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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잔향 06화

잔향

오래된 향수를 닮은 시

by 이제이

그대는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러나 머문 자리마다

바람보다 느린 그리움이 쌓였다

우리는 계절도 아닌 순간 속을 걸었고
침묵이 말보다 깊던 날들
음악은 서로를 설명하는 방식이었고
시는 눈빛에 섞여 들었다

풍경은 더 이상 배경이 아니었고
냄새와 소리는 마음의 결이 되었으며
그 공기를 숨 쉬는 일마저
서로에게 다가가는 일이었다

나는 알지 못했다
지나가는 바람 속에
그대가 섞여 남을 줄을
그대가 사라진 후에도
그 향기가 나를 따라올 줄을

설익은 연노랑 바람이
창을 열면 문턱을 넘어 들고
그대의 향내가 조용히
내 하루를 물들인다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그대는 내 안에 머문다
시간도 지우지 못할
새겨진 이름이여
수놓아진 기억이여

불러보지 못한 수많은 말들이
이제야 내 안에서 꽃 피우고
피지 못한 그날의 마음들은
오늘의 향기로 다시 살아난다

그대는 스쳐갔지만
남은 잔향 속에서
나는 여전히 그대를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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