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발악

내 삶을 바꾼 19박 20일 여정

by 모험소녀

회사에 대한 실망감과 화가 뒤섞여 살던 중,

나에게 마지막 발악의 기회가 왔다.


매일 보는 아침 신문 스크랩에서 나는 운명적인 기사 하나를 접했다.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유라시아 친선특급' 국민 원정대 모집 공고였다!

선발되면 각자의 재능으로 원정대 활동도 하고,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독일까지 갈 수 있는 기회였다.


러시아 사랑이 각별한 내가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탈 수 있는 이 기회를 어찌 놓치랴?

공고를 보자마자 단번에 지원서를 제출했다.


무슨 입사 시험도 아닌데, 선발 과정은 서류와 면접 전형이었다.

지원자 폭주로 생각보다 경쟁률이 높았다. 서류는 그럭저럭 통과했는데, 면접장에서 엄청난 인파를 경험하고는 이건 안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버벅거리는 러시아어 면접으로 나의 꿈은 광탈되는 듯 했다.


하지만 역시 운명이었나 보다.

내 러시아어 능력시험 점수 덕분인지, 상대적으로 경쟁률 낮았던 언어 지원자로 선발된 것이다!

뛸 듯이 기뻤다. 입사 시험 합격한 것보다 더!


그런데 유라시아 친선특급 여정이 총 19박 20일 일정이라 회사는 3주를 빼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할지 살짝 갈등했지만,

이런 기회가 내 평생에 또 올까?


난 이제 더 무서울 것이 없는 상태인 바,

회사에서 허락 안 해주면 퇴사하고라도 가겠다는 마음으로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


생즉사 사즉생이랬던가.

감사히도 남은 휴가 다 끌어다 써서 라고 하셨다.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뻤다.


3주의 휴가, 유라시아 친선특급은 내게 정말 신세계였다.

회사에서 같은 생각에만 머물러 있는 직장인들만 보다가

내가 가진 능력으로 세상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귀한 여행이었으니 말이다.


긴 여정으로 시간을 많이 뺄 수 없어 국민 원정대에서 나 같은 회사원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강사, 배우, 화가, 음악가, 디자이너, 의사, 사업가 등 일정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평소 만나기 쉽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같은 열차 객실에서 만난 동생들은 모두 하는 일은 달랐지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삶에 대한 고민과 미래를 향한 열정은 모두 같았다.

그런데 확실히 회사원인 나와는 달리 동생들은 모두 자기 나름대로 삶의 방식을 찾아가며 잘 살아내고 있었다!

우리는 매일 열차에서 맥주 한 잔에 인생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꿈을 나누었다.


그들과 함께 보낸 시간은 나에게 큰 자극이 되었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었다.


그렇게, 대륙을 횡단하며 틀 속에만 갇혀있던 내 마음이 조금씩 깨어져 갔다.

나는 왜, 뭐 좋다고 같은 회사에 다시 들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걸까?

나도 배고플지언정 이들처럼 자기 일을 찾아 즐기면서 살아야겠다!


또 러시아 지원자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해내면서 더 자신감을 얻었다.

횡단 여정 중 얼떨결에 방송국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한 현장 통번역을 즉흥적으로 돕게 됐는데,

처음엔 자신이 없어서 도망다니다가 결국 미약하게나마 내 능력으로 기꺼이 도움을 드렸다. 당시 내가 현지인 즉흥 인터뷰했던 내용은 여행 다녀온 후 멋진 다큐멘터리로 제작됐다.

그래, 나도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게 있었어!


새로운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과의 좋은 인연, 그리고 다시 못올 값진 여행의 시간들.

유라시아 친선특급 19박 20일의 여정은 나에게 너무나 큰 선물이었다.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게 마지막 발악은 끝이 났다.

내가 이런 멋진 인생 여행을 하고 올 수 있었던 것 역시 회사 덕분임을 감사해 하며,

꿈꾸듯 일상으로 돌아왔다.

더 이상 예전의 공간이 아닌 회사로 말이다.



Point14. 회사는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주는 곳이다!

회사라는 장소는 묵묵히 일만 열심히 한다고 알아주는 곳이 절대 아니다. 일을 하면서도 내가 잘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윗분께 수시로 보고해야 인정해주고, 자기 목소리 많이 내는 사람의 이야기를 더 잘 들어준다. 많은 이들이 경쟁하며 목표를 다투는 회사에서는 티를 내야만 주변에서 나의 상황을 알 수 있다. 나는 분명 열심히 일했는데 아무도 몰라주는 것 같다면, 평소 주변에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알리지 못한 탓이리라. 일하는 티를 내는 것만이 아니라, 회사에서 겪은 애로사항이나 어려움도 자주 울어대며 여럿이 함께 목소리를 내어 해결을 요구하면 회사 차원에서 마무리해주는 경우도 많다. '나는 차마 대놓고 못하는 성격'이라 할지라도 회사 생존용 '티내는 인격'을 하나 더 마련해두자. 일종의 살아남는 지혜이다. 배가 고프다면 있는 힘껏 울자. 체면 때문에 울지 않으면 내가 배고프다는 사실을 절대 알 리 없는 이 사회는 충분히 밥을 굶기고도 남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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