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T 1
(내레이션, 어두운 새벽)
“사람의 마음은 정리되지 않은 감정의 파편들이 흩어진 채로도 멀쩡하게 살아간다. 아니, 살아지는지도 모른다. 윤서는 지금, 그런 상태다.”
(장면: 새벽 4시, 윤서의 방. 흐릿한 불빛 아래서 침대에 누운 윤서가 잠을 설치고 있다. 뒷베개는 어지럽게 구겨져 있고, 이불은 발목 쪽에서 말려 있다. 그녀의 표정은 불안하다.)
(플래시백: 아이 울음소리, 남편과 싸우던 장면의 단편적인 이미지들. 짧고 날카로운 파편처럼 흘러간다. 화면은 흐릿하게 깜빡이며 그녀의 뇌리를 스친다.)
윤서 (잠꼬대처럼) : "아니야... 그게 아니었는데..."
(정적. 그리고 갑작스러운 소리. 냉장고의 컴프레서가 돌아가는 소리, 혹은 바람이 창문에 스치는 소리. 윤서는 깜짝 놀라 눈을 뜬다. 얼굴에 식은땀이 맺혀 있다.)
윤서 (속마음) : "괜찮아. 그냥 꿈이었어. 꿈...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무겁지? 나는, 이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윤서는 천장을 바라본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는다. 그 침묵이 몇 초인지 몇 분인지 알 수 없다. 카메라는 그녀의 눈동자를 클로즈업한다. 마치 그녀의 내면에 들어가는 듯.)
(내레이션) “마음은 기억보다 똑똑해서, 몸이 멈췄다고 마음까지 괜찮아지는 건 아니라고 속삭인다.”
(장면 전환: 시곗바늘이 천천히 새벽 5시로 넘어간다. 윤서는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머리카락은 흐트러졌고, 눈동자는 초점 없이 공허하다.)
윤서: "준이 깨기 전에... 조금만 더 자야지. 오늘도 괜찮은 척, 잘 버텨야 하니까."
(카메라는 천천히 그녀의 등을 비추며 멀어진다. 창밖으로는 도시의 새벽이 아주 느리게 밝아오고 있다. 윤서가 다시 이불을 덮는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잠들지 못한 채다.)
(화면 천천히 암전.)
CUT 2
(장면: 아파트 거실. 커튼 사이로 새벽 햇살이 희미하게 스며든다. 시계는 6시 20분. 윤서는 얕은 잠에 빠져 있다. 하지만 표정은 여전히 편하지 않다. 그녀는 뒤척이다가 다시 눈을 뜬다.)
윤서 (혼잣말): "또 깨버렸네... 왜 이러지 정말..."
(속마음) : "괜찮은 줄 알았는데. 그냥 흔한 스트레스인 줄 알았는데. 요즘은 내가 누구인지조차 잘 모르겠어."
(플래시백: 병원 복도에서 걷는 자신의 뒷모습. 누군가의 진료실 앞에서 문을 열고 들어가려다 멈춰 선 모습. 잠시 멈췄다가 돌아서는 모습. 그 순간, 아이의 웃음소리와 울음소리가 동시에 겹쳐진다.)
(현실로 돌아오며, 윤서의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그녀는 손등으로 재빨리 닦는다. 주방 쪽에서 희미한 소리가 난다. 준이의 방문이 열리는 소리다.)
윤서: "준이... 일어났어?"
준이 (작은 목소리로) : "응... 엄마... 나 오늘 학교 가기 싫어."
(윤서는 이불을 정리하고 급히 거실로 나간다. 준이는 거실 구석에서 자기 팔을 긁고 있다. 팔 안쪽이 붉게 부어 있다.)
윤서 (놀란 눈빛으로 다가가며): "아이고... 준이야, 또 긁었구나. 아토피가 더 심해졌네."
준이: "어제도 잠을 잘 못 잤어. 꿈에서... 무서운 게 나왔어."
윤서 (살짝 얼어붙은 얼굴로) : "꿈에? 무서운 거라니..."
준이: "아빠가 나를 안 데려간다고... 엄마가 또 혼자 울고 있었어. 그걸 보고 있었어."
(윤서는 말문이 막힌다. 아이의 꿈속에서 자신이 여전히 울고 있었다는 말에, 숨이 멎는 듯하다.)
윤서 (속마음): "아이의 꿈조차 나를 안아주지 못한다. 내가 이 아이에게 안정을 주기는커녕..."
(윤서는 준이의 팔을 조심스럽게 문지른다.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준다.)
윤서: "우리 준이, 엄마가 오늘 학교 끝나고 맛있는 거 사줄게. 네가 좋아하는 치킨 어때?"
준이 (미소 지으며): "응. 그럼 힘내서 다녀올게."
(윤서는 억지로 웃으며 준이를 배웅한다. 문이 닫힌 후, 다시 거실에 멍하니 서 있다.)
(내레이션) "마음의 아픔은 말로 꺼내기 어려운 법이다. 그것이 어린아이 든, 어른이든, 상처는 서로를 감싸며 또 하나의 그림자를 만든다."
CUT 3
(장면: 윤서의 작은 부엌. 커피포트가 물을 끓이는 소리. 윤서는 조용히 식탁에 앉아 있다. 창문 밖은 완전히 아침이다. 해가 비추지만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그림자 속에 있다.)
(속마음) : "이대로는 안 되겠지. 무기력, 불면, 불안. 하나하나 나를 집어삼키고 있어. 내 마음의 스위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윤서는 메모지에 뭔가를 적는다. '심리상담', '정리정돈', '자기 돌봄', '하루 계획표'. 하지만 곧 펜을 내려놓는다.)
윤서: "말은 쉽지... 이걸 다 할 수 있을까."
(그녀는 자신의 손을 바라본다. 거칠어진 손등, 물 마를 틈 없는 손톱 주변. 고된 생활의 흔적이 묻어 있다.)
(잠시 후, 커피포트가 멈추고 그녀는 일어나 커피를 따른다. 뜨거운 커피 향이 방 안을 감싸지만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멍하다.)
(윤서는 TV를 켠다. 아침 뉴스가 나오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오직 화면 속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일 뿐.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리모컨을 다시 내려놓는다.)
윤서 (혼잣말) : "나만 멈춰 있는 기분이야. 모두는 앞으로 가는데... 난... 왜 이 자리에..."
(내레이션) "정리되지 않은 마음은 흐트러진 하루로 이어진다. 시작은 있지만 방향은 없고, 계획은 있지만 실행은 없다. 그리고 다시 스스로를 탓하게 된다."
(장면: 윤서는 다시 메모지 앞에 앉는다. 이번엔 메모지를 찢지 않고 조용히 다이어리 안에 넣는다.)
윤서: "그래. 하루에 하나씩만. 아주 작은 거 하나씩이라도."
(카메라는 그녀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피곤하지만 살짝 굳은 결의가 깃든 표정.)
[CUT 4]
INT. 윤서의 집 – 낮
윤서가 혼자 있는 거실. 정리되지 않은 박스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윤서는 가만히 소파에 앉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본다. 창밖은 평온한 일상처럼 보이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어딘가 먼 곳에 머물러 있다.
윤서(내레이션)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봐.
괜찮다고, 이제 그만 울자고, 나 자신을 달래 왔는데
아직도 마음이 자꾸 잠에 숨으려 해.
그녀는 갑자기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오며 잠에 빠져든다. 카메라는 윤서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깊은 숨소리가 들리고 화면이 서서히 어두워진다.
DREAM SEQUENCE – 윤서의 꿈속
윤서는 어린 시절의 자신으로 돌아가 있다. 좁은 방, 흐릿한 빛. 어딘가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녀는 그 소리를 따라간다. 엄마가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돌고 돌아도 엄마는 없다. 윤서는 멍하니 서 있다가, 갑자기 창문 너머에서 누군가 그녀를 부른다.
어린 윤서(꿈속)
엄마? 어디 있어…?
누군가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쿵쿵. 쿵쿵. 그 소리에 윤서가 깜짝 놀라 눈을 뜬다.
INT. 윤서의 집 – 낮
눈을 뜬 윤서. 잠깐 꿈에서 깬 듯한 표정.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창밖의 햇살은 여전히 고요하지만, 윤서의 얼굴은 불안정하다.
윤서(혼잣말)
아직도… 나는 그때 그 방에 있네.
왜 이렇게 잠만 자고 싶을까. 자꾸 꿈으로 숨고 싶어.
그녀는 핸드폰을 들어 확인해 보지만, 아무 메시지도 없다. 다시 내려놓고, 눈을 감는다. 다시 깊은 숨소리.
[CUT 5]
INT. 준이의 방 – 밤
준이는 침대에 누워 있다.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긁고 있다. 팔, 목, 다리. 아토피가 심해진 부위가 붉게 부어 있다. 방 안의 조명은 어두운 무드등 하나뿐이다. 준이의 숨소리가 점점 가빠진다.
준이(혼잣말)
간지러워… 또 간지러워…
그는 손톱으로 긁다가 멈춘다. 울음을 참으려 애쓰지만, 눈물이 한 방울 뺨을 타고 흐른다. 갑자기 어두운 방 안에서 무언가 소리가 들린다.
?? (속삭임)
너는 못 해. 넌 부족해.
준이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뜬다. 천장을 쳐다보며 숨을 가쁘게 내쉰다. 방 안에 아무도 없지만, 그 목소리는 그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자책이다.
준이(혼잣말)
아니야. 나 잘하고 있어. 학교도… 숙제도… 엄마 걱정도 안 하게 하려고…
하지만 계속 반복되는 소리에 그는 두 귀를 막는다.
?? (속삭임)
그래도 부족해. 너 때문에 엄마가 힘들잖아.
준이는 눈을 꼭 감고 몸을 웅크린다. 그러다 잠에 빠진다. 이마에는 땀이 맺혀 있다.
DREAM SEQUENCE – 준이의 꿈속
학교 복도. 불이 깜빡거린다. 친구들은 웃고 있지만, 준이는 혼자다. 손에 들고 있던 시험지가 바람에 날아간다. 모두가 그를 외면한다. 그의 손에 쓰여 있는 글자.
'실패자'
준이는 숨을 몰아쉰다. 뛴다. 도망치듯 복도를 달린다. 복도 끝에는 문이 하나. 가까워질수록 문은 점점 작아진다. 결국 그는 들어갈 수 없다. 문은 닫히고, 그는 그 앞에 주저앉는다.
준이(꿈속, 중얼)
안 돼… 또 실패야…
그 순간 누군가 그의 어깨를 톡 건드린다. 돌아보면 아무도 없다. 하지만 등 뒤에서 따뜻한 빛이 퍼지기 시작한다.
INT. 준이의 방 – 새벽
준이는 벌떡 일어난다. 숨이 가쁘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침대에서 앉은 채로 주변을 살핀다. 여전히 어두운 방.
준이(혼잣말)
또야… 또 그 꿈…
그는 물을 마시기 위해 조심스럽게 방을 나선다.
CUT 6. 새벽녘, 윤서의 침실 — 무의식의 침잠
장면 설명:
새벽. 창밖은 희미하게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지만, 윤서의 방은 여전히 어둡다. 윤서는 얕은 숨소리와 함께 뒤척이며 깊은 잠에 들지 못한 채 계속 꿈속에서 무언가를 따라간다. 꿈속에서 윤서는 잃어버린 과거의 자신을 따라가며, 어릴 적 자신이 되기도 하고, 젊은 시절 어머니의 빈자리를 원망하기도 한다. 무의식 깊숙한 곳에서 부유하는 이미지들, 눈빛, 소리들이 반복된다.
윤서의 몽중 내레이션 (속마음):
“괜찮다고 생각했어. 다 지난 일이라고. 시간도 흘렀고, 엄마 없이도 살아왔으니까. 근데 왜 자꾸 꿈에서까지 엄마를 찾고 있는 걸까…”
꿈 장면:
어릴 적 윤서가 길을 잃은 아이처럼 낯선 골목을 배회하고 있다. 골목 구석 어딘가에서 “윤서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지만, 그 목소리는 늘 멀리 있고, 손을 뻗으면 닿지 않는다. 골목 어귀마다 어린 윤서를 지켜보는 존재들이 있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다. 누군가를 붙잡아 보지만, 팔을 뻗는 순간 손이 사라진다.
몽중 윤서 대사 (공포와 슬픔):
“가지 마… 제발, 이번엔… 그냥 안아줘… 나 혼자 아니라고… 누군가… 누군가만 내 편이어도 됐어…”
현실로 돌아오는 전환:
깊은숨을 몰아쉬며 윤서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다. 땀에 젖은 이마, 식은땀에 헝클어진 머리카락. 그녀는 한참 동안 현실과 꿈의 경계를 인지하지 못한 채, 숨을 가다듬으며 허공을 바라본다.
윤서의 혼잣말:
“… 또야. 똑같은 꿈. 몇 번째인지 모르겠어. 진짜 괜찮은 게 맞는 걸까?”
CUT 7. 아침, 준이의 방 — 감정의 누적과 첫 폭발
장면 설명:
아침 7시. 윤서가 간신히 일어나 부엌에서 아침 준비를 하는 동안, 준이는 자신의 방에서 한껏 울음을 참고 있다. 침대 옆엔 긁어서 피가 묻은 이불과, 손톱 밑에 붉은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알람 소리에 깼지만 눈에는 피곤함과 울컥함이 가득하다.
준이는 거울을 보며, 자기 팔뚝에 난 붉은 발진들을 확인한다. 잠결에 또 긁은 흔적. 그는 스스로에게 화가 난 듯 인상을 찌푸린다.
준이 혼잣말:
“이게 뭐야… 또? 왜 자꾸 긁는 거야… 이러다 또 병원 가야 하잖아… 싫은데…”
장면 전개:
준이는 욕실로 가서 찬물로 얼굴을 씻고, 아토피 연고를 손에 짜서 바르려 하지만, 무언가에 눌린 듯 멈춰버린다. 연고를 쥔 채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깊은숨을 쉰다. 그러다 갑자기 거울을 탁, 치고 말한다.
준이 대사 (감정의 폭발):
“왜 나만 이래! 왜 나만 힘들어야 되는데! 학교도, 친구도, 엄마도… 다 나 몰라라잖아!!”
윤서의 반응:
부엌에서 소리를 들은 윤서가 놀라며 달려온다. 준이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푹 숙인다. 윤서는 말없이 아들의 등을 가만히 쓰다듬으며 앉는다.
윤서 대사 (조심스럽고도 따뜻하게):
“… 많이 가려웠어? 밤에 또 꿈꿨어?”
준이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눈물이 떨어진다. 윤서는 아들의 손을 감싸 쥐며 말한다.
윤서:
“준아, 엄마가 요즘 잘 못 챙겨줘서 미안해. 근데… 우리, 서로 진짜 마음 이야기 한번 해볼까? 엄마도 사실… 혼자서 괜찮은 척하느라, 좀 힘들었거든.”
CUT 8
[장면: 새벽, 윤서의 방. 창밖으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들어온다. 침대 위 윤서가 조용히 눈을 감고 누워 있다. 뺨 위로 식지 않은 눈물 자국이 남아 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가슴 위에 올려놓고 있다.]
(내레이션) 윤서 (내면의 목소리): "왜 이렇게 잠이 안 올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루를 보내고 나면, 밤이 너무 길어. 마치 끝이 없는 터널처럼."
[카메라는 천천히 윤서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깊은 꿈 속으로 빠져든다. 장면 전환 - 꿈속]
[장면: 어린 윤서. 어린아이처럼 방 한가운데 서 있다. 사방이 뿌옇게 흐려지고, 누군가의 실루엣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실루엣은 엄마의 모습. 하지만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어린 윤서): "엄마... 나 여기 있어... 엄마... 나 좀 봐줘..."
[엄마의 실루엣은 점점 멀어진다. 윤서는 그 뒤를 쫓아가지만, 발이 바닥에 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비명조차 삼켜지는 듯한 침묵 속, 윤서의 표정엔 절박함과 공포가 뒤섞여 있다.]
(내레이션) 윤서 (내면의 목소리): "나는... 괜찮은 줄 알았는데. 이게 뭐지. 왜 또 이런 꿈을 꾸는 거야."
[장면 전환 - 현실. 윤서 침대 위. 갑작스럽게 눈을 뜨며 숨을 헐떡인다. 손은 여전히 가슴 위에, 얼굴은 식은땀으로 젖어 있다. 창밖은 여전히 어둡다. 그녀는 손을 내밀어 탁자 위 보리차 컵을 움켜쥐며 그 안에서 위로를 찾으려 한다.]
CUT 9
[장면: 다음 날 아침. 부엌. 윤서는 멍한 표정으로 토스트를 굽고 있다. 준이는 옆에서 아토피 때문에 팔을 긁적이며 어깨를 움츠린 채 앉아 있다. 그의 눈 밑엔 다크서클이 짙다.]
윤서: "준아, 어제는 좀 괜찮았어? 잠 잘 잤어?"
준이 (작게): "... 무서운 꿈 꿨어. 또 무너지는 꿈... 내가 뭘 해야 하는데, 아무도 안 도와줘서... 무서웠어."
윤서 (표정 굳으며): "그래서... 그렇게 긁었구나. 아침부터 간지러웠지. 엄마가 로션 발라줄게."
[윤서가 부드럽게 로션을 짜서 아들의 팔에 바른다. 그녀의 눈엔 슬픔과 미안함이 가득하다.]
(내레이션) 윤서 (내면의 목소리): "아이도 힘든 걸, 난 몰랐다. 아이가 나보다 먼저 버티고 있었다. 미안해, 준아... 엄마가 더 잘 볼게."
[준이는 묵묵히 엄마의 손길을 받으며 눈을 깜빡인다. 아주 작게 미소 짓는다.]
CUT 10
[장면: 오전. 윤서가 집 앞 작은 공원 벤치에 앉아 있다. 머리엔 모자, 무릎 위엔 접힌 신문. 멍하니 떨어지는 나뭇잎을 바라보고 있다.]
[주변은 평온하지만 윤서의 머릿속은 어지럽다. 불현듯 스마트폰을 꺼내 지난날 남편과의 사진, 아이들과의 가족사진, 그리고 엄마의 어릴 적 흑백사진을 넘겨본다.]
(윤서 내면의 목소리): "엄마... 왜 그랬어. 왜 말 한마디 없이 떠났어. 내가 뭐라도 잘못했나... 그날 이후로 모든 게 뒤엉켰어. 나도... 내가 뭔지 모르겠어."
[윤서는 눈을 질끈 감는다. 그 순간, 새가 날아올라 그녀 머리 위로 지저귀며 지나간다. 그녀는 놀라 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본다.]
윤서 (혼잣말): "이제... 진짜 정리해야 하나. 엄마 없이도, 나 혼자서도, 살아가야 하는 법을..."
CUT 11
윤서의 꿈속, 깊은 바닷속] 깊고 푸른 바닷속. 윤서는 물속을 유영하듯 떠다닌다. 손에는 무언가를 꼭 쥐고 있다. 그것은 작고 낡은 오르골.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그녀의 표정은 오르골의 멜로디를 따라가는 듯 고요하다. 주변은 차가운 침묵 속이지만, 그녀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때, 바닷속 아래에서 무언가가 윤서를 향해 천천히 떠오른다. 어릴 적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윤서야, 무섭니?" 윤서는 고개를 젓는다. "아니, 무서운 건 그때였어. 지금은... 그냥 슬퍼."
꿈속의 윤서는 울지 않는다. 하지만 뺨을 타고 흐르는 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방울들이 부유하며 그녀를 감싼다. 그녀는 오르골을 가슴에 꼭 안고 눈을 감는다. 빛이 퍼지며 그녀의 몸이 물속에서 천천히 떠오른다.
CUT 12
아침, 윤서 침대 위] 윤서는 갑자기 눈을 뜬다. 숨을 몰아쉬며, 어젯밤의 꿈을 되짚는다. 머리를 감싸 쥐고 앉아 있다가 문득 시계를 본다. 오전 6시 10분. 어제보다 20분이나 먼저 일어났다. 그녀의 표정엔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지나간다. 가슴에 손을 얹고 숨을 내쉰다.
윤서 (속으로) “나, 정말 괜찮은 걸까?”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거울 앞에 선다. 거울 속 윤서는 어딘가 조금 달라 보인다. 어제보다 눈이 조금 더 맑다. 침대 맡에는 어젯밤에 들춰본 사진첩이 놓여 있다.
CUT 13
아침, 부엌 식탁] 윤서는 정성스레 아침을 차린다. 오늘은 어묵국과 달걀말이, 그리고 잡곡밥이다. 언제부터였을까. 이렇게 ‘제대로’ 아침을 차리는 게 몇 달 만이다. 준이가 나온다. 얼굴엔 어젯밤 울던 자국이 남아 있다.
윤서 “준아, 오늘 아침은 따뜻한 국 있어. 먹어보고 말해줘.”
준이 (작게) “고마워요… 엄마.”
둘은 말없이 식사를 시작한다. 어색하지만, 조용히 흘러가는 따뜻한 시간. 준이는 몇 숟갈 먹더니 고개를 든다.
준이 “엄마, 오늘 도서관 같이 가요. 나 숙제할 거 있어.”
윤서는 놀란 듯한 눈빛으로 아들을 바라본다. 그러나 곧 미소 짓는다.
윤서 “그래, 우리 같이 가자.”
CUT 14. 새벽의 윤서, 낯선 공허와 마주 서다
INT. 윤서의 방 – 새벽
(윤서가 침대에서 일어난다. 창문 틈 사이로 희미한 새벽빛이 스며든다. 눈을 감았다가 떴다를 반복하던 윤서는 이내 깊은숨을 내쉰다. 작은 탁자 위에 있던 일기장을 펼쳐 글을 쓰기 시작한다. 펜 끝이 종이를 긁는 소리만이 조용한 새벽을 깬다.)
윤서 (혼잣말처럼)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구나…”
(잠시 멈춘다.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창밖에서 고요하게 흐르는 새벽 공기가 창 안으로 스며든다. 윤서는 문득 거울을 바라본다. 수척해진 얼굴.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미소를 지어본다.)
윤서 “그냥… 견디는 중이었지. 사는 게 아니라.”
(카메라가 윤서의 손끝으로 천천히 이동한다. 마치 무언가를 쥐고 있었던 듯, 긴장감이 남아있다. 이내 손을 펴고 무릎 위에 올려놓는다. 눈가가 젖는다.)
회상 몽타주 – 플래시백
(과거의 장면들이 단편적으로 스쳐 지나간다. 병원 복도에서의 기다림, 준이를 처음 안았을 때, 헤어진 전남편의 무심한 뒷모습, 자신의 울음을 참으며 아이에게 웃던 순간들…)
윤서 (속마음 내레이션) “이 모든 걸 지나왔는데도… 왜 아직도 나는 이기적이라는 죄책감 속에 서 있는 걸까.”
(윤서는 일기장에 다시 펜을 든다. 이번에는 또박또박 쓴다.)
윤서 (일기 내용) “괜찮다는 말보다, 나 오늘은 무너져도 돼.라는 말이 나를 살릴지도 몰라.”
(문득 휴대폰 알림이 뜬다. ‘오늘은 준이 심리상담 있는 날’. 윤서는 그 알림을 멍하니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윤서 (결의에 찬 듯) “그래. 이제 나도, 정리 좀 해볼까…”
(카메라가 윤서의 뒷모습을 잡으며 서서히 줌아웃. 작은 창 밖으로 날이 밝아온다.)
[CUT 15. 아들의 꿈, 엄마의 눈물]
INT. 준이의 방 – 이른 아침
(어스름한 아침 햇살이 커튼 사이로 스며든다. 준이는 이불을 움켜쥔 채 몸을 뒤척이고 있다.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고, 입술은 파르르 떨린다. 악몽을 꾸고 있는 듯하다.)
준이 (잠꼬대) “엄마… 가지 마… 가지 말라고…!”
(갑자기 몸을 움찔하며 벌떡 일어난다.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다. 방 안은 고요하지만, 준이의 호흡은 가쁘다. 이내 울음을 터뜨린다.)
INT. 윤서의 방 – 같은 시각
(윤서가 이상한 기운을 느낀 듯 벌떡 일어난다. 무언가 끌어당기는 불안한 느낌에 재빨리 준이의 방으로 달려간다.)
INT. 준이의 방 – 연속
(윤서가 문을 열자마자 준이와 눈이 마주친다. 아이는 눈물을 꾹 참고 있지만, 금세 허물어질 듯 위태롭다.)
윤서 “준아… 괜찮아? 무슨 꿈꿨어?”
(준이가 대답 대신 윤서에게 달려들어 안긴다. 아이는 작게 떨고 있다. 윤서는 아이의 뒷머리를 감싸 안고 눈을 감는다. 준이의 손끝엔 아토피로 긁힌 자국들이 짙게 남아 있다.)
준이 (울먹이며) “엄마가 사라졌어… 꿈에서… 나 혼자였어…”
(윤서의 눈가도 붉어진다. 아이의 어깨를 토닥이며 조용히 말한다.)
윤서 “엄마 여기 있어. 절대 안 사라져. 꿈일 뿐이야, 꿈…”
(카메라는 윤서의 눈물 맺힌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잠시 정적이 흐른다.)
윤서 (속마음 내레이션) “이 아이도 나처럼… 괜찮다고만 생각하며 견디고 있었구나.”
(윤서는 살며시 아이의 팔을 걷어 아토피 상처를 들여다본다. 붉게 부어오른 피부 위로 긁힌 자국이 깊다. 그 상처를 보며 윤서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죄책감, 슬픔, 그리고 결심이 동시에 비친다.)
윤서 “오늘 병원 같이 가자. 선생님이랑 얘기 좀 해보자. 엄마도 같이 있을게.”
(준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두 사람은 서로를 꼭 안은 채 잠시 그 자리에 머문다.)
CUT OUT – 카메라가 두 사람의 등을 비추며 천천히 물러난다. 그 위로 나직한 음악이 흐른다.
[CUT 16. 유리잔 같은 마음]
INT. 병원 대기실 – 오전
(조용하고 차분한 병원 대기실. 하얀 벽과 깔끔한 조명 아래 윤서와 준이가 나란히 앉아 있다. 준이는 팔을 긁지 않으려고 애쓰는 듯 손을 꽉 쥐고 있고, 윤서는 손가락으로 준이의 손등을 천천히 어루만지고 있다.)
(한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자, 준이의 어깨가 움찔거린다. 윤서는 그 조그마한 반응에도 곧바로 준이의 손을 꽉 잡는다.)
윤서 (부드럽게) “많이 간지러워?”
준이 (작은 목소리로) “…응. 참아볼게.”
(윤서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어둡다. 하지만 어젯밤 그 순간 이후, 그녀의 태도엔 작지만 단단한 다짐이 묻어난다.)
윤서 (속마음 내레이션) “이 아이가 깨우쳐 줬어. 내가 붙잡고 있는 ‘괜찮음’이라는 말이 얼마나 얇고 위태로운 유리잔 같은지…”
(과거 장면이 겹쳐진다. 윤서가 한밤중에 혼자 거실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이력서를 다시 열어본다. 스펙, 경력, 공백… 커서만 깜빡이는 화면 앞에서 한숨만 푹 쉬던 모습.)
(병원 내부의 공지문이 비춘다: “마음상담 클리닉 운영 시간 안내.” 윤서가 그 앞에 멈춰 선다. 갑작스레 눈길이 멈추고, 한참 동안 그 안내문을 응시한다.)
윤서 (속으로)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안고 얼마나 오래 걸었을까. 이젠 조금 내려놓아도 괜찮을까…?”
(간호사가 다가와 이름을 부른다.)
간호사 “조준이 어머님,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INT. 진료실 – 연속
(소아과 전문의가 준이의 피부 상태를 살핀다. 의사는 조심스럽지만 단호한 어조로 말한다.)
의사 “아토피 자체도 문제지만, 준이처럼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예민할 때 이런 식으로 증상이 심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윤서 “스트레스요…? 요즘 아이가 조금… 잠도 잘 못 자고, 무서운 꿈도 자주 꾸더라고요.”
의사 “그렇다면 심리적 원인을 함께 다뤄보는 게 좋겠습니다. 아이가 일시적으로 겉으론 괜찮아 보여도 속에서 싸우고 있을 수 있어요.”
(윤서의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그 말이 꼭 자신에게도 하는 말처럼 들린다.)
윤서 (속마음 내레이션) “그래. 나도 그랬으니까… 이 아이를 도우려면 나부터 먼저 정리되어야 해.”
(의사는 아이에게 천천히 이야기한다.)
의사 “준이야, 우리 몸도 마음도 다 연결되어 있단다. 간지러운 건 잘못이 아니야. 참느라 얼마나 힘들었지?”
(준이는 쑥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인다. 윤서는 아이의 눈동자 안에서 작은 용기를 본다.)
CUT OUT – 윤서가 준이의 등을 토닥이며 진료실을 나선다. 복도 끝에서 카메라가 멀어지며, 그녀의 마음속 다짐이 내레이션으로 이어진다.
윤서 (내레이션) “흩어졌던 조각들이 하나씩 맞춰진다. 이제, 이 아이를 위해서라도, 내 마음부터 들여다보자…”
[CUT 17. 감춰둔 일기장 속 문장들]
INT. 윤서의 방 – 늦은 오후
(햇살이 커튼 사이로 길게 내려와 책상 위를 비추고 있다. 윤서는 병원에서 돌아온 후,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온다. 준이는 옆방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듯, 집 안은 고요하다.)
(윤서는 책상 앞에 앉는다. 서랍을 열어 깊숙이 밀어 넣었던 작은 노트 한 권을 꺼낸다. 낡은 가죽 커버에 먼지가 살짝 앉아 있다. 조심스레 펼치자, 그녀의 손끝이 오래된 페이지를 스친다.)
윤서 (속마음 내레이션)
“이 노트… 이사 온 날 박스 밑에서 꺼내놓고 그대로 묻어버렸었지. 그날의 감정들이 너무 생생해서, 다시 꺼내볼 자신이 없었는데…”
(노트 속 글씨는 정돈되어 있지만 문장 하나하나에 감정이 배어 있다.
'나만 혼자인 것 같아.'
'엄마가 보고 싶어.'
'나는 이제 어떤 꿈을 꿔야 하지?'
'준이를 지키고 싶다. 어떻게든.')
(윤서는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며 조용히 눈물을 닦는다. 그녀는 자신이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를 마주하는 중이다.)
윤서 (속말)
“지워지지 않는 말들이구나… 그래도 여기까지 왔네. 나 참 잘 버텼어.”
(페이지를 넘기다, 중간에 끼워진 오래된 사진 한 장이 나온다. 대학 시절, 환하게 웃으며 친구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윤서. 지금과는 다른 얼굴.)
(그녀는 사진을 들여다보며 자신에게 말을 건넨다.)
윤서
“그때 넌 그렇게 웃을 수 있었구나. 그게 진짜 너였을지도 몰라.”
(윤서는 노트의 빈 페이지를 펼친다. 펜을 집어 들고 오랜만에 무언가를 써 내려간다.)
(카메라는 그녀의 손등과 펜촉을 따라간다. 펜 끝에서 느릿하게 적히는 글자들.)
‘2025년 5월 23일.
정리되지 않은 마음.
그 마음을 오늘 처음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괜찮다고 말해줬다.
이제, 아주 천천히라도 다시 나를 꺼내보자.’
(윤서는 펜을 내려놓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울지는 않지만 오랜 긴장이 풀린 듯, 숨이 길게 터져 나온다. 창밖에서 아이들이 노는 소리가 들려온다.)
윤서 (속마음 내레이션)
“이제는… 정리하지 않아도, 그냥 그대로 두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녀는 노트를 덮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향한다. 식탁 위에는 밀린 설거지가 그대로 있고, 윤서는 물을 틀어 정성스럽게 그릇을 하나하나 닦아낸다.)
(그릇에 묻은 기름때가 말끔히 지워지고, 유리컵에 햇살이 반짝인다.)
윤서 (내레이션)
“조금씩, 하나씩, 다시 시작하는 거야.”
[CUT 18. 준이의 작은 세계]
INT. 준이의 방 – 저녁 무렵
(카메라는 조용히 준이의 방 문을 스쳐 들어간다. 작고 아늑한 방, 곳곳에 아이의 손길이 느껴진다. 책상 위엔 유치원에서 받은 칭찬 스티커와 공룡 그림이 붙어 있고, 침대 옆 작은 선반에는 자그마한 공룡 인형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준이는 바닥에 엎드려 그림을 그리고 있다. 색연필을 하나씩 고르며 집중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묘사한다. 초록색, 파란색, 빨간색이 어지럽게 흩어지며, 한 마리의 큰 공룡이 완성된다.)
준이 (혼잣말)
“이건 아빠공룡… 그리고 옆에 있는 건… 준이공룡.”
(그는 잠시 펜을 멈추고, 두 공룡 사이에 하트 모양을 그린다. 작고 삐뚤한 하트. 그리고 뭔가 망설이더니 구석에 아주 작게 ‘엄마’라고 적는다.)
(바로 그때, 피부를 긁는 소리가 작게 들린다. 준이는 왼쪽 팔꿈치를 벅벅 긁는다. 붉게 부어오른 아토피 자국이 보인다. 준이는 익숙하다는 듯 손으로 누르며 그림 그리기를 멈춘다.)
준이 (속삭이며)
“가려워… 그래도 조금만 더 하고 자야지…”
(그는 그림을 한 장 접어 베개 밑에 넣는다. 그 밑에는 이미 여러 장의 그림이 숨겨져 있다. 대부분이 공룡과 자신, 엄마, 그리고 어떤 날은 유치원에서 혼자 있는 모습이다.)
(준이는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덮고 눈을 감는다. 조명이 천천히 어두워지며 시간이 흐른다.)
INT. 준이의 꿈속 – 몽환적 공간
(화면이 어스름하게 번지며 준이의 꿈속이 나타난다. 그는 커다란 어둠 속에 홀로 서 있다. 멀리서 무언가 다가오는 소리, 쿵… 쿵… 쿵…)
(어린 준이의 얼굴에 공포가 스친다. 그는 이리저리 도망치려 하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 땅이 흔들리고 커다란 그림자가 그를 향해 다가온다. 갑자기 공룡의 포효와 함께 꿈속의 배경이 무너진다.)
준이 (꿈속에서)
“엄마!!!”
(준이는 이불속에서 벌떡 일어나며 울음을 터뜨린다. 땀이 얼굴을 흥건히 적시고, 손으로는 계속 팔을 긁는다. 윤서가 놀라서 방문을 연다.)
INT. 준이의 방 – 현실
윤서
“준이야! 괜찮아? 무서운 꿈 꿨어?”
(윤서가 다가가 아이를 품에 안는다. 준이는 울음을 터뜨리며 그녀 품에 파고든다.)
준이
“엄마… 공룡이… 무서운 공룡이 나 쫓아왔어…”
(윤서는 아이의 등을 다독인다. 아이의 등을 문지르는 손이 약간 떨린다.)
윤서 (속마음 내레이션)
“내가 얼마나 오래 아이를 혼자 두었던 걸까… 준이는 나보다 훨씬 더 깊은 밤을 건너고 있었는데…”
(조용히 흐르던 윤서의 눈물 한 줄기가 볼을 타고 흐른다. 그녀는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윤서
“괜찮아. 엄마가 있잖아. 이제 절대 혼자 두지 않을게.”
(준이는 그녀의 품에서 눈을 감는다. 화면은 점점 어두워지고, 창밖에서 별빛이 스며든다.)
윤서 (내레이션)
“작은 세계 속에서 나름의 질서를 지키며 버텨낸 아이.
이제 그 아이의 세계에 내가 들어가야겠다.
아이의 마음은, 기다릴 줄 안다.”
[CUT 19. 고요한 밤, 흐르는 꿈의 조각들]
INT. 윤서의 방 – 새벽 2시경
(윤서의 방. 조용한 어둠 속, 스탠드 불빛만 희미하게 켜져 있다. 윤서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지만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몸을 뒤척인다. 그녀의 숨소리는 일정하지 않고, 꿈속의 무언가에 눌린 듯하다.)
(화면이 점차 몽환적으로 번진다. 윤서의 꿈속 장면이 펼쳐진다.)
INT. 꿈속 – 과거의 어스름한 골목
(윤서는 낯익은 듯한 골목길을 걷고 있다. 어린 시절 자랐던 동네. 낡은 철문, 좁은 계단, 푸석한 콘크리트 벽, 모두 흐릿하지만 또렷하다. 그녀의 발길이 멈춘 곳엔 허름한 인형 가게가 있다.)
(문이 열려 있다. 윤서는 안으로 들어선다. 그 안은 실제보다 훨씬 큰 공간. 천장에는 누렇게 바랜 인형들이 주르르 매달려 있고, 벽마다 오래된 봉제인형이 빼곡히 진열되어 있다.)
(윤서, 어린 윤서 발견)
(공간 한가운데, 어린 윤서가 서 있다. 7살 정도의 모습. 그녀는 커다란 곰인형을 껴안고 있다. 그리고 천천히 윤서를 바라본다.)
어린 윤서
“나 기다렸어…”
윤서
“… 너는… 나야?”
어린 윤서
“응. 근데 넌 나를 자꾸 잊으려고 해.
괜찮은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러면 진짜 괜찮아지나?”
(윤서의 표정이 무너진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는 그녀 앞에서, 어린 윤서가 인형을 내려놓고 조용히 울기 시작한다.)
어린 윤서
“나는 아직도 그날이 아파. 엄마가 나간 날…
할머니가 아팠던 날… 나, 무서웠는데 아무도 몰랐지.”
(윤서는 눈을 감고 무릎을 꿇는다. 어린 윤서가 다가와 그녀의 손등에 손을 올린다.)
어린 윤서
“괜찮다고 말하지 않아도 돼. 그냥 아프다고 해도 돼.
그게 나니까.”
(윤서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주위 인형들이 바람에 흔들린 듯 소리 없이 요동친다. 화면은 점차 흐려지고, 다시 현실로 전환된다.)
INT. 윤서의 방 – 새벽
(윤서는 눈을 뜬다. 새벽 4시. 그녀는 눈가가 젖은 채, 천장을 바라본다. 깊고 조용한 밤. 한참을 그대로 있다가 이불을 걷고 일어난다.)
윤서 (내레이션)
“나를 감추는 게 버릇이 되어 있었구나.
이제야 조금… 나를 보게 된다.”
[CUT 20. 아침의 약속, 작은 시작]
INT. 부엌 – 아침
(따뜻한 햇살이 부엌 창을 통해 들어온다. 윤서가 조용히 아침밥을 차리고 있다. 달걀프라이, 김, 미소된장국. 소박하지만 정갈한 식탁. 그녀의 얼굴엔 어제와는 다른 평온함이 감돈다.)
INT. 준이의 방
(윤서가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간다. 준이는 새근새근 자고 있다. 윤서는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윤서
“준아, 오늘은 우리 둘 다 조금 더 웃는 하루를 살아보자.”
(준이가 살짝 몸을 뒤척이며 눈을 뜬다. 부스스한 눈으로 윤서를 바라본다.)
준이
“엄마… 진짜 오늘은 같이 밥 먹을 거야?”
윤서 (미소 지으며)
“응, 엄마가 만든 맛있는 된장국. 특별 서비스는 계란 반숙.”
(준이가 미소를 띠며 일어난다. 그의 손에는 어젯밤 숨겨둔 그림이 쥐어져 있다. 준이는 그 그림을 윤서에게 조심스럽게 건넨다.)
준이
“이건 어젯밤 꿈꾸기 전에 그린 거야.
우리 가족, 공룡 나라에 놀러 간 거.”
(윤서가 그림을 받아 든다. 그 위에는 세 마리의 공룡이 나란히 서 있고, 그 위에 '엄마, 준이, 아빠공룡'이라고 쓰여 있다.)
윤서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마워, 준아. 엄마 이거 정말 소중히 간직할게.”
(카메라는 천천히 둘을 비춘다. 윤서와 준이는 함께 식탁으로 향한다. 작고 평범한 아침이지만, 어제와는 분명히 다르다.)
윤서 (내레이션)
“하루하루가 무너지는 게 아니라,
다시 쌓이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아주 단단하게.”
(카메라는 창밖으로 시선을 옮긴다. 따뜻한 아침 햇살이 온 방 안을 감싼다.
조용히,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CUT 21 – 윤서의 내면에 비치는 작은 빛]
밤. 윤서가 잠에서 깬다. 땀에 젖은 이마를 훔치며 일어난 그녀는 한동안 가만히 천장을 바라본다. 오랫동안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던 밤이었다. 어느새 새벽빛이 희미하게 창을 물들인다. 그녀는 일어나 조용히 창문을 연다. 차가운 공기가 방 안으로 스며든다. 윤서의 눈가에 작지만 맑은 눈물이 맺힌다.
윤서 (혼잣말) "이젠 좀 괜찮은 줄 알았는데... 아직도 이렇게 아픈 거였네."
그녀는 주방으로 가 보리차를 데운다. 허공을 바라보다가 작은 수첩을 꺼낸다. 페이지를 넘기던 손이 멈춘다. '하고 싶었던 것들'이라는 오래전 적어둔 리스트. 독서모임, 여행, 자격증 공부, 봉사활동.
윤서 (혼잣말) "그땐, 그냥 꿈같았지..."
그녀는 수첩을 꾹 눌러 덮고 창밖을 바라본다. 새벽하늘 아래, 도시의 불빛이 아직 꺼지지 않은 채 반짝인다. 희미한 불빛이 그녀의 눈동자에도 맺힌다. 그 불빛은 마치 희망의 조각처럼 작지만 선명하다.
[CUT 22 – 준이의 회복과 윤서의 변화]
준이가 자다 깨서 화장실로 간다. 윤서는 조용히 그의 뒤를 따라가 확인한다. 문이 살짝 열려 있고, 준이가 손을 씻고 있다. 팔을 걷어붙인 그의 팔뚝에 긁힌 자국들이 옅어져 있다.
윤서 "준아, 많이 가려웠어?"
준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응... 근데 오늘은 조금 괜찮은 거 같아. 엄마가 보리차 해줘서 그런가 봐."
윤서가 미소를 지으며 준이의 등을 토닥인다. 그녀의 손길이 조심스럽고 따뜻하다.
윤서 "엄마도... 오늘은 조금 괜찮은 거 같아."
그 말이 진심이라는 걸, 윤서는 스스로도 느낀다. 작지만 분명한 변화였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덮지 않고 인정하고 있었다. 고통과 마주했기에,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CUT 23 – 독서모임에 나간 윤서]
며칠 후. 윤서는 작게 화장한 얼굴에 단정한 차림으로 작은 책방의 문을 연다. 벽면 가득 책이 꽂힌 따뜻한 분위기의 공간. 동그랗게 놓인 의자들. 사람들이 웃으며 인사한다.
독서모임 리더 "처음 뵙겠습니다. 윤서 님이시죠? 오신 거 정말 환영해요."
윤서 (어색하지만 웃으며) "네, 혼자 읽다가 누군가랑 나눠보고 싶어서요."
모임이 시작되고, 책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다. 누군가는 주인공의 상실을 이야기하고, 또 다른 사람은 회복을 말한다. 윤서는 조용히 듣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윤서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울었어요.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다들 나름의 상처가 있네요. 그런데 이렇게 나누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네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히지만, 이번엔 따뜻한 울음이다. 이해받고 있다는 감정.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CUT 24 – 새로운 시작의 문턱에서]
독서모임이 끝나고 책방 앞 벤치에 앉아 있는 윤서.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메모앱을 연다. ‘오늘의 마음’이라고 쓰인 페이지 아래, 그녀는 천천히 글을 써 내려간다.
“무너진 자리에서도 싹은 자란다. 어쩌면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새로운 시작일지도 모른다. 오늘, 위로받았다. 그리고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별 하나가 반짝인다. 카메라가 줌아웃하며 그녀의 뒷모습과 밤하늘을 담는다. 윤서의 얼굴에 다시, 작은 미소가 떠오른다.
내레이션 (윤서의 내레이션) “지금 이 순간도, 살아가는 연습이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그리고… 조금씩, 나아간다.”
장면은 어둠 속에서 서서히 밝아지며 다음 날로 넘어간다. 희망은 작지만 분명히 그녀 안에 심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