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통보

회사의 청천벽력에 정신이 번쩍

by 모험소녀

내게 주어진 일들은 점점 많아졌다.


당시 팀에 공백 생긴 일들은 속속 내게로 왔다.

보고서 작성만이 아니라 일일 데이터 관리 및 메일 송부, 상업출판까지 맡게 되었다. 이 일들이 결국 나중에 내가 책을 낼 수 있는 기초가 되긴 했지만, 참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다행히 내가 중도 포기하지 않고 이 힘겨운 날들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때마침 찾아왔던 사랑의 힘이기도 했다.


하지만 힘든 일은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법.

사랑이 나를 떠난 동시에 회사에서도 나에게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날렸다.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야 하겠네요.


당시 정부의 비정규직 축소 방침에 따라, 계약직인 나도 그 대상에 든 것이다.

정 기간 이상 근무한 계약직은 무기계약으로 전환해야만 했다.


그보다도 나는 '무기계약직'이란 말을 듣자마자

'무기(기한이 없음)'라는 말 때문에 족쇄를 차게 된 느낌이 들었다.

동기들과 똑같은 수준으로 하고 있는데 에게 돌아온 건 현상 유지라니...!

이건 마치, 오랜 연인으로부터 결혼하지 말고 그냥 계속 친구로만 지내자는 얘기를 들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내가 이미 한 번 퇴사를 했고, 다른 방식으로 다시 돌아와 기꺼이 겪은 일들이고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

회사를 탓할 수도, 희망을 심어 준 상사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할 말은 없었다.


참 속상하다. 내 발에 내가 걸려 넘어져 하필 놓여진 돌뿌리에 무릎을 찍은 느낌.
쪽팔려서 아프다고도 못하겠다.


결국 가 한 희망 고문에 스스로 피해자가 거다.

윗분들이 말한 '좋은 기회'가 분명 이런 방식은 아니었을 텐데.

회사의 갑작스런 통보는 나를 이도저도 할 수 없게 만드는 너무도 악독한 것으로만 느껴졌.

뻔히 아는 얼굴들 앞에서 전환 시험을 형식적으로 치르고 나니 환멸감이 몰려와 화장실에서 혼자 펑펑 울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정신이 확 들었다.

때는 마침 대학원 휴학 최대 연수 2년이 끝나가던 시기였고,


'학위라도 제대로 따고, 다시 제대로 시작해야겠다.'


이 생각 하나로 대학원 복학을 신청했다.

교수님은 내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 생각하셨단다.

휴학원 제출할 땐 기약이 없었데, 벼랑 끝에 이르러서야 이렇게 돌아오게 될 줄이야.


이제는 뭐 될 대로 되라지!

팀장님께 내 복학 의지를 말씀드렸다.

다행히 수업을 듣도록 배려해 주셔서 최대한 업무 공백이 생기지 않는 선에서 학업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업무와 학업 병행의 피곤함으로 몸과 마음이 매우 피폐해졌지만,

그 동안의 희생을 이렇게라도 보상 받고 싶 마음은 더 컸다.


평일에는 아침 일찍 출근해 그날 업무를 부리나케 처리하고 수업을 들으러 갔다.

주말은 대학원 수업 발제 준비에만 시간을 전부 쓰니 녹초가 됐다. 에게 쉬는 시간은 그야말로 사치였다.


이렇게라도 해야 회사에 붙어 있는 시간이 덜 괴로웠고, 보다 전투적으로 사는 이유가 됐다.

하필면 이런 예민한 시기에 요구하는 업무들은 더 늘어났고 사람들과 부딪힐 일도 많아,

화만 늘어 매일 뒷목은 뜨게 달궈졌다.


그러던 어느 날,

복학 후 첫 학기를 겨우 끝내고 방학을 코 앞에 둔 그 때,

나는 삶의 더 큰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Point13. 고생은 후대에게 이어줄 전통이 아니다!

회사에서 답이 없거나 불필요한 일로 괴로울 때마다 선배나 윗분들은 이런 얘기를 하셨다.
"우리 때는 더했어. 지금 이건 고생도 아니야."
고생도 아랫 세대로 전해지는 전통과도 같은 건가. 시집살이 지내본 사람이 나중에 더 혹독한 시어머니 노릇하듯, 회사에서도 쓸데없는 어려움이 후대에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어렵고 반드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 잡아주고 다음 세대가 더 살기 좋게 만들어주는 것이 윗세대로서 해야 할 당연한 역할이거늘,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쩔 때는 '너도 당해봐라' 심리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물론 다들 바쁘고 여력이 안 되니 당면 과제에만 급급할 뿐, 지나가면 그만이고 잊혀진다. 분명 근무 환경은 옛날보다 더 좋아졌는데, 그 내용물이 그대로라면 조직에 발전이 있을까? 불필요하거나 번거로움을 주는 업무는 과감히 선배 세대들이 개선해서 후배들에게 물려주지 말아야 한다! 모두에게 그런 마음과 의지만 있어도 좀 더 인간다운 회사 생활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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