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떠납니다

이제는 후회 없이. 두 번째 퇴사

by 모험소녀

새로운 세계를 맛보고 온 후,

이제 내게 회사라는 공간이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지는 것 같았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괴롭게 느껴졌다.


아무런 동기 부여가 안 되는 내 자리도,

데이터에 쫓기며 임원들의 무리한 요구로 벌벌 떠는 업무도 다 소용없어 보였다.

그저 '나를 위해 하는 일'은 업무와 병행하고 있던 대학원 과정뿐이었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계속 끌려다니는 삶은 이제 그만둬야 했다. 보다 주체적으로 살아야 한다.

그래서 다시 찬찬히 내가 회사로 다시 들어오게 된 이유를 돌아보게 됐다.

두 번의 실수는 없어야 하니 그 동안의 시간을 통해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서진영 리포트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전제는 '회사를 떠나야 한다'였다.


내가 이제 정말 회사를 떠나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지금까지 동일한 현상을 반복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거운가. 또 무엇을 잘하는가.

경쟁력이 될 나의 능력은 무엇인가.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가.


감정적으로만 대응해 일희일비했던 것들도 하나씩 조목조목 풀어보니 이제야 좀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됐다.

비록 당장은 다른 회사로 옮겨서 뭘 하겠다는 계획은 없었지만, 큰 틀에서는 앞으로의 방향이 그려지는 듯했다.


이 리포트를 들고 부모님 앞에서 브리핑했다. 기왕이면 퇴사 허락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늘 지지해주시는 부모님께 두 번의 실망감을 안겨드리기 죄송했고,

감정적으로 내린 결정은 아니라는 걸 알려드리고자 했다.

부모님은 가만히 들으시더니 오히려 내게 퇴사 전에 이런 보고까지 할 만큼 당신들을 생각해줘 고맙다 하셨다.


첫 번째 퇴사는 모든 것이 지쳤을 때 이루어졌지만, 두 번째에서 명확한 이유를 알게 됐고 철없던 시절에 내린 결정에 대한 확인까지 제대로 받은 셈이었으니, 그만하면 됐다.


어차피 내 눈앞에는 당장 넘어야 할 석사 논문이라는 높은 산이 있었고,

그걸 완수하려면 지금의 회사는 내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기왕이면 논문도 제대로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만두겠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퇴사의 이유는 외형적으로는 '학업'이었지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너무도 다른 사람이었다.

모든 것이 확실해졌고, 퇴사 후 당장의 목표가 있어 입을 떼기도 더 쉬웠다.


그렇게 두 번째 퇴사는 요란하지 않게 조용히 진행되었다.

계속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은 사람처럼, 혹은 누군가에겐 원래 없었던 사람처럼.



돌아온 탕자를 따뜻하게 맞이해주고,

있는 힘껏 제대로 훈련시켰다가,

이제는 또 기분 좋게 놓아준 회사에 문득 고마운 마음이 든다.


사람 때문에 다시 돌아왔다가 결국 사람이 만든 상황 때문에 다시 나오게 됐지만,

두 번째 모험 덕분에 내가 확인받고 싶었던 모든 것들이 잘 정리됐다.


처음 다닌 6년 반 회사 생활이 영화의 지루한 전반부였다면,

재입사 후 2년 반은 스펙터클한 사건 가득한 중반부였고,

이제는 클라이맥스와 결론만 남겨두고 있다.

바로 모험 이후의 삶이다.




Point15. 정리의 시간은 나를 위해 꼭 필요하다!

바쁜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들과 부대끼며 가지게 되는 온갖 감정선들, 불안한 마음과 각종 눈치로 내 마음이 온전할 새 없다. 매일 시달림 속에 하는 일마다 예민해져 일희일비하게 된다. 이 때문에 순간적으로 판단을 잘못하거나 비뚤어진 시각에서 못 벗어나기도 한다. 그럴 때는 잠시 쉬면서 냉철하게 상황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위해 나와 관련된 것들을 하나씩 써내려가며 정리해 보는 것도 좋다. 지금 나의 기분이 어떠한지, 왜 그런 기분이 드는지, 내가 지금 가장 힘든 건 무엇이고 그걸 해결하려면 어떻게 할지 등을 가슴 속 감정으로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글로 정리하다 보면 상황이 좀 더 심플해진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얼마나 감정을 낭비하며 사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상황을 객관화하는 능력만 갖추게 된다면 회사에서 현재 내 위치와 앞으로 가야 할 방향도 점검해 볼 수 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긴 호흡을 가지고 중간 점검의 시간은 꼭 가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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