 있을까? 한반도가 평화로이 대륙에 연결되고 하늘길 대신 땅길로 섬에서 벗어날 그날을 간절히 기대해 본다. 3년 전 유라시아 친선특급의 구호를 외치며!


유라차차 유라차차 기차!


철길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지게 되면서 유서 깊은 러시아의 철도가 문득 궁금해졌다.

여러 차례 언급했듯 러시아는 열차 빼면 할 이야기가 없다고 했는데 직접 확인 좀 해봐야겠다. 장장 9,288km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1916년 완공한 이래 오랜 기간 철길로 대국을 운영한 만큼 역사와 교훈도 많으리라.

Россия живёт дорогами. (러시아는 길 위에서 살아간다.)
- 러시아 철도청 슬로건
상트페테르부르크 철도박물관 도입부. 역사 및 전반적인 지식을 얻어갈 수 있다. 화면에 보이는 주인공은 시베리아 횡단철도 건설을 지시 및 수행한 알렉산드르 3세와 니콜라이2세.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 본 사람은 누구나 이 정체 불명의 붉은 볼드체 로고가 낯익을 것이다.

이건 도대체 뭘까? 러시아어 'РЖД(에르줴데)', 즉 러시아 철도청(Российские железные дороги) 약자다. 열차표 예매부터 열차 생활 내내 접하게 되는 이 로고는 심플하고도 강렬한 느낌을 준다.


대륙 횡단을 하려면 어쨌거나 유라시아에서 가장 큰 러시아의 철도청 서비스 이용이 불가피하다.

거대한 땅 전체를 움직이게 하는 '철도'는 분명 이 나라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위력을 느껴보고자 철도청이 운영하는 박물관을 방문하기로 했다. 그중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소재한 철도 박물관(Музей железных дорог)은 세계에서 손꼽힐 만큼 큰 편에 속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철도 박물관


1978년 처음 선보인 이곳은 모스크바, 노보시비르스크 등 러시아 3대 철도 박물관 중 하나이다. 여기는 특별히 열차 위주의 관람이 가능해 특별한 지식 없이도 볼거리가 가득하다. 무엇보다 이곳의 최신 시설과 깨끗함에 놀라게 되는데, 지금의 건물이 시베리아 횡단철도 시공 180주년을 맞이한 작년(2017년) 10월 새롭게 개관한 거라 그렇단다.


입장료는 단돈 300루블(6천원)!


상트페테르부르크 철도 박물관 외관. 발틱 기차역 뒤편에 위치한다.


위치는 비교적 시내와 가깝다. 발틱 기차역(Балтийский вокзал) 뒤쪽, 지하철 붉은 선 발찌스까야(Балтийская) 역에서 가까워 접근성이 좋은 편.


총 면적 50,000㎡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두 개의 실내 전시장, 그리고 축구장 다섯 배 이상 크기의 실외 전시장까지! 너무 넓어 다 둘러보려면 진이 빠질지도 모른다. 열차가 많아서 설명도 일일이 다 읽어보긴 버거울 것 같다.


열차가 정말 많다!
열차 박물관 실내 전시장 모습. 도처에 열차들이다.


박물관에는 118개 차량을 포함해 총 3,500여 전시품이 있다.

옛날 증기 기관차부터 내연 기관차, 전기 기관차, 2000년초 고속 열차까지 러시아의 열차 변천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호화 열차, 교외 열차, 공무 차량, 군용 열차 등 종류를 셀 수 없고, 시대 및 용도별로도 동선이 끝없이 이어진다.


사실 열차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한데, 대부분 개방되지 않아 아쉽다. 그래도 구경할 열차들이 줄을 서고 기다리고 있으니!


너무 많아서 관람을 어디서 시작하고 끝낼지는 내 선택에 달렸다. 구석구석 다 보려고 욕심내기보다 쉬엄쉬엄 산책하듯 거니는 편이 좋겠다.


시대상과 함께한 사람 조형물(좌, 우),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 구간 호화 열차로 알려진 붉은 화살(Красная стрела) 열차(가운데)


열차는 대부분 소련시절 만들어진 것들이 많다.

열차에 대한 설명이 영어로도 조금 되어 있는데, 여기서 나는 철도 박물관의 외국인에 대한 '배려'와 자국에 대한 '자부심'을 읽어낼 수 있었다. 자랑하고 싶은 건 확실히 자랑하는 것!


시대에 따라 다른 기능을 해온 열차들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열차들
냉동 차량, 증기기관차, 그리고 다양한 색깔의 열차들


평범함을 거부한다!


철도 박물관은 구조상 동선이 크고 길게 그려진다.

실내, 야외, 아래층, 위층을 모두 거치게 되는데, 특히 위층에서 내려보는 열차의 모습도 꽤 신선하다. 물론 열차 윗부분만 보이지만, 얼핏 장난감 같기도 하고 열차 한량한량 모아 놓은 광경에서 정말 제대로 된 콜렉션을 감상하듯 뿌듯한 기분마저 든다.


실내 전시장 계단을 올라 위층으로 가면 평소 보기 힘든 열차의 지붕을 시원스레 내려볼 수 있다.


내가 간 날은 꽤 쌀쌀하여 실외 전시장은 살짝 건너뛸까 했었다.

그런데 실외엔 독특한 전시품이 많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핀란드 전쟁과 대조국 전쟁 때 사용한 대포 전차 TM-3-12, 굴뚝처럼 솟은 전투용 로켓 모듈 말라제쯔(Молодец)를 비롯해 알록달록 기관차, 급행 전차 등 나름대로 의미를 자랑하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화려하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포스가 느껴지는 것들!


실외 전시장 풍경1: 멀리 지붕처럼 솟은 로켓 모듈(좌), 나에게 달려올 것만 같은 열차들(우)
실외 전시장 풍경2: 알록달록 색깔만으로 정체성을 드러내는 열차들
교육적이다!

  

열차 박물관이라 딱딱하고 투박한 열차 더미만 있어 전문가나 마니아 외엔 별 관심이 없을 것 같은데,

엄연히 이곳은 아이들의 유익한 교육 공간이기도 하다.


학생 단체가 왔다. 철도청 직원이 나와 직접 열차 원리, 역사 등의 지식을 알기 쉽게 들려준다.

꼬마 친구들도 만났다. 열차를 마치 커다란 장난감 대하듯 흥미롭게 바라보며 선생님 이야기에 한참 심각하다. 나도 이렇게 신기한데, 애들은 얼마나 새로운 세상일지! 유아들을 위한 재미있는 놀이 프로그램까지 있다 하니 아이들 세상이다.


물론 박물관 교육이 일상화 된 러시아에서는 이런 모습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을 것.


선생님을 경청하는 아이들. 전시장 곳곳을 다니는 교육의 현장.


이렇게 돌고 나면, 일단 다리가 아프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히 남는다.

 

"러시아가 진정 철도의 나라였구나!"


그리고 이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또 타고 싶은 마음에 당장 떠나고 싶어진다.

이런 역사와 의미를 가지는 러시아의 열차라면 내가 몇 번이고 기쁜 마음으로 탈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도 러시아처럼 훗날 기념비적인 '한반도 종단철도(TKR) 첫 운행 열차'를 전시한 철도 박물관이 생겨나길 바라본다. 열차만이 아니라 평화의 기억까지 우리 후손들에게 남겨줄 수 있다면 더 좋겠지?



옛날을 기억하는 열차는 오늘도 관람객을 기다린다.


참, 열차가 유럽까지 가더라도 피할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철로 환승'!

나라마다 두 개 레일 사이의 간격, 즉 '궤간'이 달라 열차 바퀴 폭을 조절해야 한다.


우리나라와 북한, 중국 그리고 유럽 철도는 표준궤로 1,435mm의 폭을 가지지만, 러시아와 몽골은 그 보다 넓은 광궤 1,520mm이다. 그러고 보면 러시아 열차 폭이 우리보다 85mm 더 넓다. 직접 체험해 보시길!


따라서 궤간이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기 전 국경에서 열차 바퀴를 교환하는 '대차' 작업이 이루어진다. 아마 철로가 뚫리면 북한-러시아 국경이나 중국-러시아/몽골 국경에서 바퀴 갈아끼우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을 거다. 이젠 기술이 나날이 발전해 바퀴가 궤도에 알아서 적응하는 '궤도 가변 대차'도 된다곤 하지만!

러시아 어느 시대의 짐칸


열차, 역시 다시 봐도 설레고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 게재한 모든 사진들의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습니다:) Copyright by 모험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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