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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동토 생활의 기록
02화
PART1-① 첫 러시아 입성, 모스크바
러시아 교환학생을 떠나던 그날
by
모험소녀
Feb 19. 2021
"
드디어 교환학생 길에 올랐다.
출발 직전까지 모든 게 얼마나 아슬아슬하던지!
"
- 2004.2.13 나의 모스크바 교환학생 일기
도대체 누가 러시아에 가서 공부를 하냐고 하던 2000년대 초,
개척하다시피 온갖 서류에 학교를 재촉하여 힘겹게 러시아 교환학생 자리를 받아냈다.
하지만 개강은 다가오는데 교환대학에서 초청장이 오지 않았다.
학교 국제교류국에서는 소식이 없다고만 했다. 이러다 개강 후에 가게 생겼다.
'러시아가 그렇지 뭐..'
기다림을 포기할 즈음 날아온 초청장. 러시아 신년 연휴가 길어서 학교도 늦게 움직였던 것.
그 이후 첫 러시아 입성을 위한 모든 일은 정말 한꺼번에 이루어졌고,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비자 신청, 비행기 티켓 예매, 이민 가방과 기념품 준비, 살림살이 짐꾸리기... 순식간에 해치웠다.
공항에선 여섯 개의 짐과 사투 끝에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일행들과 합류하면서
이별의 순간이 어떤 것인지 알 겨를도 없이
,
어느덧 나는 비행기 안에 있었다.
"
모든 것을 최악으로 생각하고 간 모스크바.
"
- 2004.2.13 나의 모스크바 교환학생 일기
러시아
다녀온 선배들이 해준 수많은 모험담과 경험들로
내 머릿속 러시아는 이미 위험하고 살기 힘든 나라로 정해져있었다.
그래서 애초에 기대도 없었다. 문화 체험하겠다는 마음과 함께 '살아서 돌아기만 하자'는 목표뿐.
처음 접한 러시아의 문화는 러시아 국적기 아에로플로트 여객기에서 시작됐
다.
아에로플로트를 택한 이유는 명확했다. 학생 할인으로 항공료가 많이 저렴했기 때문. 1년 오픈 티켓으로 끊어놓고, 멋지게 귀국할 1년 후를 상상했
다.(물론 예상치도 못한 일로 1년도 안 돼서 쓰게 되었지만 말이다.)
교환학생 당시 아에로플로트 1년 오픈 티켓
비행기에서 신선한 서비스 문화를 경험했다.
10시간 가까이를 비행하는데,
기내식 두 번, 그리고 알 수 없는 단 맛의 웰컴 사탕 서비스가 전부.
스튜어디스들이 서빙할 때 정체 불명 영어로 묻는데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식사시간이 끝나면 이들이 모두 자취를 감춰버려서, 목마른 승객들은 우물을 찾으러 배회해야 했다.
거기다 기내에 개인용 스크린이 없어 10시간을 그저 멀뚱히 있어야 하니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겐 지옥이다.
도저히 지루함을 견딜 수 없을 즈음 모스크바에 곧 착륙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기내 방송을 전부 알아들을 순 없어도 분위기로 느꼈다. 비행기는 점차 하강하고 있었다.
비행기 바퀴가 활주로에 닿는 순간은 마찰로 인한 흔들림이 강하다. 나도 비행기 타봐서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착륙하며 기체가 흔들릴 때 짐칸 전체가 천장과 따로 놀듯 앞뒤로 마구 요동치는 것이 아닌가? 그 충격으로 덮개가 열리기도 했다. 이러다 비행기가 부서지는 것 아닌가 싶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본래 여객기가 아닌 비행기를 여객용으로 개조해 만들어 그런 현상들이 나타난다 했다.
그렇게 착륙하는 와중에 사람들이 신나게 박수를 친다. 나도 얼떨결에 따라서 치게 된다.
러시아에서는 비행 착륙을 무사히 하면 박수쳐주는 것이 전통이란다.
착륙의 순간들,
왠지 목숨을 담보로 비행을 한 것 같았다.
눈 덮인 모스크바, 그리고 학교!
모스크바는 눈 덮인 겨울이었다.
내 생애 처음 입성한 러시아였다.
공항을 나와 엄청난 짐들과 함께 우리 일행은 대궐 같이 멋진 건물로 입성했다.
본관 건물이었는데, 줄여서 게제(ГЗ
: Главное Здание
)라 불렀다. 이런 곳에 기숙사가 있다니! 첫 기숙사 생활이라 많이 설렜다.
저 멀리가 기숙사 입구
친구들과 같이 짐을 옮기고 드디어 기숙사 방을 배정받았다.
수위 아저씨를 따라 방을 찾아가는데, 복도를 끝없이 가는 거다.
그리고 그 복도 끝에 엄청 크고 두꺼운 문이 있었다. 별도 공간으로 구분하려 급한대로 만든 것처럼 보였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넓은 복도와 기숙사 방문이 여럿 있다. 문마다 두 개의 작은 방과 화장실이 있다. 좁은 1인 2실...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무슨 감옥도 아니고, 내 방까지 가려면 긴 복도를 걸어 문을 3번이나 열어야 한다. 그래서 항상 소지해야 할
열쇠는 한 꾸러미가 되었다
.(러시아에서는 예삿일이다.)
복도 끝 커다란 문과 그 안
멋진 건물의 외관과는 다르게 기숙사 안은 너무나 소박, 아니 매우 허름했다.
좁고 길쭉한 방 구조가 답답했고, 가구는 낡았으며, 복도와 화장실 천장 페인트칠은 잔뜩 벗겨져 조각들이 바닥에 여럿 떨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모든 것을 최악으로 생각하고 와서 그런지
크게 놀라거나 실망하지 않았다.
기숙사 방문에 우편물을 꽂을 수 있도록 만든 우체통 구멍이 귀여웠고, 겨울이지만 방이 따뜻해서 다행이었다.(러시아의 난방은 역시!) 또 나에겐 함께 온 학교 선배와 동기가 든든한 룸메이트와 이웃으로 있다.
"페인트칠 벗겨지고 칙칙한 색의 모든 것들에 처음에 그리 놀라지 않았고,
이만 하면 살 수 있을 것 같아, 오히려 열악하지 않음에 감사했다.
..... (중략) 앞으로 여기서 보낼 시간들이 행복했으면 좋겠
다."
- 2004.2.13 나의 모스크바 교환학생 일기
기숙사 상태
물론 기숙사 입성과 함께 통행증, 확인증, 허가서 등 러시아 행정의 덫에도 걸리고 말았지만,
이 시간 만큼은 앞으로 보낼 모스크바에서의 생활이 설레고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화려한 외관에 비해 허름한 내부, 열쇠는 한 꾸러미
※ 모스크바 사진들은 하드 손상으로 모두 없어져 싸이월드 사진으로 가져왔다. 그마저 해상도가 낮아 아쉽다.
★ 게재한 모든 사진들의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습니다:) Copyright by 모험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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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학생
Brunch Book
러시아. 동토 생활의 기록
01
러시아는 이겨야 할 대상이 아니다
02
PART1-① 첫 러시아 입성, 모스크바
03
PART1-② 행정 지옥의 굴레
04
PART1-③ 손님놀이와 쥐의 상관관계
05
PART1-④ 생쥐 소탕작전
러시아. 동토 생활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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