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퇴사 선물

그걸로 지금 간간이 먹고 삽니다

by 모험소녀

두 번의 모험으로 모든 일이 헛되고 지쳤던 나는

훌훌 털고 새로운 시작을 위해 겨울 시베리아행 편도 비행기 티켓을 끊고 떠났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다 그 이유가 있었다.

이 말을 놀랍게 체감하게 된 건 기약 없이 떠난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부터였다.


학교로 돌아와 논문과 졸업에만 집중하자는 마음에 장기적인 계획은 당분간 미뤄두고 있었다.


그런데 논문 작성 중에 이전 직장 정년 퇴임하신 처장님의 글 다듬는 일을 잠시 도와드린 것을 시작으로,

내 두 번째 모험에서 습득한 보고서 작성 특기를 살릴 수 있는 일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생긴 나에게

친한 동생이 러시아 전문 팟캐스트 고정 패널 참여를 제의해 왔다. 너무나도 설레는 일이었다.

그렇게 내 두 번째 모험에서 잠시 몸 담았던 방송반 체험을 다시 되살릴 기회도 만났다.


이미 회사를 나오기 전부터 나의 전공 러시아와 관련된 책을 내고 싶은 마음에

브런치에 글을 남기기 시작했었다. 엉겁결에 출판 제의도 받았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아 거절했었다.


그러다 팟캐스트의 인연이 연결돼 다른 작가님을 소개 받았고,

유라시아 친선특급 당시의 경험을 살려 그 분과 가이드북을 공동 출간하는 기회도 얻게 되었다.

그 과정 중에 나와 인연이 깊은 블라디보스토크 책 출간도 단독으로 계약을 체결하는 기쁨도 맛보았다.

생각해 보면 두 번째 모험에서 상업 출판 업무도 맡은 적이 있어 출간 과정을 이미 한 번 체험한 바 있었다.

이렇게 그 퍼즐이 딱 맞을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논문까지 완성했으니 퇴사 이후 책을 총 3권 출간하게 된 셈.

온전히 내가 원하고 좋아서 시작한 일, 돈 벌자고 시작한 게 아닌 진짜 오롯이 내가 해낸 일이었다.


첫 번째 모험은,

내가 두 번째 모험을 할 수 있게 만든 든든한 뒷받침이었다.

혹독한 사회 생활, 인간 관계, 그리고 각종 잡다한 기술과 페이퍼 워크, 꼼꼼하게 살펴보는 통찰력까지.

이 모든 것은 회사가 나에게 선사해 준 선물이다.


그렇게 나는 글을 쓰고, 종종 강연을 하거나 러시아 관련 활동을 이어가며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첫 번째 퇴사 때는 불안함만 가득해 회사로 다시 돌아갈 충분한 이유가 됐지만,

두 번째는 뚜렷한 목표를 따라 가다보니 새로운 기회가 왔고, 이는 또 다른 기회로 연결되고 있다.




퇴사 이후의 삶이 어떠냐고들 많이 묻는다.

야생이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은 건 사실이다.

가만히 있어도 매일 업무가 쏟아지는 회사와는 달리 그냥 할 일 없이 보내는 날이 많고 불안한 삶이라, 강한 정신력도 필요하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러시아 관련 활동을 하고 사람들과 공감을 나누며, 러시아 여행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면서

나에게 있는 줄도 몰랐던 진짜 나의 모습을 하나씩 찾아가고 있으니 참 행복한 일이다.

그래서 작은 일에도 더 감사하고 겸손하게 되고, 어렵게 번 돈의 가치와 소중함을 알게 된다.


이같은 과정을 나는 '회사'라는 긴 모험을 통해 깨닫게 되었지만,

모두에게 회사가 꼭 모험일 필요는 없다.

회사가 삶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회사 따위 때문에 지치거나 무너지지 말길!

그러기엔 당신의 하루하루는

너무나 고귀하고 소중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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