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봉인을 깨다
지우는 점점 달라져가는 미정의 모습이 반가웠다.
그녀가 처음 저녁식사를 권할 때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미정의 밝은 생기어림에 맞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미정의 남편 창규가 조금 어색한지 큼큼거리자, 어린 예솔이가 거들어 식탁의자를 빼주며 지우를 편안하게 식사에 합류하도록 해주었다. 지우는 미정이 편안해질수록 말과 행동이 조심스러웠다.
자신도 모르게 미정과 마주 보며 소리 내어 웃을 때는 문득 예전의 미정을 보는 것 같아 가슴속 깊은 곳에서 아련함이 올라오기도 했다.
어느 날, 미정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녀의 졸업식날 먼발치에서 그녀를 보았다.
곧이어 그녀의 결혼소식을 들었다.
그때, 자신의 몸속 어딘가에서 '쾅' 하는 굉음을 들었다.
그 당시, 그는 자신이 미정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무언가 몸속 어딘가에서 무너지는 소리를 느꼈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가슴만 먹먹할 뿐 그는 이제까지 해왔던 자신의 생활루틴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이 말이다.
대학 2학년 1학기가 끝날 무렵, 9월 군입대를 앞두고 실내악단동아리 단원들이 주최하여 환송회를 해주던 날이었다. 식사를 하며 술을 마시고 여느 때처럼 2차에서 또 술을 마시고 3차로 노래방을 가자는 회식 극성파들에 둘러싸여 끌려가던 중, 지우는 툭 튀어나온 보도블록에 걸려 넘어지면서 왼쪽 빰을 길바닥에 갈아버렸다.
피가 철철 흐르자, 놀란 일행은 약을 사 온다, 앰뷸런스를 부른다, 난리를 치는 중에 지우는 뜻하지 않게 눈물이 났다. 상처가 아팠다, 무척 아팠다. 지우는 그치지 않는 눈물과 함께 소리를 토해 내듯이 울었다.
그는 울면서 깨달았다.
미정이 너무 보고 싶었다는 것을.
그녀를 찾고 싶었다는 것을.
누군가 요도액으로 소독하고 약을 바르고 거즈에 반창고를 대어 상처를 가려 주었다.
쓰라렸다. 너무나 쓰라렸다.
지우는 길에서 벌떡 일어나 택시를 잡아타고 미정이 사는 아파트로 갔다.
그때 그녀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전에 살던 아파트 앞에 서서 불 꺼진 그녀의 창을 거의 매일 밤새도록 지켜보았다.
군입대를 하고 휴가를 받아 나올 때에도 매일 같이 그녀의 창을 바라보았다.
그는 학교로 돌아온 후, 여전히 실내악단의 메인 바이올린주자였다.
행여나 공연에 그녀가 한 번이라도 올까 기다렸다.
그녀의 동기들인 친구들은 몇몇 공연을 보러 오기는 했지만 그들에게 묻지 못했다.
그냥 우연히 보기를 원했다.
대학을 졸업하던 날, 지우는 미정을 잊기로 했다.
그녀와의 기억을 놓아주기로 했다.
그는 부모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아버지는 전 동업자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었고 엄마는 그런 남편을 말리다 말리다 지쳐가고 있었다.
지우는 그런 부모의 집이 경매에 넘어가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졸업할 무렵 엔지니어링 대기업에 취업했다.
월급여가 더 나오는 현장 지사로 발령이 날 기회가 되면 마다하지 않고 어디든 갔다.
지우는 성실하게 일했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자신의 바이올린 스승에게 레슨을 받았다.
기업에 들어간 지 3년이 되던 해, 미국 지사로 파견근무할 기회가 주어졌다. 연봉을 올리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가 미국에서 파견 근무하던 중, 길거리에서 노래하는 정선을 만났다.
그녀의 목소리는 약간의 쉰소리에 애절함을 담고 있었다.
그의 몸속 어딘가에 숨어있던 슬픔이 스멀스멀 올라 왔다.
마치 바이올린 현과 여러 가닥의 줄이 맞닿을 때 나는 소리처럼 그녀의 목소리는 애달팠다.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그의 가슴의 뭉치들이 소리를 타고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정선과 함께 광장에서 숲에서 길에서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그의 바이올린이 내는 처연한 소리는 지나가는 이들의 심금을 울렸고 행인의 발을 멈추게 했다.
지우는 미정의 그림자를 지우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대로 놔두었다.
생각나면 생각나는 대로, 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그들의 연주여행은 그들의 아픈 기억을 추억으로 남기는 그들만의 기록이 되었다.
아마추어였던 그들의 버스킹 영상은 여기저기에서 인터넷을 통해 온라인에 업로드되었다.
지우가 다니던 본사에서 '무슨 일이냐?'며 연락이 올 정도로 대중에게 먼저 알려지고 있었다.
3년간의 파견근무를 마치고 본사로 복귀한다는 소식이 어느 유튜버에 의해 알려지면서 여러 제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귀국해 보니 국내에서 오히려 반응이 뜨거웠다.
과거 대학 실내악단 공연시절까지 언급되었다.
음악계의 보수적인 분위기는 대중이 이해하는 클래식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의 존재는 이런 음악계의 시류를 타고 있었다.
그가 일반인이라는 것이 더 크게 부각되었고 그의 실력이 조명되기 시작했다.
작은 실내악단에서부터 여러 지인들을 통한 지자체 교향악단의 오디션 기회, 그리고 방송출연까지 쇄도했다.
그러나 그가 귀국하던 그해 겨울, 그의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병원비까지 그에게 떠 넘겨졌다.
도저히 회사를 그만둘 수 없었다. 어머니의 정성스러운 간호로 아버지의 병세는 호전되었으나,
3년간의 간병으로 고생하던 어머니는 어느 날 밤,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시고야 말았다.
아내를 잃은 그의 아버지는 밤낮없이 아내를 찾았다.
게다가 알츠하이머치매가 진행되고 있어 지우가 혼자 감당할 수가 없었다.
결국 요양병원으로 모실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때 마음을 굳혔다.
바이올린 주자로 살아가기로 했다.
가족을 위해 헌신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에 경의를 표하는 삶을 선택했다.
자신을 음악으로 이끌어준 부모님에 대한 보답은 바로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지우는 클래식 음악계의 중고신인이 되어 안산시향에서 프로 연주자로 데뷔하게 되었다.
그리고 몇몇 학생을 개인교습한다는 소식을 들은 다른 선배 소개로 미정을 학부모로 만났다.
15년 만에 미정의 소식을 들었다.
학생의 엄마로 그녀를 만나게 되었을때 묘한 설렘이 일었다.
"그녀를 만나게 되었어. 반가울 것 같아. 가슴도 뛰고.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녀는 나를 반가워할까? 여러 생각이 스치더라고. 나 이러는 거 정상이겠지?"
정선에게 말했다.
"그러겠네. 당신이 그리 그리 그리워한 여인인데 당연히 설레겠지?" 정선이 놀렸다.
"설렘까지야... 그래, 가슴이 뛰는 거보니 설렘인가 보네."
정선과 마주 보며 후후 웃었다.
미정은 뼈만 남은 듯 말라 있었다. 마음이 아팠다.
차마 그녀의 그런 상태를 정선에게 말하지 못했다.
마음 아파하는 그의 마음을 정선에게 말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예솔이 레슨은 한 주도 쉰 적이 없이 진행되었다.
아이의 바이올린 연주실력은 날로 발전했다.
바이올린을 배우기 싫어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이는 열심이었다.
그녀의 집에 일주일에 한 번, 또는 가끔 두 번 정도 레슨을 위해 드나들었다.
어느 날, 미정이 카페에서 차 한잔하며 말했다.
"미안해요. 제가 김정선 선생님에게 상담받는다는 말을 못 했네요. 처음엔 정신이 없었고 나중엔 타이밍을 놓쳤고요. 상담이 진행될수록 제 자신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예솔이 레슨시간이 조금씩 길어지자 30분 일찍 집에 도착하던 어느 날, 그녀는 저녁식사를 권했다.
지우는 자연스럽게 그 식사에 응했다.
그녀는 생기어린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그 앞에 훅 다가왔다.
'그녀는 얼마나 나에게 다정한 사람이었는가.'
가슴이 '툭'소리를 내며 봉인된 무엇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예전의 그녀가 돌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