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내 전공 아닌데

괜찮을까? 비전공 분야와 길고 외로운 싸움

by 모험소녀

계약직인 나의 업무는 정해져 있어 선택권은 애초에 없었다.

담당 업무는 정보 조사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여기에 사실 문제가 좀 있었다.

나는 숫자에는 진절머리가 났었고 경제와는 더군다나 글자로만 친분이 있는 관계였는데,

주어진 업무가 경제 자료를 분석하고 정리해 보고서를 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팀에서는 별 생각 없이 '그 용도'로 나를 데려온 것이니 난 '그 만한 자격'을 갖춰야 했다.


맡은 일이 비전공 분야라 다시 '제로 베이스'였다.

물어볼 데 없을 땐 전임자가 남겨 놓은 자료를 수없이 뒤적였고, 매일 아침 경제 신문도 모두 훑어봤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필요한 분야에 대해서는 관계자 미팅도 직접 진행했다.

확실히 예전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업무에 임하는 자세에 나도 놀랐다.


하지만 마음은 늘 자신이 없었다.

처음에는 전임자가 써놓은 기존 보고서에서 숫자만 시기별로 바꿔서 적당히 수정하는 걸로 시작했다.

하지만 회사 이름으로 발표되는 자료들도 있다 보니, 매번 보고서 쓰는 일이 그토록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이래도 괜찮은 걸까?


팀 내에 경제학과 출신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비전공인 나에게 시킨 이유는

전공자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일 테지. 아니면 나를 믿어서일까?


온갖 생각을 다하며 나는 숫자, 경제지표, 보고서와 계속해서 씨름했다.

가장 괴로웠던 순간은 모르면서도 아는 척 해야 할 때. 외부에서 전화가 오면 그래도 담당자인데 둘러대긴 해야 하고, 그렇다고 모른다고 하기엔 무책임해 보이니 말이다.


아무튼 내 업무가 다른 것으로 바뀔 거라는 한 낱의 희망도 없었으니, 길고 외로운 비전공과 사투의 시간은 계속됐고 갈수록 부담감은 커져만 갔다. 그래도 자료를 작성하고 '내 이름이 들어간 무언가 남기는 일'을 하니 내심 뿌듯하긴 했다. 소모적이기만 했던 지난 회사 생활보다는 훨씬 더 보람되기는 했다.


한편으로는 다른 비전문 활동에도 참여했다.

같은 팀 동기와 함께 사내 방송반 동아리에 들어간 것이다.

한때 매우 희망했던 학교 방송반의 꿈을 여기서 조금이나마 달래볼까 하는 마음에,

또 업무에만 사무치기엔 내 마음이 너무 팍팍해서 시작했다.


요일마다 돌아가며 선곡하고 멘트를 쓰고 직접 퇴근길 DJ도 했다. 퇴근 시간 틀어주는 짧고 간단한 레퍼토리였지만, 당번이 있다보니 그마저도 종종 업무처럼 되어버리는 날도 있긴 했다.


그래도 그때 처음 나의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흐를 때 그리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학창시절 못 해본 걸 재입사해서 이렇게 약식으로나마 경험해 보다니! 참 사람 일 알 수가 없다.


이처럼 때로는 어깨가 땅에 꺼질 정도로 힘겹게,

또 때로는 좋은 음악과 멘트로 힐링을 하면서,

비전공 분야와 친해지려는 나의 노력과 함께 나름대로 재입사 생활에 리듬을 찾아갔다.


성장해가는 나를 발견하면서

회사 생활이 순조롭게 잘 이루어지는 듯했다.

내가 착각 속에 있었단 사실을 깨닫기 전까진 말이다.



Point11. 모르는 업무에도 다 뜻이 있고 길이 있다!

보통 본인이 애정을 가지는 전공 분야로 입사하면 회사에서도 그와 관련된 업무를 맡고 싶어 한다. 나 또한 그랬지만, 지속해서 다른 페이퍼 워크만 하다가 지쳐버리곤 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내가 입사 초반부터 러시아 업무를 맡았더라면 시야가 좁고 아는 것이 별로 없어 업무 방향조차 제대로 못 잡았을 것 같다. 회사라는 곳이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게 배려해 주는 곳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게 주어진 전공과 무관한 업무들이 아무 의미 없는 일도 절대 아니다. 결국은 나중에 다 나에게 도움이 되어 돌아온다. 내가 문서 작업 훈련이 미리 되지 않았더라면 급하게 요구하는 보고서 작성에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됐을 것이고, 엑셀 파일과 숫자로 씨름해 본 적이 없었다면 데이터 자료 도출에도 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꼭 회사 안에서 활용되지 않더라도 세상으로 나와서 도움이 되는 일도 있다. 비전공 분야인 경제 보고서를 사투하며 작성했던 나는 지금 러시아와 관련된 일을 할 때 경제지표를 확인하는 등 그때 경험을 적용할 수 있게 됐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하찮거나 나의 전공과는 동떨어진 일이라 하더라도 참고 더 가보자. 분명 나만의 자산이 되고, 보석이 되어 귀환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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