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몸은 기억한다 (2부 마지막회)
이번회차는 그림자놀이 2부의 마지막 회차입니다. 한 주 충전하고 9월 15일에 3부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지우는 1층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를 모시러 함께 오후 2시까지 병원에 가기로 했다. 매주 수요일은 아버지 외박날이었다.
지우는 요양병원에 계신 아버지를 직접 데려가고 데려다 드리는 것을 조건으로 허가를 받았다.
이 날은 아버지와 공원을 산책하고 저녁식사도 하고 집에서 잠도 함께 잤다.
병원의 요청으로 토요일마다 바이올린 연주회가 열리니 지우는 일주일에 두번은 아버지를 보러 가는 셈이었다.
아버지가 얼마나 오래 지우를 기억할지, 얼마나 버틸지,
그는 아버지가 좀이라도 움직일 수 있을 때 함께 하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다.
아버지의 기억이 현재와 과거를 왔다 갔다 했다
아버지는 아들인 지우는 보자마자 대부분 알아보았다. 아들을 알아보는 시간은 그날 그날 달랐다.
그즈음 아들 기억하는 시간을 측정하는 것이 아버지 병환 상태의 지표가 되고 있었는데 부쩍 못 알아보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었다.
뇌출혈로 인한 뇌손상으로 언어, 운동지각이 채 회복되지 못한 상태에서 알츠하이머치매가 진행되고 있어서 였다. 아버지와의 소통은 점점 힘들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병원에서 지우의 아버지를 몇 번 뵈었지만 전에 본 적이 있는 사람으로 나를 기억하지는 못하였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지우 친구 김정선입니다. “
눈을 껌벅거리는 속도가 느린 탓에 눈가에 눈물이 고인 것처럼 눈빛에도 물기가 어려 있었다.
그는 나를 한참 쳐다보다, 한 번 눈을 깜박이며 엷은 미소를 띠는 듯하며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만날 때마다 표정도, 행동도 똑같은 것을 보니 나를 기억하는 것은 아닌 거 같았다.
"오래 기다렸어? 바로 갈까? 아버지 기다리시겠다."
지우 옆에 앉으며 말했다.
"점심은 먹어야지. 오늘은 오후 4시 정도 모시러 가기로 했어. 우리 점심 먹고 장을 좀 보고 아버지를 모시러 가는 게 낫겠어. 오늘은 집에서 저녁을 먹을까 하는데, 어때?"
“그래도 될까? 이번이 처음이지? 그동안 밖에서만 뵈었는데, 괜찮을까?”
지우가 ‘별일이야 있겠어?‘라고 말하며 일어나자,
나도 따라 일어났다.
요즘 겨울 추위는 추위도 아니라더니 날은 포근했다.
지우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야채마니 잡채‘를 만들려는지 장바구니 가득 장을 보았다.
요양병원 주차장에 도착하자, 그는 차 안에서 기다리라 하고 아버지를 모시러 갔다.
외박 절차는 언제나 복잡했고 오래 걸렸다.
한 시간 남짓 지나 지우는 아버지의 휠체어를 밀면서 왔다.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를 차 뒷좌석에 앉혀드리고 휠체어는 접어 트렁크에 실었다.
지우의 아버지는 거의 눈을 감고 앉은 자세 그대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꾹다문 지우의 입술과 부은듯한 하얀얼굴은 마치 울음보 터지기 직전 같았다.
지우의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도착했다.
이제부터는 지우와 내가 함께 아버지를 이동시켜야 했다.
지우가 먼저 내려 휠체어를 조립하고 아버지를 앉혀드렸다. 내가 휠체어를 밀고 엘리베이터로 이동하는 사이에 지우는 주차를 하고 돌아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기로 했다.
그전에는 대부분 나는 여기까지 하고 지우의 지하주차장문 앞에서 바이바이하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자 지우와 나는 아버지의 휠체어뒤에 나란히 섰다. 지우는 앞만 보고 있었다.
나는 그의 손을 지그시 잡았다.
그가 애써 미소지으며 나를 내려다 보았다
그의 손바닥에는 땀이 나 있었다.
나는 그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입술을 뾰족이 내밀어 키스를 날렸다.
그제야 지우의 얼굴에 긴장이 풀리는지 미소가 어리며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지우는 아버지를 휠체어에 태운 채로 집안으로 들어와 안방의 침대 위에 옮겨 눕게 하고 방문을 반쯤 열어놓고 나왔다.
그는 소파에 앉아있는 내 옆에 와 앉더니 한참을 기대어 가만히 있었다. 그는 울고 있었다.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며 얼굴을 내 어깨에 묻었다.
나는 그를 안고 등을 토닥거리며 쓰다듬어 주었다.
잠시 후 지우는 말짱한 얼굴이 되어 내 얼굴을 잡고 지긋이 입을 맞추더니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나 차에서 장바구니 가져올게, 좀 쉬고 있어.”
지우가 현관문을 열고 나가자, 나는 주방으로 가서 앞치마를 두르고 손을 씻었다.
어디에선가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이어,이어브어어? 나아 마아알 아안드어어, 어? 지우느은 와아써어?”
안방에서 발음이 뭉개져 못 알아들을 소리가 들려왔다.
내 심장이 쿵쾅거렸다. 몸이 바짝 긴장한 채로 안방으로 다가갔다.
열린 문 사이로 내가 보이자 지우의 아버지의 얼굴이 활짝 펴지는 게 눈에 그대로 보였다.
“오애에 이이제 와아아써어어?“
지우의 아버지는 나를 지우의 어머니로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안방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침대 발치에 앉아 지우의 아버지를 마주 보았다.
그는 당신 손을 내려다보더니 조금 얼굴을 찡그리는 듯하며 한참을 응시하더니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아때메 다아앙시니 히미드러히미드러, 미이아안해,이어어브, 미이아안해.”
나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나의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돌아가셨을까? 불현듯 나의 부모가 떠오르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지우의 아버지는 당신을 간병하다 돌아가신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어떻게 해서든 표현하고 있었다.
몸은 집을 기억한다.
안온함과 즐거움이 있던 공간을 기억한다.
지우의 아버지는 집안에 인기척이 나고 사람소리가 들리니 몸의 기억이 돌아오는 것이다.
가족들이 웃고 울고 이야기 나누고 자고 먹었던 그 공간에는 마음의 소리가 담아 있다.
그 공간에 머물면 함께 한 시간이 머물게 된다.
지우의 아버지는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이다.
이 집에서 만큼은 가족들과 함께 있었다.
지우가 장바구니를 안고 돌아와 나를 찾아 안방에 들어왔다. 나를 보고 입모양으로 말을 했다.
‘왜 안방에 있어? 아버지에게 무슨 일 있었어?‘
나는 지우 아버지에게 말했다.
“지우가 왔네요. 지우랑 맛있는 저녁 해드릴게 좀 쉬고 있어요. 네, 아셨죠?”
지우를 몸으로 안아 밀면서 거실로 나와 그를 꼭 안아주었다.
“내가 오늘은 지우엄마가 되어야 할 것 같네. 언제 이렇게 컸어, 우리 지우, 응, 엄마가 맛있는 거 해줄까아?”
그의 엉덩이를 두드리며 아기 얼르듯이 말했다.
지우는 자초지종을 듣고는 가만히 나를 안으며 “고마워, 고마워, 정선아, 고마워, 사랑해” 하며 속삭였다.
지우는 안방과 주방을 오가며 저녁식사 준비를 하면서 계속 종알거렸다.
그 또한 그의 몸의 기억에서 엄마를 소환하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휠체어에 앉아 식사를 하면서 내내 당신 아내 손을 놓지 않았다.
그 날 지우와 지우의 아버지는 나의 어린날의 상처를 치유해 주었다.
그것은 부지불식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한 사람, 그 다음 사람, 그리고 그 이전의 어떤 사람, 어떤 마음, 어떤 사랑이 이어지고 이어져 그 사랑이 내게로 흘러왔다.
그날 나는 사랑의 수혜를 입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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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림자놀이 2부를 마칩니다.
그림자놀이 3부는 2025. 9.15.부터
연재할 예정입니다.
한주는 쉬었다가 충전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